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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뱃속 북레시피 - 『나무 사이로 계절이 지나가』

by 고래뱃속
나무 사이로 계절이 지나가 X 안녕! 나의 작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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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물속에 가라앉은 돌처럼

온몸은 무겁고, 어떤 것도 즐겁지 않았지.”_본문 10쪽


스물이 되고 이사 트럭과 함께 처음 이 동네에 왔어요. 갑작스레 오게 된 이사도, 이 낯선 마을도,
모든 것이 싫었던 나는 몸도 마음도 점점 무거워져 갔지요.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즐거운 걸 하나도
찾지 못했어요. 그러던 어느 아침에, 별스러울 것 없이 창문을 열었는데 봄이더라고요.
잠시 봄바람을 맞으며 서 있으려니 옆구리 안쪽이, 양말 속 발가락이, 꼼짝 않던 눈썹산이 꿈틀꿈틀!
찌르르- 느낌이 왔어요. 어느새 꽃잎 한 장만큼이나 가벼워진 마음을 안고 결심했지요.
이곳에서 마주할 나만의 시간을 찾아 즐기고 싶다고.
신발끈을 질끈 묶고 집을 나서며 나는 내 안의 작은 세계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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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작은 세계.”_본문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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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무를 따라 거꾸로 선 채

스스로에게 물었어.

‘내 마음은 어디로 가는 걸까?’”_본문 24쪽


처음 이 마을을 산책하기 시작했을 때, 살짝 겁이 났어요. 아는 길이 거의 없었거든요. 익숙한 길만 좇으며 걷다가 문득, 새로운 게 보였어요. 이웃들이 오가며 발로 다져 놓은 풀길, 흙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는
거예요. 투박하면서도 신기하게 나 있는 길로 다들 어딜 그리 가나 싶어 따라 걸어 봤어요, 그러자 넓은
옥수수밭이나 부지런한 손길이 닿은 텃밭, 작은 나무 쉼터, 낡은 돌다리, 낚시꾼들의 비밀 방죽 같은
장소에 닿았지요. 마음이 울렁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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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좋아하는 친구를 처음 이 동네에 초대해 함께 산책하던 중에,
내가 발견한 샛길을 따라 걷던 친구가

“이 동네 사람들은 세상에 못 가는 길은 없다는 마음으로 사는 걸까?”라고 말했을 때.
이름 모를 텃밭 한가운데서 우린 무릎을 굽혀가며 웃었답니다. 이른 새벽마다 나만의 길을 다지며
동네 여기저기를 걷던 어느 날에 문득 가을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자, 이제 슬슬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 볼까요?


“나무에게도, 부엉이에게도

각자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어.

나도 숲속에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산책을 했어.

나에게도 나만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어.”_본문 56쪽




* 나만의 길을 따라 나만의 속도로 걸어보는 산책 레시피 *

1. 필름 카메라

산책을 나서며 챙긴 카메라로 그날의 풍경을 기록해 보세요. 그렇게 남긴 사진들을 서랍에 넣어두고
훗날 다시 꺼내 보는 거예요. 그날의 날씨와 온도, 기분과 추억을 다시 느낄 수 있도록.


2. 작은 노트나 스케치북

걷다가 마주친 이웃들과 나눈 안부, 마음에 남은 이야기를 그림이나 일기로 써 본다면
나만의 산책이 더욱 알록달록하게 채워질 수 있어요. 우연히 발견한 산책 코스와 산책 팁을
나만의 방법으로 노트에 정리해 보면 어떨까요?


3.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

그날의 분위기와 기분에 맞는 음악으로 꽉 채운 플레이 리스트와 함께라면, 평범한 일상도 한 편의 영화가 되지요. 매번 음악과 함께 걸어왔다면 때로 이어폰을 내려놓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좋아요. 주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바람 소리,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마치 하나의 노래처럼,
마음을 다독여줄 거예요.


4.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 담긴 도시락

건강한 집밥으로 손수 만든 도시락이나 취향 저격 간식거리를 가방에 쏘옥 넣고 밖을 나서 봐요.
평소 나만의 애정 어린 장소나, 산책 중에 만난 나무 그늘 아래에 가볍게 몸을 기대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지요!


5. 다른 길, 낯선 풍경 속으로

평소와 다른 출근길이나 등굣길 루트를 발굴해 볼까요? 새로운 풍경과 방향으로 걸어보는 시간 속에서
기분을 바꿔볼 수 있어요. 늘 걸어 다니던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 보는 것도, 반복되는 일상에
유쾌한 변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이지요.


6. 발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산책’에 정해진 규칙은 없어요. 목적지도, 방법도 모두 내 마음 가는 대로!
때론 정해진 목적지 없이 그저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걸어 보세요.
발이 닿는 대로, 마음이 끌리는 대로 자유롭게 걷고 쉬어 가세요, 그걸로 충분해요.


7. 보이는 대로 머무르기

산책하는 동안엔 너무 복잡한 생각과 고민을 잠시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해요.
그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해보는 거예요. 놀이터를 뛰노는 아이들의 힘찬 숨소리와
여유로운 표정의 고양이들, 길가의 들꽃들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향기, 손 틈새로 비치는 따스한 햇살,
청명한 하늘과 반짝이는 달님을 마음으로 느껴요. 그렇게 이 순간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머무르다 보면
산책의 즐거움이 훨씬 커다랗게 다가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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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Editor 영




나무 사이로 계절이 지나가|김주임 글·그림|2021년 8월 30일|15,000원

숲속에서 매일 나무 사이를 걸었어.
이제야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겠어.
해야 할 것도 가야 할 곳도 잃어버린 날, 나뭇잎 한 장을 따라 작은 방을 떠납니다. 길은 숲으로 이어졌고 숲에는 사람의 모습을 꼭 빼닮은 나무들이 있습니다. 나무에게 길을 묻지만 나무는 대답 대신 자신들의 삶을 보여 줍니다. 나무들의 섬세한 변화를 보며 우리는 시간을 느끼고 생명을 체험합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작지만 분명한 감각들입니다. 나무 사이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며 온몸의 감각이 깨어납니다.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면 살아갈 수 있고, 걸음을 계속 내딛는 힘으로 길이 찾아진다는 것을 나무들에게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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