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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Mar 06. 2023

전쟁과 지진이 지나간 불모의 땅에 꽃이 피려면

지진이 난 튀르키예로 가다 (3)

의료구호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여러가지 소통과 이동을 거친 뒤였다.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던 초등학교가 일일 병원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기도가 있었으리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그 전에 과연, 필요들이 얼마나 존재할까? 나에게 있어 두려운건 아무 필요도 없는 곳에 잘못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왔다. 우리는 처음 온 곳에서 처음 주어진 일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환자들을 줄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초진, 그 이후 동선까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환자들과 보호자들, 아이들까지 점점 사람이 많아지고 아직까지는 생소한 터키어의 사용. 그러면서도 점점 질서가 잡혀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와중에도 질서정연하게 각자의 자리를 잡고 생소한 언어로 환자들을 안내하고 진료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놀라는 지점은 그 모든 것이 엄청나게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누가 우리를 도운 걸까? 서로서로를 바라보지만 그것은 누구의 공도 아닌 것 같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도록 손을 뻗친 것 같았다. 그 땐 우리 중 누구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한마음이었으리라. 




나는 그곳에서의 이틀 내내 배치받은 일은 수액실에서의 보조 역할이었지만, 주로 바깥에 가서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고 안내하는 일을 했다. 그 일이 나에게 특별히 주어진 것도 아니고, 밖에 잠깐 지나가고 있는데 '이걸 해라'는 식으로 맡겨졌다. 바깥에서 진료소를 바라보면서 이 일은 정말이지 내가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인데다가 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의 중요성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일 같다는 차가운 자의식이 불쑥 솟았다.


그것은 곧 나를 늪에 빠지게 한다. 

결국 넌 안 와도 괜찮았던 거야.

 

내가 지금 여기에서 뭘 하는 거지? 


나는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 늪에 자주 빠졌었다. 

과거의 일들이 내 뒤통수를 잡아채기도 했지만, 

어떤 날은 스스로 걸어들어갔다. 

넌 중요하지 않아. 넌 평생 그늘에서 살겠지라는 말에서 위안을 얻기도 했다. 

때로는 그것들에 취해서 나 자신을 지워버리고 고통받는 나 자신을 내려다보며 깔깔대고 싶었다.


깎아지른 벼랑 끝에 서 있는 나의 어깨를 누군가가 살며시 잡는다. 

아니. 아니야. 

그건 거짓말일뿐더러

지금은 그런 곳에 걸어들어갈 때가 아니야.


고개를 돌렸다.

이곳을 덮친 무시무시한 진동과 그 날의 격동이 바꾸어버린 이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어디 서 있는지,

내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시선을 돌려서 그들을 바라보라.


수심 가득한, 웃지 않는 얼굴들. 

그들에게 다가가 종이를 건네고 아픈 곳을 물었다. 

할 수 있는 건 정말 그것뿐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이곳에 와줘서 고맙다고, 여기까지 와서 도와줘서 고맙다고 축복의 말을 내게 건넨다.


나는 이 사람들을 만나러 왔다. 

이 짧은 순간 그들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칠 때

웃음을 전해주고, 축복을 말하고,

그 시간 속에서 당신의 생명이 너무나 귀중함을 알리러 왔다. 


세상에.나의 일은 너무 귀중한 일이었다. 찾아온 이들을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들의 모든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내가, 우리가, 여기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알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도 살았다. 

나를 질식시키는 못된 생각들에서 벗어나 삶 가운데로 걸어들어올 수 있었다. 




작년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을 위한 구호센터에 있을 때, 나는 천국을 경험했다. 아름다운 휴양지에서도, 기후가 안온한 곳에서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 때도 단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천국을. 그곳은 '누구도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돌보고, 다른 사람의 안위에 초점을 맞추어 움직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 내 자신에 대한 지나친 사랑과 보호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필요와 행복으로 눈을 돌리게 될 때 진정한 자유가 시작된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최고의 예우일 수 있다.


폴란드 프쉐미시 구호 센터에서의 이불소독


그렇게 우리는 전쟁도 지진도 극복해 나갈 수 있으며, 

모두 희망 없다고 돌을 던지는 불모의 땅에 꽃을 피워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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