아껴 쓰고 고쳐 쓰는 '리사이클시티'
중고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신가요?
사람마다 중고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새 거 살 필요 없다. 물건마 괜찮으면 중고로 저렴하게 사서 오래 쓰면 된다"라는 사람이 있다. 또 다른 사람은 "난 남이 쓴 물건 싫어. 무조건 새 거로 사야 오래 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놀면 뭐 하니
제대를 하고 나니 캄캄했다. 고졸 군필이 할 수 있는 많지 않았다. 걸어서 5분 거리 집 근처에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곧장 지원했다. 갓 전역을 한 23살. 돈만 주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기세였다.
"어제 제대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냉장고도 들 수 있나요?"
.
"혼자 드는 건 아..... 니죠?"
"보통 둘이서 많이 들죠. 혼자서는 안 시키니까 걱정 마요"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상태에서도 냉장고를 들 수 있냐는 물음에 흔쾌히 대답을 못했다. 자신감 없는 내 모습에 면접관은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함께 남겼다.
다양한 업무
입사하고 나서부터는 가구쪽을 담당했다. 고객 응대와 함께 가구 견적도 내주고 간단한 가구도 수리하는 업무다. 보통 나이가 있으신 분이 가구를 담당했다.
그 이후에는 냉장고, 세탁기 세척하는 업무를 했다. 세척실에서 혼자 중고가전을 세척하다 보면 외롭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내 방도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한 적이 없었는데 크게 음악 틀어놓으면서 세척도구로 세척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는 선풍기 조립이다. 조립되지 않은 선풍기 박스가 몇십 개 몇백 개씩 들어오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박스를 뜯고 순서대로 선풍기를 조립하는 업무다. 5개 이상 하다 보면 내가 선풍기를 만드는지, 선풍기가 나를 만드는지 모를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진다. 정신 놓고 하다 보면 꼭 조립 하나를 빼먹게 된다.
이때부터 반복, 단순 업무가 싫었던 거 같다. 그래도 하다 보면 시간도 잘 가지만 매일 하다 보면 정말 지루하고 힘들고 정신이 이상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주 업무는 출장 견적이다. 당시에는 면허가 없었기에 형(나이 많은 남자면 형, 여자면 누나라고 불러야 했다)들이 운전하는 차에 타서 따라다녔다. 견적을 봐달라는 전화가 오면 주소를 받아 원하는 일정과 시간에 방문해 TV, 냉장고, 세탁기, 소파 등을 보고 가격을 책정하는 업무다. 물건을 평가하는 기준은 명확하다. 연식, 기능, 상태다. 출장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지역을 갈 수 있어서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으리으리한 부잣집도 가보고 담배냄새로 방안이 가득한 지하 단칸방도 가본 적이 있었다.
십년감수
거의 새거나 다름없는 소파가 매장으로 배달된 적이 있다. 포장을 칼로 뜯어야 하는 상황에서 형들이랑 같이 언박싱하다 보니 신나게 했던 거 같다. 어린 나이여서 그랬는지, 빨리 뜯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인지 칼을 조심히 다루지 않다가 실수로 소파를 긁어버렸다. 작은 실수 는 형들이 커버 쳐줬지만, 쇼파 파손은 윗선에 보고했다. 소파 가격은 1개랑 50만 원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월급에서 차감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결국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당시에는 면허가 없었기에 출장견적을 갔을 때 운전하는 형들 차에 따라 타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차만 타면 자는 습관이 있어서 짧은 거리를 가도 자주 졸았다. 운전하는 사람이 더 피곤하고 더 졸릴 텐데 배려를 할 줄 몰랐다. 차 안에서 매번 자다 보니까 형이 "차에서 자는 건 좀 아닌 거 같아. 옆에서 재밌는 얘기는 아니더라도 자고 있는 건 운전하는 사람한테 예의가 아냐"라는 말을 들은 뒤로는 잠을 쫓기 위해 이런저런 얘기 계속했다. 그때 이후로 차만 타면 수다쟁이가 된 것 같다.
퇴사 명분
같이 일하는 형들이 너무 좋았다. 막내이기에 귀여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수많은 형들 중에 유독 나를 잘 챙겨주는 형도 있었다. 그 형이 퇴사를 하고 나니 출근하는 재미가 반감됐다. 그 형만 만나면 명절에 정말 좋아하는 사촌형을 만난 것처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웠기 때문이다.
퇴사를 한 또 다른 이유는 4~5살 더 많은 형들이 나에게 "하고 싶은 게 뭐냐" "꿈이 뭐냐" 등 다양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사실 제대하고 나서 무작정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고 형들이랑 어울리는 게 좋아서 다닌 거지, 하고 싶은 걸 생각해 본 적은 없는 시기다. 재밌는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는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꿈이나 목표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새로운 것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다른 형은 "아직 젊으니 꿈을 찾아보면서 해보고 싶은 걸 하라"는 말에 용기를 내서 퇴사를 했다.
발품
중고 가전제품은 연식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가격을 정하는 데 연식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 집도 우리집도 TV를 리사이클시티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 크기보다 연식 좋은 걸로 샀던 기억이 있다.
중고나라, 당근마켓에서 좋은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는 알림 키워드도 해놓고 수시로 확인해야 하듯이 리사이클시티도 발품을 팔면 팔수록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다. 부지런한 사람이 알뜰한 쇼핑을 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또 20대 초반에 월급을 받다보니 재테크에 대한 개념없이 월급의 절반 이상을 보세옷을 샀다. 비싼 옷을 오래 입을 생각을 하지 않고 저렴한 옷을 여러벌 사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 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은 돈을 아끼려고 노력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보면 리사이클시티는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준 곳이다.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일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가끔씩 나를 챙겨준 그 형들의 근황이 궁금해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에 들어가 근황을 확인해 보곤 한다.
용기가 없어 연락을 못하지만 지금도 그 매장을 지나갈때 슬쩍 본다. 물론 그 때 그 사람들은 다 나갔는지 보이진 않는다. 사람들이 좋고 분위기가 재밌으면 힘든 일도 유쾌하게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