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걸 왜 하지?
왜 그림책을 만들자고 했을까?
'내가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왜 하자고 했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1.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어서?
아니다. 그림책은 좋지만 그림을 그릴 엄두는 나지 않았다. 책소리 활동으로 15분 내에 읽어줄 수 있는 종류가 그림책이기에 친해진 것은 맞다. 그러다 그림책이 주는 위안과 응원과 의미가 좋아 그림책을 공부하고 나누고 있다. 하지만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단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어쨌든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었더라도 그럼 혼자 하고 말았을 것이다.
2.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하기 싫어서?
일부 인정. 과거에 했다는 인형극이나 그림자 공연 등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준비하는데 몇 달을 쓰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많은 문화교육과 체험을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굳이? 한 시간 남짓, 아이들의 즐거움을 위해 몇 달을 고생한 후 우리들에게 남는 건 무엇이지?
그래. 학부모 동아리니까 학부모 회원에게 남는 것을 하고 싶었다.
3. 책을 쓰고 싶어서?
그래. 책을 쓰고 싶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림에는 소질이 없으니 그림책 작가를 꿈꿨던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다. 어떤 책을 쓰든 여러 명이 같이 진행하면 서로에게 자극도 되고 도움이 되고. 중간에 포기할 확률이 낮아질 것임은 분명하다. 그럼 그 어떤 책은 무엇이냐? 가장 명분이 될 만한 것이 책소리 활동으로 할 수 있는 그림책이었던 것이다.
그래. 뭐 이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이 프로젝트를 10월 초부터 진행하면서 11월 말이 되어서야 진짜 이유를 알아차렸다.
나는 다른 사람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그 자체로 좋았다.
분명히 다들 저마다의 재능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것을 드러내지 않거나 못 하고 있는 것일 뿐. 저마다 마음속에 이야기책 한 권은 있고, 요즘같이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는 시대에 '책 한 권 내보고 싶다.'는 욕구는 이 책소리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있을 것이리라. 혼자는 어떻게 할 줄 모르지만, 누군가 '일단 한번 해보자.'하고 내지르는 소리가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잘 모르지만 일단 저질러봤다. 공부하고 나누고 또 배웠다.
'글 쓰기 시작할 땐 정말 막막했는데, 글 쓰고 나니까 진짜 뿌듯하더라.', '진짜 그림 한 컷 그리기 너무 힘든데, 그린 걸 보면 내가 너무 뿌듯해!'라는 회원의 말은 그 자체가 희열이었다.
아, 그래서 내가 이걸 하고 있구나. 돈 받고 클래스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봉사 점수가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내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이것을 이끌어가고 있는 이유. 대학원도 회사도 아니고 애들이 다니는 학교 학부모 동아리에서 이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이유. 그 사람들 속에 갖고 있는 재능과 이야기를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도록 어떤 한 길을 안내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는 것이 정말 너무 뿌듯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교육학을 전공한 것도, 퍼실리테이션을 배워 나눈 것도, 내 아이들과 생각 수업을 한 것도, 나만의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다 점들이 연결된다. 나는 <타인의 성장을 돕기 위해 나를 성장시키는 사람>이구나. 나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이 세상에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일 수 있겠구나.
아. 뿌듯하다.
내가 좋아진다.
나는 창작 멤버들 중 정말 멋진 글과 그림을 그린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그들의 재능과 잠재력을 그대로 인정하고 칭찬한다. 그들의 작품 때문에 내 작품이 시시하거나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나름대로 차별화 요소를 고려하며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할 수 있는 만큼의 그림을 그릴 뿐이다.
"과장님은 배 아파하지 않고, 진짜 축하해주는 것 같아요."
직장 동료이면서 입사 기준으로는 후배였던 대리 한 명이 책을 한 권 냈다. 기획출판으로 편집자와 소통하고 출판사가 홍보도 해주고 인세를 통장으로 받는 출간 작가가 되었다. 나 또한 언젠가는 책 한 권 내리라 버킷리스트에 꼭 포함시켰지만, 책 한 권 나올만한 사전 조사도, 글쓰기 연습도, 꾸준한 투고도 어떤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어려운 것들을 다 하고 목적을 달성한 그 사람은 정말 축하받아야 한다. 대단한 사람이다. 그저 축하해 줬을 뿐인데 진짜 축하해줘서 고맙단다.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엔 '아는 사람이 책을 내면 배가 아프다.'인 것 같다.
그런데 정말 확실한 건, 다른 사람이 좋은 책을 내면 나는 배가 안 아프다. 정말 축하하고 싶다. 그가 책을 내는데 나의 도움이 들어간다면 그건 정말 뿌듯할 일이다. 그래서 창작 멤버 7명이 모두 이 과정을 헤쳐나가고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고 뿌듯하다.
그것으로 다시 힘을 얻는다.
* Photo by Ian Schneid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