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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 Dec 17. 2016

40. 소개팅 이야기, 넷 : 그녀를 만나다



지난여름은 좀 특이했다. 무척이나 더웠고, 유별나게 길었다. 그리고 갑자기 끝나버렸다.

가을은 갑자기 찾아왔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다들 얼떨떨해하면서도, 누진세의 압박에서 벗어나 에어컨을 멈추는 사람들의 마음은 행복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가을이 당일 배송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그녀를 만났다.





("38.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 이어짐)



"형, 요즘 만나는 사람 없지? 소개팅 해라."


"사진."


"ㅋㅋㅋㅋ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남자는 절대 사진을 보지 않고 소개팅을 나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고 직접 만나서 알아보고 싶은 게 있는지 없는지는, 사진을 봐야 아는 법.



"어....... 야 너무 예쁘신데? 내가 너무 꿀리는 거 아니야?"


"에이, 외모보다 합이 중요하지. 일단 만나봐. 콜?"


"어, 어. 그래. 고맙다."









생각보다 강남에는 소개팅을 할 만한 장소가 없다. 그럼에도 그분이 9호선 라인이 편하다고 하셔서, 신논현 근처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소개팅에 적합한 장소가 적다 보니, 좀 괜찮다 싶은 곳은 죄다 소개팅에 나온 커플들 밖에 없었다. 몇 번 경험한 적은 있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였다. 다들 잘 차려입고 마주 앉아서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차마 감출 수 없는 어색함들이 그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어서 오세요. 희연씨."


실제로 만난 그녀는 사진 그대로 정말 예뻤다. 그녀는 내 눈에만 예쁜 사람이 아니라, 정말 예쁜 사람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대화를 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와는 한 동안 대화를 잘 잇지 못했다. 그녀는 국악을 전공한 연주자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문계, 이공계 분들을 많이 만났고, 또 디자인팀에 있으면서 디자이너들과도 깊이 관계 맺을 기회가 있었지만, 음악을 하는 분은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외모에 대한 선입견, 직업에 대한 선입견이 너무나 컸던 것 같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과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이기에, 어떤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조심스럽고 어려웠다.


하지만 조금씩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리에게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작은 신앙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가 처음 소개를 받을 때 가장 먼저 내세웠던 것이 종교적인 부분이었다. 그녀가 얘기 하기를, 이전 몇 번의 소개팅에서 그 부분 때문에 곤란을 겪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신앙이 없음을 넘어서서, 그녀가 가진 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어서 싸울 뻔한 적도 있었다고.



"아무리 그래도, 소개팅에서 그것 때문에 싸워요??"


"막 말다툼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참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신실한 분은 아니어도 좋으니, 교회에 다니는 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나씩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신기하게도 그녀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겹쳤다. 영화도, 책도, 음악도, 여행도. 서로가 가진 경험의 깊이는 조금씩 달랐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방향이 매우 비슷해서 이야기하면 할수록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좋은비)씨, 카톡 프로필 사진이 강아지 웹툰이던데..."

(네이버 웹툰, 초 작가님의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의 한 컷이었다.)


"아, 네네. 제가 얼마 전까지 강아지를 키웠었거든요. 지금은 고향에 가 있지만요."


"오, 정말요? 저도 집에서 강아지를 키워요. 게다가 프로필에 있는 강아지가 까만 푸들이라서 깜짝 놀랐어요. 제가 키우는 강아지가 까만 푸들이거든요."





그날 우리는, 그녀의 일정 때문에 비교적 이른 시간인 5시 반에 만나 밥을 먹고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11시가 다 되어서야 헤어졌다.









다음날 오후.


"형, 어땠어?"


"어, 어. 괜찮았어~"


"아 그래? 그쪽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여자분도 형 맘에 들었나 봐. 계속 만날 거지?"


"응? 정말? 나야 좋지!!"




그날, 가을이 당일 배송된 날.


소개팅 성공의 조건(19. 소개팅 이야기, 셋 : 성공의 조건)이 충족되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카톡을 보내 다음 약속을 잡았다.










*제 글에 나오는 모든  에피소드들은 내용은 동일하되, 혹시나 당사자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구체적인 실명, 지명 등은 변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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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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