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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Feb 22. 2019

어린이집이란 무엇인가

| 생애 첫 어린이집에서의 1년


약 1년 전, 복직을 앞두고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두려운 마음에(아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돌 전이기도 했다.) 복직 한 달 전부터 보내려 했는데, 학기 시작부터 다니는 게 아가가 적응하기도 좋을 것 같아서 3월부터 다니기로 했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인 몇 주 동안 아가와 함께 어린이집에 오가다가 온전히 아가만 맡기게 된 첫날. 난 울고 말았다.


다행히 아가는 너무나 적응을 잘해줬다. 항상 생각하지만 어른만 잘하면 된다. 아가를 키우면서 아가의 무한한 가능성에 매번 놀라게 되니까. 그렇게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함께 보낸 1년. 겨우 앉을 수 있던 아가는 뒤뚱뒤뚱 뛰어다닐 정도로 부쩍 자랐다. 


이 어린이집에 오래 다니고 싶었다. 가끔 불편한 일도 있었지만, 아가를 예뻐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좋았고, 불필요한 행사가 없어서 좋았으며, 먹을 것을 아끼지 않는 분위기라서 대체적으로 만족했다. 특히, 수기로 작성하는 알림장이 좋았다. 우리 아가는 아파서 등원을 못하는 경우에도 빈 어린이집 가방을 끌면서(아가에겐 크고 무거워서 들지는 못한다.) 어린이집에 가자고 할 만큼 어린이집을 좋아했다. 특히, 내가 퇴근한 후 하원을 하기 때문에 어린이집에서 저녁을 해결해야 했는데 저녁 식대를 별도로 받지 않고 제공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 새 학기부터는 새 어린이집에서


어른의 사정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새 학기부터는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봐야 했다. 이제 슬슬 말을 하면서 선생님과 친구를 부르며 즐거운 어린이집 생활을 하고 있는 아가는, 더 이상 선생님과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한다. 너무 미안하다.


첫 어린이집은 내가 휴직 중일 때 직접 돌아다니며 비교해보면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선택에 도움될 자료는 어린이집 입소대기 신청하는 사이트의 대기 인원뿐이었다. 그저 인원을 살펴보며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곳에 대기를 걸어놓고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교육철학은 어떤지, 행사가 많은지, 저녁은 어떻게 제공하는지, 바깥 활동은 어느 정도 하는지, 불필요한 학습을 시키지는 않는지, 원장 포함 교사의 분위기는 어떤지, 별도로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인지 등 어떠한 것도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다만, 등하원 버스는 절대 이용하고 싶지 않아서 도보 등하원이 가능한 곳만 알아봤다. 원래 물건 하나를 사도 오래 생각해서 사고, 한번 사면 오래 쓰는 성격이라, 학기 중에 어린이집을 옮기는 것만은 하고 싶지 않아서 어린이집 선택에 신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맞벌이에게는 그럴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탁상행정 덕분에 이사 시기와 새 학기 사이에 붕 뜬 시간 동안, 남편과 나, 그리고 아가는, 출퇴근과 (기존 어린이집으로의) 등하원을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과 경기를 오가야 했기 때문에 모두에게 힘든 방법이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단 1개월만이라도 남편이 육아 휴직을 하면 좋겠지만, 아직도 여전히 남자가 육아 휴직하는 것은 어렵다. 아무튼 아가가 제발 잘 견뎌주기만을 바라면서 어렵게 결정했고 남편과 나는 매일 긴장하며 그 시간을 버텼다. 고맙게도 아가는 역시 잘 견뎌주었다. 오히려 남편이 아파서 나 혼자 출근하고 아가는 어린이집에 못 간 경우가 있었다. 내 사주에 초년복은 없고 말년복과 자식복은 있다는데 정말인가 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아가를 낳은 것이다. 아가에게 많이 배운다. 그래서 둘째도 낳고 싶지만 현실은 뒤웅박. 0세반 어린이집(교사 1명당 3명이라 운영을 꺼리는 곳이 많다.)은 또 어떻게 찾나.


얼마 전, 새 어린이집에서 입학금 납부 및 OT 안내 문자가 왔다. 문자를 본 순간, 다녔던 어린이집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기존에 어린이집에서 썼던 물품 가격은 내지 않아도 되냐니까 '이해는 하지만 원 운영을 위해 모두 내 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불에 손잡이가 있어서 이불 가방은 필요하지도 않은데 왜 그 비용을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을'도 아닌 '정'의 입장인 맞벌이 부모라서 더 이상 뭐라 말하기도 어렵다. 이 어린이집의 좋은 점도 분명 있을 테니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 아가의 안전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가의 적응 기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아가는 잘 적응할 거다. 언제나 나와 남편이 문제일 뿐. 


새 어린이집 적응 기간에는 내가 연차를 쓰기로 했다. 어린이집에 다녀본 경험이 있어서 적응 기간이 짧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오히려 예전 어린이집이 생각나서 적응 기간이 길지도 모르겠다. 예상보다 길어진다면 남편도 써야겠지. 맞벌이 부부에게 연차는 (아가와 관련된 일에만 쓰는데도) 언제나 부족하다.



| 엄마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사회


어린이집 종일반은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7시 반까지 운영한다. 그러나 아가의 대부분은 오후 5시 이전에 하원한다. 맞벌이인 경우에도 부모의 부모인 할머니나 할아버지, 아니면 도우미를 써서 일찍 하원한다. 어린이집에 혼자 남은 아가가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이유다. 우리는 양가에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항상 마지막에 데리러 갈 수밖에 없는데 당직 선생님과 둘이만 있는 아가를 보면 괜히 미안해진다. 선생님과 무척 잘 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마음이 든다. 나도 이럴진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엄마라면 더 힘들 거다.


맞벌이 부부만이라도 아가를 일찍 하원 시키지 않으면 어느 아가든지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을까. 나는 아가가 어린이집에 오래 있는 것보다, 같이 놀다가 먼저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길까 봐 그게 더 신경 쓰이는데, 나만 그런가 보다. 정당한 돌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데도 당직 교사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아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 씁쓸하다. 물론, 육아하는 부모는 한 시간이라도 일찍 퇴근하게 해주는 게 제일 좋겠지만.


얼마 전, 아가를 데리고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기사를 봤다. 유럽과 비교하면서 여성에게 좋은 직장이라며 추켜세우는 댓글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아가와 함께 출근한 사람은 모두 엄마였고, 아빠는 없었으니까. 육아와 직장 업무를 같이 해야 하는 워킹맘의 부담이 느껴지고 육아가 엄마의 몫으로 보였으며, 그저 여성에게 슈퍼우먼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 전혀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았다.


어린이집을 보내다 보면, 오지라퍼들의 말에 상처를 받는다. 그들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면서 꾹꾹 눌러 놓은 죄책감을 드러나게 한다. "아가 키우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아가가 힘들겠다", "생후 3년은 엄마가 키워야 하는데", "저 작은 아가를 어떻게 어린이집에 보내" 등. 단호하게 괜찮다고 말하며 그 근거를 대면서 선을 그어도 자꾸 그 선을 넘는다. 어쨌든 가장 힘든 건 엄마일 텐데, 그런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해서 그들이 얻는 게 뭘까. 모든 엄마가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둬야 그들의 속이 시원한 걸까. 아가가 어릴 때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경력단절이 생기는 이유 중의 가장 큰 것은 아마 오지라퍼들의 입방정 때문일 거다. 오지랖을 관심이라 표현하며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는 그들은 영원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조언은 제발 넣어 둬.


엄마들이여, 죄책감을 가지지 말자. 그대들은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대단하고 훌륭한 엄마가 되지 않으면 어떤가. 양보다 질이다. 아가와 함께 있는 소중한 시간에 아가를 많이 안아주고, 함께 웃고, 아가가 하는 것을 봐주고, 응원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아빠들이여, 육아는 엄마만의 몫이 아니다. 그저 한편에서 돕는 자가 되지 말자. 함께 하자. 우리의 아이이지 않은가.


토요일 아침이 되면, 밀린 빨래를 돌리고 아가의 아침을 챙겨주는 나와 달리, 이불속에서 잠자고 있는 남편이여. 좋은 말로 할 때 일어나라. 이불 번데기 속에서 계속 자다가 나방 되기 전에. 너는 좀 죄책감을 가져야겠다.



| 어린이집 사건사고


잊을만하면 터지는 어린이집 학대 사건. 너무 무섭고 마음 아파서 관련 영상은 클릭할 수조차 없다. 한 명의 아이를 돌보는 것도 어려운데, 성격이 다른 여러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울 거다. 하지만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다른 직업을 찾아봐야지, 그것을 아이에게 풀면 어쩌란 말인가. 어린이집을 믿고 교사를 믿고 싶지만 그런 뉴스를 보거나 듣게 되면 너무 힘들어진다. 어린이집 상담에 갔을 때, 아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던 원장 선생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싶다. 그런 일은 우리 아가 포함, 모든 아이에게 일어나면 안 된다. 제발 그런 소식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되길 바란다.


학대 사건과 함께 가장 큰 문제는 등하원 버스와 관련된 사고다. 2018년 7월 어느 무더운 여름날, 어린이집 등하원 버스에서 방치된 4살 아가가 숨진 사고가 있었다. 사고 직후에 보건복지부에서는 잠자는 아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Sleeping child check)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이 것은 운행 종료 후 3분 이내에 차의 맨 뒤 좌석에 설치된 벨을 눌러야 경고음이 울리지 않는 것으로, 운전자가 모든 아이의 하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이다. 하지만 이 장치에 전원을 달아달라는 불법 요구도 있다고 하니, 정말 앞날이 깜깜하다.


또한, 2013년 3월에는 통학 차량에서 혼자 내리고 걸어가던 세 살 아이가 후진하던 차에 치여 숨진 사고도 있었다. 2015년 국회에서는 13세 미만 아이가 타는 9인승 이상 통학 차량에는 운전자 외 성인이 동승해 아이의 승하차를 도와야 한다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일명, 세림이(사고 피해자 아이의 이름) 법이다. 하지만 여전히 노란 버스에서 혼자 타고 내리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눈앞의 이익보다 아이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아이를 지켜야 할 어른이 정신 차려야 하는데, 참.



| 진짜 어른이 될 수 있기를


'어른'은 정신이나 영혼인 '얼'에서 파생된 단어로, '얼이 큰 사람'을 의미한다. 곧, 어른의 반대말은 어린이(얼이 이른 사람)가 아니라, 얼간이(얼이 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이를 먹었다고 모두 어른이라 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나이를 먹으면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얼굴'은 얼이 지나는 통로이므로 얼굴에 그 사람의 얼이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회인이라면, 시민이라면, 나이만 먹은 얼간이가 아니라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얼'을 가진 진짜 어른. 그런 어른에게 보호받고 자란 어린이들의 얼이 영글어 그들이 또 다른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일 텐데 돌아가는 사회 모습을 보면 아쉬움이 많다. 나부터 나의 얼을 갈고닦아 진짜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리 아가와 우리 아가의 친구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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