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버스를 타고 출근하던 길 문득 ‘버스 사고 나서 나만 다쳤으면 좋겠다 회사 안 가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회사 근처에 도착했을 때, 같이 일하는 작가님께 연락이 왔다. 내 상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 그분은 나에게 “혹시 교회 가볼래?”라고 물어왔다.
나는 무교였고, 그 무엇도 믿지 않았던 내게 해온 제안. 평소 같았으면 단칼에 거절을 했을 테지만 그날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을 만큼, 누군가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럴까요”라고 대답한 후 버스에서 내리니 도착한 회사. ‘또다시 반복이겠지’하면서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늘 그랬듯 정신없는 오전을 보내고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식사시간이 되어도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프로그램을 옮기고 난 후에는 밥을 먹으면 체한 것 같아 식사를 건너뛰는 일이 잦았다.(마음도 힘든데 이제는 몸도 말썽이구나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날도 점심을 안 먹으려고 했지만, 선배 작가는 배가 고프지 않다는 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밥을 왜 안 먹냐며 어서 와서 먹으라고 말했다. 얼굴을 보면서 밥 먹을 자신이 없었지만, 더 이상 그녀의 말에 반응하기가 힘들어 같이 가서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오후에 일을 해야 하니까 나를 위해 먹자는 마음으로. 점심시간에 사무실은 고요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고요함이 깨졌다.
메인작가님 중 한 분이 내가 입고 다니는 겉옷 보고는 “밖에 20도가 넘어, 울코트 안 더워?”라고 물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도, 버스를 타고 창밖을 봤는데도, 봄이 왔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봄이라니, 20도가 넘다니, 대체 언제..’ 당황스러웠고, 착잡하기도 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어있는 벚꽃을 발견했다. 그런데 벚꽃이 핀 장소가 매일 타고 다니는 지하철 출구 앞이었다. 하루에 두 번 지나다니는 길. 분명 꽃은 초록색 잎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만들고 나서야 꽃을 활짝 피웠을 텐데. 앙상한 가지가 색을 입기 시작했을 때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만 계속 겨울 속에 있었던 것이다.
기온이 20도가 넘는 따뜻한 봄에 울 80%가 들어간 코트,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 맞이한 벚꽃.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정신과 마음은 피폐해져 있었다. 체중도 짧은 시간 동안 4킬로가량 빠져버린 탓에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한편으론 ‘몸 상태가 더 나빠지면 쓰러지겠지, 그러면 당분간 선배 작가를 안 볼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위태롭게 겨우 버텨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회사는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고, 그만둘 이유도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곳이 아니면 다른 곳에 갈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곳만이 부족한 나를 받아주는 유일한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난 항상 출퇴근 길에 수십 번을 고민하다가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또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작가님께 그만하고 싶다고 울면서 말하다가도 스스로 ‘넌 더 할 수 있어, 잘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나가면 어떻게 해’라며 채찍질했다. 마음은 지옥이었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나는 나를 계속 외면했었다. 하지만 이제 아니라는 것을, 정말 한계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회사에서 도망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