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나무를 하러 간다’는 말은 옛날이야기 속 문장이 아니었다. 우리 동네 아저씨들은 날을 잡아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우리 아빠도 그중 한 명이었다. 아저씨들이 돌아오면 뒷마당엔 통나무가 쌓였고, 윙윙거리는 전기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끄러워 귀를 막기도 했지만, 날리는 톱밥과 나무 냄새는 이상하게 좋았다.
아저씨들이 돌아간 후에는 아빠가 장작을 팼다. 엄마는 수제비를 끓였고, 나랑 동생은 장작개비를 벽 쪽에 가지런히 쌓았다. 나도 아빠를 따라 도끼를 들어 보았다. 도끼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나무는 쉽게 쪼개지지 않았다. 아빠가 할 때는 쉬워 보였는데. 몇 년이 지나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나무를 자르는 요령이 생겼다. 힘을 꾹 주는 게 아니라, 호를 그리듯 팔을 자연스럽게 정확한 위치로 내려놓는 것이었다. 장작이 반으로 쫙 갈라지는 순간의 쾌감을 그때 알았다.
추운 계절엔 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나와 동생은 장작이 쌓인 곳으로 가서 두 팔을 쭉 내밀었다. 아빠가 우리 팔 위에 장작을 올려주면 나는 동생보다 더 많이 달라고 했다. 내가 누나였고, 키도 더 컸으니까. 나무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부엌으로 가져갔다. 한밤중에 불이 꺼지면 아침에 오들오들 떨 수 있으니, 미리 장작을 준비해 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잠자리였다. 우리 가족 네 명은 한 방에서 잤다. 겨울이면 온돌의 아랫목이 가장 뜨거웠다. 장판이 누렇게 탈 정도였으니, 아무리 두꺼운 요를 깔아도 뜨겁고 답답했다. 그곳이 아빠의 자리였고, 그 옆이 엄마 자리였다. 엄마 자리는 잘 때는 덥지만 새벽에는 따뜻해지는 곳이었다. 그다음이 동생 자리였다. 잘 때 따뜻하고 심지어 엄마의 옆자리. 그다음이 나, 제일 윗목, 잘 때는 괜찮았지만 아침이 되면 점점 추워지는 자리.
어느 날, 나는 불만을 터뜨렸다. "나이로 하면 아빠, 엄마, 나, 동생 순인데, 왜 내가 제일 끝에서 자야 해?" 엄마는 "동생이니까 양보하는 거지"라고 했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는 그럼 엄마자리에서 자라고 했다. 거긴 잘 때 너무 덥고 내가 원하는 건 세 번째 자리인데, 이 질문에서 고를 수 있는 답에는 세 번째 자리가 없다는 걸 알았다. 왠지 서운하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친구는 오히려 잘된 거라고 했다. "호랑이가 배가 고파서 마을에 내려올 때가 있대. 아무 집이나 골라서 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방 문 제일 가까이 자는 사람은 안 물어 간대. 꼭 안쪽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을 잡아간대!" 친구는 그래서 일부러 문 옆에서 잔다고 했다. 나는 억울했다. 난 맨 끝에서 자는데 거긴 문 쪽이 아니다. 문은 내 발밑에 있었다. 맨 끝에서 자면서 호랑이한테 물려갈 수도 있는 거였다. 그날 밤, 나는 괜히 문쪽으로 가서 누웠다. 이왕 서러운 거 호랑이한테 잡아 먹히지는 말자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어둠 속에서도 내 움직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거기 왜 있어? 추운데, 얼른 이리 와." 나는 답답해서 잠깐 있는 거라고 했다. 혼이 날까 봐 다시 내 자리로 왔다. 엄마 아빠가 잠이 든 거 같아서 다시 문쪽으로 갔는데, 찬바람이 들고 바닥도 차가워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밤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창호지 사이로 달빛이 들 때 호랑이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까 눈을 질끈 감았다. 한동안 나는 불안했는데, 내 두려움과는 달리 호랑이는 영영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커서 다시 생각해 봐도 나는 조금 찬밥 신세였던 것 같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내 친구는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을까?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해주면서 내 친구를 문 옆 추운 자리로 보냈던 걸까? 아니면 나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친구가 꾸며낸 이야기였을까?
난 아직도 가끔 그때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