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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순 Oct 11. 2024

이게 다 스마트폰 때문이야.


    안개가 잔뜩 낀 날이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출근 버스 타러 가는 길, 회색빛의 거리는 생기 없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맹한 표정과 힘없는 걸음걸이를 걷는 사람들처럼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버스 창가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할 거 같은 뉴스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반대편으로 돌려보니 엄마와 그 품에 안긴 아이가 앉아있었다. 대략 5살쯤 돼 보이는 아이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뭘 보는지 궁금해서 나도 같이 창밖을 쳐다봤다. 흐린 안개가 자욱해서 뭐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눈을 총명하게 뜨고 창문 밖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서 느낄 수 없는 그런 눈이었다. 나는 그제야 스마트폰 액정 속에 비친 내 눈이 보였다.  생기 하나 없고 참으로 형편없었다. "창밖을 봐도 감흥 없는 사람은 이런 눈이구나. 나도 예전에는 저런 눈을 갖고 세상을 바라볼 때가 있었을 텐데.." 그런 슬픔에 빠지다 보니 아이의 눈이 정말로 부러웠다. 아니 닮고 싶었다. 무엇하나 보이지 않는 창밖에서도 무언가를 발견하는 아이처럼 나도 세상을 또렷하게 바라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세상에 관심을 두지 못한 건 스마트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이 작은놈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으면 카톡, 인터넷, 쇼핑, 뉴스, 인스타, 유튜브, 책, 만화 등등 이리저리 앱을 넘나들게 된다. 일종의 티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재밌는 것을 찾기 위해 채널을 넘기는 것처럼 스마트폰 하는 내 행동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무분별한 스마트폰 사용습관이 나를 작은 화면 속에 벗어날 수 없는 바보로 만들었다.


    그래서 요즘 스마트폰이랑 거리를 두고 있다.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가급적 열어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그런 경우가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밖에서 걸을 때는 걷는 것에 집중한다. 고개를 올려 하늘의 구름을 보기도 하고 주변의 차와 지나가는 사람들 산책하는 강아지, 제각기 건물들의 생김새와 보도블록 그리고 나무까지 유심히 보고 있다. 가만히 앉아있거나 움직이지 않을 때도 주변을 바라보거나 책을 보거나 사색을 하거나 글을 쓴다. 음악도 쓸데없이 틀어 놓지 않는다. 특히 운전할 때는 운전만 하고 샤워할 때는 거울을 보며 정직하게 씻는다. 한 번에 한 가지씩이라는 태도로 임하다 보니 지금 행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스마트폰을 들락날락거리지 않는 것만으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주변세상과 훨씬 가까워지다니 신기했다. 흐릿했던 내 눈이 이제야 조금씩 또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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