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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 사라지는 세상 위에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 17화

by 사호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입하면, 적어도 2~3일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판매자가 제품 주문 및 송금된 내역을 확인한 후, 포장을 해야 하고, 택배 접수를 진행하여, 제품이 출발하면, 아무리 대한민국 땅이 좁다고 해도 1일은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쿠팡의 로켓배송, 컬리의 새벽배송이 등장하며, 저녁에 주문하면 최단기간으로는 바로 다음 날 새벽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쿠팡과 컬리 위주로 사용하게 되고, 2-3일 동안도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이 생겨버린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를 가입하면, 많은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데, 넷플릭스 자체 제작, 혹은 비단 넷플릭스가 아니라 해도 특정 OTT가 자체 제작한 드라마는 해당 시즌을 한 번에 끝까지 시청할 수가 있습니다. 즉 드라마를 기다림 없이 완결까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소수의 드라마를 이 방송국, 저 방송국에서 쉴 새 없이 재방송을 하는 바람에, 해당 드라마 본방송을 놓치고, 전편을 못 봤어도, 연이어서 3~4편 정도는 '정주행'이 가능합니다. 하다못해 유튜브에 드라마 요약본, 즉 편집해서 20~30분 내로 내용 파악이 가능한 콘텐츠들이 즐비하니까, 이전에 월화 미니시리즈, 수목 드라마 등을 보면서 다음 주를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도 거의 사라진 듯합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문득 생각나는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수필이 생각났습니다. 아마 중학교 1, 2학년 때 국어 시간에 배우고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글쓴이가 방망이를 사러 방망이 깎는 노인을 찾았는데, 그 노인이 방망이를 꼼꼼하게 천천히 깎고 있어서, 재촉을 하였다고 합니다. 러자 노인은 빨리 깎아 달라는 글쓴이를 꾸짖고, 끝까지 소신껏, 시간을 들여 방망이를 깎아 만들어 주었답니다. 글쓴이가 그 방망이를 아내에게 주었더니, 아내가 그 방망이가 참 사용하기 좋았다고 이야기했다는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노인이 글쓴이를 꾸짖을 때 "서두른다고 생쌀이 밥이 되나?"와 비슷한 워딩의 말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맞습니다. 사람이 서두른다고, 서두르는 마음만으로 어떤 것이든 물리, 화학적으로 급히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시간이라는 요소는 꼭 필요합니다. 시간은 정직해서 무엇이든 시간을 많이 들인 것들은 견고하고, 안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기술의 발달로, 시간을 적게 들이고도,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사례도 종종 볼 수 있지만, 속성으로 이루어낸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식, 노화가 빨리 진행되기 마련이기에, 흘러가는 시간에 의한 역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기다려줄 여유가 마음속에 남아있는가 하는 점일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무언가를 견고하게 이루어갈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이미 세상이 우리에게 기다리는 법을 잊게 하고 있지만, 매년 돌아오는 성탄절과 연말연시 기간으로 인해 우리는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찾아왔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들이 올해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기다리는 동안 행복하셨기를 빕니다.




사실, 노인이 깎아주신 그 방망이가 어떤 용도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마 지금은 필요 없는 물건일 것 같은데, 빨래 혹은 북어를 팰 때 사용하는 용도가 아니었을까 추정해 봅니다. 게 쓸데없는 호기심이 드는 성탄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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