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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Jan 31. 2024

산꼭대기 호수의 환상

연재를 시작한 게 11월 말이었는데 벌써 1월 말이 되었다. 매주 소설 쓰기를 연습하다 보면 소설을 쓸 수 있게 될까, 하는 의문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마치 새로운 풍경에 감탄하며 산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쉬지 않고 내내 산을 오르다 보니 짊어진 배낭이 짓누르는 무게는 커져만 갔고 내딛는 걸음은 갈수록 느렸다. 그러다 보니 여섯째 주에 들어서부터는 글 쓰기 싫다는 이야기 말고는 어떤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은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생스럽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시간 여행 같은 걸 하다가 연재 시작 무렵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뜯어말리기는커녕 잘해보라고 격려할 것 같으니 말이다. 6주 차, 어쩌면 7주 차 즈음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배낭을 던져두고 아무렇게나 앉아서 산행이 끝나기만을 바라던 날이었다. 그러다가 바위틈에서 뭘 하나 찾았는데, 거기에는 끝까지 써야만 끝난다는 사실이 들어있었다. 다시 배낭을 지고 걷기 시작했다. 소설의 문장을 흉내 내는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는 걸 나무의 갈라진 틈에서 찾아냈고, 어느 날은 썩은 나뭇잎 더미를 들추었다가 지금껏 배운 것들을 에세이 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걸어온 길이었지만 내 발로 걸어낸 길이었다. 부족한 것은 알고 있지만 부끄럽지는 않은 이유다.



[습작 노트]

  첫차를 타고 갔어. 그런데도 주차장에 내리니까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더라. 그날 날씨가 꽤 추웠거든. 멀리서 보니까 사람들 머리 위로 하얗게 김이 오르는 것 같았어. 일행끼리 모여서 배낭을 조절하고, 등산화 끈을 단단히 묶고, 화장실에도 한 번씩 다녀오고, 아이젠을 등산화에 장착하느라고 다들 분주하더라고. 나도 마음의 준비를 했지. 집에서 몇 번 연습해 본 대로 아이젠을 덧신고 배낭을 짊어지고 일어섰어. 한 십 킬로그램쯤 됐던가? 몸이 휘청하는 거야. 그때만 해도 내가 여행 초보였단 말이지. 여행 내내 무작정 다 짊어지고 걸었어. 고생길이었지.
  등산로에 진입했어. 겨울 산은 정말 아름다웠어. 어쩜 눈이 그렇게 곱게 쌓였는지, 그런 광경은 본 적이 없는 것이었어. 부드럽고 새하얗고 고요한 세상이더라. 걷다 보니 하늘은 차가운 파란빛을 하고 있었고, 살짝 눈 덮인 오름이 저 아래 자그맣게 내려다 보였어. 오름에 해가 들자 눈을 감고 미소 짓는 얼굴 같은 게 한쪽 능선에 나타났어.
  산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오르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어. 높은 산이냐고? 그럼,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이야. 1950미터 정도 된다는데, 그래 알아, 아오라키 산은 3700미터가 넘지. 그때 내가 오른 한라산이라는 곳이 수직 절벽을 올라야 한다거나, 고산증이 나타난다거나 하는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그 정상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화산 호수가 하나 있거든. 산꼭대기에 커다란 호수가 있다는 게 얼마나 신비롭니? 난 그 호수를 직접 한 번 보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이건 꼭 기억해. 나중에 더 자라서 혼자 등산을 하게 된다면 꼭 준비된 상태에서 도전해야 한다는 걸. 특히 이곳에 있는 산은 더더욱. 나는 제대로 등산을 해본 적이 없었어. 무작정 도전한 일이야. 알아, 고생스러운 짓이지. 돌아보면 정말 고생스러운 짓을 많이도 하고 돌아다녔네. 아무튼, 걸음걸음이 고생이었어. 배낭이 짓누르는 탓에 무거운 발이 느렸고, 등산화 속으로 눈이 들어가는 바람에 걸을 때마다 질척거리고 차가웠지. 그래도 꾸역꾸역 올랐어. 나보다 늦게 오르기 시작한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갔지.
  진달래밭대피소라는 곳에 도착했어. 거기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잠시 쉬는데 누군가 그러더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 빨리 올라갔다 와야 한다고. 짐을 짊어지고 다시 길을 나섰지. 그 사람 말이 맞았어. 정말로 더 오를수록 바람이 점점 더 세차게 불었어. 내려오는 사람들이 거의 다 왔다며 오르는 이들을 격려했지. 저만치 위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보였어. 저기만 오르면 정말 하늘과 맞닿은 호수가 나타나는 거야. 나는 힘을 냈지.
  힘은 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던 걸까.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가파른 봉우리를 바람이 세차게 때렸어. 십 킬로그램짜리 배낭을 메고도 날아가버릴까 무서울 지경이더라. 몸을 낮추고 난간에 연결된 밧줄을 붙잡고 바람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며 버텼어.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춥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인지 한 발짝도 못 떼겠더라고. 나는 결국 분화구의 호수를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부탁해 그들을 붙잡고 광풍이 휘몰아치는 구간을 내려왔지.
  올라갈 때 축축하게 젖은 발가락은 이제 얼어있었어. 산을 내려오는 걸음걸음이 후들거렸지. 내려갈 사람들은 다 내려갔는지 하산하는 인파가 점점 줄어드는 게 느껴졌어. 그러던 중에 ‘멧돼지 출몰 구역’이라는 깃발이 나무 사이에 걸려있는 걸 보았어. 멧돼지로 둔갑한 산신령이 나타나서 산 아래까지 태워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했어. 결국 산행을 끝낼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었어.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어. 걷기만 했어. 주차장은 휑했어. 나는 택시를 부르고 배낭을 옆에 던져두고 아무 데나 누워버렸어.  



쓰기 싫은 날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끝까지 써낼 마음을 먹었던  그날 백록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쉽게 백록담을 보았더라면 연재를 하는 동안에도 백록담 정도는 되는 대가를 바랐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주차장 바닥에 드러누웠던 나는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긴장한 마음으로 등산화에 아이젠을 덧신던 이른 아침의 나와 다른 사람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었다. 백록담을 보았느냐 보지 못했느냐가 아닌 산을 오르는 행위 자체.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즐거운 마음, 포기하고 싶은 마음, 아무 생각 않고 발만 움직이는 상태, 그러다 보이는 희망, 계속되는 발걸음,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성취감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 같은 것들. 그날 그렇게 걷고 걸었던 것처럼, 쓰는 동안은 쓰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면 되었다.


지나고 보니 고행(苦行)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등산을 제대로 해 본 적 없으면서 혼자 겨울 한라산을 오르려 했다니. 발톱을 하나 잃었고, 발가락이 다 얼어버린 건 그 대가를 단단히 치른 것일 테다. 소설을 제대로 써본 적 없으면서 십 주 동안 내내 소설을 쓰려했던 것도 만만찮은 고생인 건 분명하다. 육체적 고생이었던 한라산 등산과 달리 정신적 고생이었던 이번 연재의 대가는 대뇌의 파업이랄까.   


아무리 고생 끝에 배우는 것이 있다고는 해도,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는 해도, 이쯤 되면 사서 고생하는 일이 습관 같은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발가락을 내주고 전과 다른 내가 되고, 뇌를 포기하고 조금 더 성장하려는 노릇이라니. 아무래도 중도(中道)가 낫다, 고행보다는. 연재를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사실은 즐겁고 쾌적하게 쓰기 위해서라도 중도의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것. 더 버텼다간 이번엔 발톱이 아니라 뇌를 하나 잃을지도 모를 일이니, 그전에 이만 하산하기로 한다.    


 

고사리 그림  |  <산>





브런치북 《쓰다 보면 소설이 될까》 연재를 함께해 주신 독자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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