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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Mar 04. 2023

나의 집은 어디 위에 지어져 있는걸까

지진이 난 튀르키예로 가다 (2)

튀르키예에 방문한 건 4번 정도 되고 이번이 5번째 방문이지만, 겨울이라는 계절은 처음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항상 여름에 갔던 것이다. 많이 추울 것으로 예상했고 천막에서 잘 거라고 들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는데, 우리를 맞아주는 것은 따스한 햇살이었다. 우르파 공항에서 짐을 찾고 준비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직도 내가 이 땅에 있는 것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 놀랍게도 의료구호팀의 결성 소식을 들었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앞서 의료인은 아니지만 지원을 했었다. 예상보다 비싼 비행기 티켓에 아주 잠깐 주저했지만, 나의 돈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얼마가 들더라도 가는 것이 중요했다.


달리는 버스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량한 밀밭과 앙상한 나무들. 저 멀리 보이는 넓은 풀밭들. 마치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하고 묻는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저 허공에 묻고 싶었다.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출발한 지 세 시간쯤 되어 카흐라만마라쉬 지역에 진입했다. 긴장되는 마음이었다. 벌써부터 벽이 갈라진 집과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 같은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 말고도 모두가, 앞으로 보게 될 광경에 주의를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모든 건물들이 다 무너져있지는 않았다. 처참하게 사라져있지도 않았다. 벽이 무너져 건물이 훤하게 드러나있는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tv에서 보던 광경을 실제로 보게 되었을 때 곤두세워지는 신경. 순간 나는 지진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려는 나 자신에게 불쾌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더 자극적이고, 더 처참한 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아내려는 나 자신에게. 인간의 감각이란 그런 것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하나님, 어떤 마음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앞으로 보게 될 참상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그곳에 앞으로 일어날 일, 내가 바꿀 일들에 주의를 집중하여 보고, 기대하라!


맞다. 내가 집중할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얼마나 무너졌는지, 얼마나 끔찍한지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채로 이미 일어나버렸다. 나는 지진 이후의 시간을 보내러 온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어떤 고통이 수반되었는지 자세히 알려는 게 아니라, 죽음 이후 남아있는 생명들을 만나러 온 것이었다.



무너진 건물들 뿐만 아니라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이 있었다. 바로 '나무'였다. 갈라지고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꼿꼿하게 서 있는 나무들. 그들이 흔들림에도 무너지지 않은 것은 땅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작물이 아닌 신의 창작물. 토양에 뿌리내려야만 살 수 있는 생명들.


지금 나의 집은 어디에 지어져 있을까?

내가 집이라면 나는 어떤 집인가?


단단하고 아름다운 외벽으로 가꾸고 더 많은 조망을 갖기 위해 높이 올린 집인가?

아니면 외부의 힘으로부터 지켜줄 울타리도 벽도 없는,

땅에 뿌리내린 나무와 같은 집인가?


모든 인간에게 거할 집이란 중요한 것이고

집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동을 투자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진이 오면 지금껏 나를 지켜주던 집은 내 위로 무너져내려 나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집을 짓는 것이 옳은가.

천막을 들고 다니며 옮겨 사는 것이 불편하지만 안전한 삶일지도 모른다.


창세기에는 바벨탑과 같은 높은 성벽을 쌓아 자신들을 보호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던 백성과

무방비한 천막에 살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백성들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원래 초등학교였는데 지진으로 학교 문을 열지 않고 지금은 피난민 및 현지인들의 임시 숙소로 쓰이고 있었다. 몇 개의 천막도 보였다. 남자들은 천막을, 여자들은 학교를 숙소로 쓴다고 한다. 천막에서 못 자보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훨씬 좋은 처사였다. 하지만 가스가 끊겨 따뜻한 물을 쓸 수 없고, 머리감기나 샤워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미 예상했던 것이었지만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 머무른 약 일주일간도 귀찮은 문제조차 되지 않았다. 이 땅에 닥친 엄청난 어려움 앞에서 인간의 필요들은 무색해지고 만다.


그것이 내가 튀르키예 땅에서 경험한 천국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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