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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Mar 08. 2023

우리 마을이 웃는 법을 잊고 있었는데

지진이 난 튀르키예를 가다 (4)

어젯밤 새벽 한 시경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암막커튼 사이로 새어나오는 바깥의 빛이 있어 천장이 보였다.


그러니까, 저 천장이 갑자기 내려앉은 것이었다.

지금과 비슷한 이 시간. 날마다 올려다보던 저 천장이. 무방비하게 누워있는 내 몸 위로 순식간에.

물론 나는 머릿속으로만 그려볼 수 있을 뿐이어서, 무거운 콘크리트의 감촉이나 쾅 하는 굉음이나 하는 것들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갈 뿐이다.


 

1. 아름다운 산을 둘러싼 테키르의 병원에서 진료


두 번째로 의료봉사를 간 곳은 베이스캠프에서 넉넉하게 40분 정도를 운전해서 가야 하는 작은 촌락이었다. 이름은 테키르. 이번에는 학교 건물이 아니고 지진으로 운영을 중단한 마을 보건소에서 진료를 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진료실, 수액실, 대기실로 만들어야 했던 이전 상황보다는 훨씬 나았다. 공간을 필요에 맞춰 꾸밀 필요가 없었으니까. 보건소에서 의사의 서기로 일했던 젊은 여성이 우리를 맞이해줬다. 그녀는 마치 우리와 원래 한 팀이었던 듯 필요한 장소의 위치나 비품 사용 등을 척척 도와주었다.


나는 소아과 진료실 앞에서 안내를 했다. 환자들을 줄 세우고 순서가 되면 들여보내주는 문지기 역할이다. 진료할 때 통역도 필요했고, 환자들이 어른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운 영혼이면서 병원의 기운은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진료 시간은 조금 더 걸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문 앞의 기다리는 아이들, 보호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대부분은 겨울철 천막 생활로 감기에 걸린 아이들이었다. 특히나 이 작은 촌락에는 지진으로 인한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광활한 산을 둘러싸고 너무나 평화로워보이는 이곳에 죽음과 공포의 그늘이 드리워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2. 표정을 잃어버린 사람들


병원에 찾아온 사람들은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어디가 아파서 왔냐고 물으면 그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8층에서 자다가 뛰쳐 내려왔는데 눈앞에서 13층 건물이 무너졌다고

부모만 살고 5명의 자식들이 다 죽었다고

5층에서 떨어져 한쪽 어깨부터 다리까지 중상을 입었다고


그런 엄청난 일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일들 중에 내 인생에서 단 하나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들이 언급한 사람들 중에 내 인생에서 단 한 명이라도 죽는다면

나는 그 인생을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은 엄청난 일들을.


비극적인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고통의 수위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버리면 어느 순간 무감각하게 된다. 그것을 듣는 나도 그들과 비슷한 얼굴을 할 수밖에 없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무감각하기보다 그 일 자체가 어떤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서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할 수도 없다. '모르기 때문에'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었다.

우리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과 함께 그 시간에 존재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3. 우리 마을이 웃는 법을 잊고 있었는데…

 

그렇다. 그곳에 있던 우리가 보았던 것은 고통과 눈물뿐만이 아니었다.

감사와 평안과 치유의 시작을 보았다. 어려움을 겪은 마을에서, 우리도 그들과 같이 어두움과 상처에 충분히 묶여있을 수 있었다. 그런 아픔을 먼 나라에 있는 우리도 느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온 것이다.


그러나 마을에 온 지 이틀이 되는 날 무표정하던 이곳에 온기와 생기가 점점 생기는 것을 보았다.


감사가 있었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감사를 전했다.
평안도 있었다. 굳은 얼굴로 횡설수설하며 들어왔던 아저씨가 나갈 때는 해같이 웃는 얼굴이었다.
아이들이 아이다워졌다. 바깥에서 봉사자들과 함께 뛰어놀던 아이들은 “여기가 천국인 것 같아!”라고 외쳤다.
치유가 시작되었다. 어떤 환자는 서투른 터키어로 "geçmiş olsun(빨리 나으세요)" 라는 말을 건넨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선생님을 안으며 친밀한 인사의 표시로 볼에 입을 맞추었다.
웃음이 시작되었다. 마을 이장님이 말씀하길 "우리 마을이 웃는 법을 잊어버렸는데, 너희가 와서 웃을 수 있었다. 너희처럼 웃고 싶다"

 

이곳은 더 이상 슬픔과 상실과 어두움의 땅이 아니다.

튀르키예는 더 이상 비극적인 땅이 아니다. 이 땅의 민족들은 이제 빛 가운데 거하리라.


천국은 그렇게,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가장 낮은 곳에 있다(마5:3, 19:14).

나는 지진의 진앙지인 카흐라만마라쉬에서 천국을 보았다.


사랑스러운 네 아이들. 자매와 친척사이라고 했다.
사랑스러운 부자. 아들을 끔찍히 사랑하는 걸 숨기지 않는 터키 아버지는 처음 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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