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다른 삶과 책임의 도시
또각또각또각또각.
퀘퀘한 냄새가 자욱한 연회색의 타일로 뒤덮인 상가 길목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역과 맞닿은 곳에 위치해 수많은 사람들이 출퇴근 시 오가며 항상 붐비는 이곳, 언제나 사람들이 발자취와 짙게 배긴 칙칙한 공기는 괜시리 불쾌한 느낌마저 지을 수 없게 만든다. 인상을 찌푸리며 걷다가 우뚝 멈춰 고개를 돌린다.
통로 끝자락 20대로 추정되는 젊은 남녀들이 초저녁부터 술을 거나하게 마신 탓인지 벌써부터 몸을 휘청거리며 가누질 못한다. 누군가는 혼잡한 이 시간대에 퇴근하기 바쁘지만, 벌써 술 한 상을 머리 끝까지 들이킨 이들도 있다. 취객들이 통로 좌우로 벌써 드러누워 있고 몇몇은 그들을 부축하느라 애쓴다.
경찰차가 사이렌소리를 ‘위잉-!’울리며 골목을 막아섰고 몇몇 싸우고 있던 취객들을 제지하며 상황을 진압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손길을 막무가내 뿌리치며 소리를 꽥꽥 내지르는 이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혹시나 다칠까 가던 길을 멈칫하다 안전해질 즈음 다시 한쪽 길을 통해 조심스럽게 길을 지나가기 시작했고 몇몇은 들어왔던 길로 돌아가 바깥쪽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에이 똥밟았네’라며 괜히 불쾌한 내색을 펼치는 이들도 이윽고 구태여 싸움에 말리고 싶지는 않았는지 혀를 한 번 차더니 가던 길을 이내 걷기 시작한다.
감정이 메말라가기 시작한다. 적극적인 표현의 방식도, 감정의 방식도 서서히 메말라간다. 즉흥적인 유흥을 선호하고 가시적인 결과물을 원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쾌락을 선호하기 일쑤고 더 나아가 아무런 자극이 없는 행동은 큰 흥미를 이끌지 못한다. 가히 재밌는 일은 아드레날린이 들끓기 일쑤인데, 반복적인 삶과 일상은 그다지 흥미롭지도 유흥적이지도 못하다.
맵고 짠 자극적인 입맛을 채워줘야 하는데, 일상은 싱겁고 간이 되어있지 못한 순하디 순한 맛이다. 회사에서 하루종일 아무 말 없이 자기 할 일만 하다 조용히 퇴근해도 자기 할 일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지기 시작하면서 대화의 단절과 소통의 경계를 세우고 더 이상 가깝게 전진할 수 있는 동력을 잃고 만다.
가까운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만들고 가까울수록 더 신경쓰고 더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가깝다고 생각할수록 막대하기 십상이고 가볍게 대처하곤 한다. 감정선이 쉽게 낭비되고 배려하지 못한 채 관계를 흐트러트리기도 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이 구축되면서 입력은 있지만 표현은 없어지는 세상으로 변했다. 느낌이나 감정 그리고 다양한 표현들을 밖으로 내비출 수 있는 소통의 구간이 없어지면서 단절은 극으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아주 작은 사소한 자극에도 욱하기 일쑤고 평정심을 갖기 어렵다. 여차하면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허다하며 작은 감정 컨트롤에도 큰 에너지를 낭비하기도 한다.
삶도 경제도 인프라도 모든 것이 자유로워졌고 고품질과 다양성이 빈번해지기 시작한 시대에서 적응되지 못한 사람은 도태되고 경쟁에서 밀란자들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뒤쳐진다. 그뿐이랴 일반 평균의 잣대인 서민 기준만큼만 산다는 것도 쉬운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 악물고 뛰고 버티고 견디고 이겨내려하지만 가혹한 현실 앞에서 무릎꿇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디지털 소외도 마찬가지다. 웃픈 현실이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한다. 두 손으로 휴대폰을 꽉 쥐고 누군가와 얘기하면서도 여전히 눈은 휴대폰에 꽂혀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기술의 발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고립과 단절 그리고 우울증을 배가시켰다.
‘삐뽀삐뽀-!’
경찰차에 이어서 구급차까지 결국 한 대 출동하고 나서야 서로 치고박고 싸우며 피가나던 상황을 중재시킬 수 있었다. 황급히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서둘러서 싸우다 쓰러진 취객들의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손전등을 켜고 동공 확인을 하고 이내 쓰러지며서 다친 몇몇군데는 괜찮은지 움직임은 이상없는지를 확인했다.
취객들은 한참을 난동 부리다 경찰관들의 조사를 받고 있다. 술기운이 가실 때 즈음 그토록 용맹스럽고 투철하던 용기는 어디 간 것인지 꼬랑지 내린 새끼 강아지마냥 가파르던 숨을 고요하게 죽이고 고개를 숙인 채 조사를 받고 있다.
댓가는 치러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저대로 병원을 갈 것이고, 누군가는 조사를 위해 서로 이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양측 모두 누가 승자고 패자는 없다. 오히려 지금은 성난 감정을 추스르고 현실로 다시 돌아와야 할 때인 것이다. 제 아무리 감정적으로 휘몰아치고 컨트롤을 못하는 성격 소시오패스적 성향이 있다고 한다 하더라도 현실의 로그인 버튼을 다시 누르는 순간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된다.
‘잘못했습니다. 경찰관님, 술기운 때문에 그랬습니다.’
이내 울먹거리며 상황을 모면하려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한다. 피식 웃으며 한참 쳐다보던 그들을 뒤로한 채 걷기 시작한다. 이 무슨 철없는 행동이란 말인가, 성인이면 성인답게 자신의 행동을 두고 책임질 줄 알아야지 술 먹을때는 스무살만 넘어서 법적으로 문제 없다가도 사건과 사고를 일으키고는 한 번만 봐달라니.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은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 의무다.
또각또각또각또각.
타일로 깔린 복도식 바닥을 걸을 때의 또각 거리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경쾌하다.
같은 길,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