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제가 이불에 지도를 그린 날이 기억이 납니다. 80년대였지만 다행히 키를 쓰고 소금을 받으러 다니진 않았습니다. 부모님께서도 혼내신 적이 없고요. 물론 부끄럽긴 했습니다. 아이가 기저귀를 떼면서 침대에는 방수 커버를 씌우고, 자기 전에 꼭 화장실에 데려가는 훈련(?)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날이 있더군요.
신기하게도 아이가 잠결에 지도를 그리면 아내는 금방 알아챕니다. 아내에게 '어떻게 알아채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대답은 '나도 잘 모르겠어'였습니다. 역시 엄마의 촉이란... 아이가 사고(?)를 치면 아내는 빛의 속도로 덮는 이불을 들추고, 불을 켜고, 아이를 욕실에 데려갑니다. 그제서야 저는 겨우 눈을 뜨고 침대 커버를 교체하고 다시 잠자리를 준비합니다. 아내는 "밤에 물 마시면 꼭 화장실 가자. 알았지?"라며 아이를 씻기고 침실로 다시 보내면, 아이는 졸립고, 부끄럽고.. 암튼 복잡한 얼굴로 돌아옵니다.
'지도가 된 이불이 상처 난 기억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침대 패드, 커버로 가득 찬 빨래바구니를 보면 '이 녀석이..'하는 마음도 들지만 '혼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일부러 만든 사고도 아닌데..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하는 마음을 스스로에게 주입합니다. 그리고 딸아이를 말없이 안아주고 '놀랐지?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다시 침대에 눕힙니다. 가끔은 '아빠도 어렸을 때는 이불에 쉬아 했어'라는 고백까지..
부모와 자녀 사이에 남는 것은 '좋은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가 자녀에게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답을 알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 그것이 부모의 삶 아닐까 싶네요.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