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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Mar 04. 2023

인간에게는 생명이 전부기 때문에

지진이 난 튀르키예로 가다 (1)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계셨던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날 나는 장례식장에서 튀르키예에 대규모 강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때의 뉴스는 사상자가 1만여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그 때 나는 죽음들 사이에 서 있었다. 가까운 이의 죽음과, 얼굴 모를 이들의 죽음과 그 애도, 그리고 내가 잠시 거했고 사랑했던 땅에서 일어난 재앙과 가늠조차 되지 않는 죽음들. 


이튿날 입관식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육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그분이 누워계신 곳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멀리 유리문으로 그분의 육신을 보았다. 충격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건강하실 적 등산을 좋아하시던 풍채 좋은 퇴직 공무원이었다. 그리고 염색한 머리숱을 정갈히 빗어 넘기고 손주들이 찾아오면 "오늘은 누가 할아버지 방에서 잘거냐"고 묻던 정 많은 노인이었다. 술마시는 것을 즐겨 식사를 하면 꼭 반주를 했지만 결국 그 비워진 잔들은 할아버지의 기억들도 비워내고 갉아먹었다. 돌아가시기 세 달 전쯤에 요양원으로 면회를 간 것이 기억났다. 그때보다 조금 더 마른 듯 보였지만 분명히 그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너무나 생소했다. 생명이 빠져나가 가지런히 누워있는 육신은 정말로 생소했다. 분명히 내가 그 때 보았던 그 분의 형상은 저기에 있으나, 그 분은 이제 여기에 없다. 순간 살아계실 때, 생명을 가졌을 때의 할아버지가 너무 그리워져서 눈물이 나왔다. 내가 사랑한 것은 생명이 있는 그분이었구나. 이 육체 앞에서 우리는 생명이 있었던 그분을 기억하고 눈물 흘릴 뿐이구나. 


생명이 전부다. 인간에게 생명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내 앞에 놓인 한 사람의 죽음을 본다. 그의 아들딸과 며느리와 사위. 그리고 그의 자식들까지. 족히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기 누워 있는 한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그의 생명을 깊이 그리워하며, 그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 인하여서 슬퍼하고 그리워한다. 


나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 아래 깔린 수만명의 육체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수백만, 수천만의 영혼들을 떠올리려 한다. 그러나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와 연결된 사람에게 깊은 흔적을 남긴다. 날카로운 칼날이 연약한 살결에 낼 수 있는 상처보다 더 깊게. 


아, 하나님. 

이 세상에 생명보다 귀한 건 없어요. 

삶의 목적은 생명 아닌 그 어떤 것이 되지 못합니다. 




터키, 지금은 튀르키예로 이름이 바뀐 그 나라는 나에게 특별한 연이 있는 곳이다. 나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내가 살았던 이스탄불의 메지디예쿄이 메트로 역 부근의 그 어지럽던 차선 도로를 그릴 수 있다. 매캐한 담배향과 뜨거운 햇빛의 냄새가 섞여 들어오면, 나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다. 손에 들고 있는 생수통은 너무 무겁게 느껴지고, 차의 경적 소리가 뒤에서 나를 훑고 지나간다. 나에게는 정겨우면서도 여러 가지 힘들었던 기억들이 있는 땅이다.  


그 땅은 흔들렸고, 수많은 집과 건물들과

생명들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곳에 가야겠다. 가야만 하겠다. 


할아버지의 발인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의 결심은 더욱 굳혀져갔다. 그런데 어떻게?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가서 뭘 할건데? 무얼 할 수 있는데? '가야만 한다'는 마음은 점차 '만약 갈 수 있다면'이라는 조건문을 선행사로 취했다. 그리고 나는 며칠이 지나면 이런 격정은 수그러들고 점차 내 앞에 놓여진 현실들을 살아갈 것이란 걸 알았다. 


그런데 누군가는 나의 읊조림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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