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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Jun 10. 2023

지진의 땅에 아이들이 만들어낸 천국

지진이 난 튀르키예로 가다 (6)

튀르키예에 강진이 온 지 D+17. 세 번째로 우리 팀이 의료구호활동을 위해 방문한 곳은, 우리가 지내고 있는 카흐라만마라쉬 시내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엘마랄(Elmalar)' 이라는 마을이었다. '사과들'이라는 뜻인데 정말 마을 이름을 과일에서 따온 것인지는 몰라도 예쁜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름만 예쁜게 아니라 그 마을은 내가 튀르키예에서 봤던 곳 중에서 제일 전원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이스탄불이나 앙카라에서는 결코 볼 수 없던 풍경. 운전해주시던 분은 "반지의 제왕"에 나올 것 같은 풍경이라고 말했다. 정말이었다. 사우론의 탑과 가까운 곳들은 아닐테고, 호빗들이 군락을 이루며 살아가던 샤이어 마을 같은 곳. 지진이라는 재앙을 잊을 정도로, 마치 그런 것이 언제 이곳을 훑고 지나갔냐고 물을 정도로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은 고요하고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은 '어린이 담당'이었다. 이 전의 마을들에서도 어른들의 손을 잡고 진료실에 찾아오는 어린이들을 놀아주는 담당자들이 있었지만 나는 항상 진료보조를 했기에 조금 긴장이 되었다. 평소에 아이들을 좋아하고 잘 놀아준다고 생각하는 편도 아니었고, 아이냐 노인이냐 택할 수 있다면 언제나 후자 쪽이 마음이 더 편했다. 아이들을 싫어한다기보다는, 아이들의 텐션에 비해 나는 너무나 정적인 사람이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이들과 놀 때 기쁨을 얻는다면 나는 소모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날 아이들을 좋아하고 잘 놀아주는 지원군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가는 곳은 단지 진료소를 찾아오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그 동네를 방문해서 마을회관에 천막을 치고 진료를 보기 때문에 '그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다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눈앞이 아찔해진다. 그래도 설마, 그렇게 큰 마을도 아닐텐데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오지는 않겠지..?


저 순수한 얼굴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아이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 동네의 거의 모든 아이들을 불러모은 것 같았다. 풍선을 만들어주려고 테이블을 펴는데, 스무 명이 넘는 많은 아이들이 내 앞으로 달려와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거의 공포 비슷한 것을 느꼈다. 저 순진하고 희망에 가득 찬 눈망울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한숨도 나왔다. 왜 하필 내가 할 때 이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오는 거야. 원망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워밍업으로 강아지 풍선을 만들어주자 두 쌍의 눈들이 열심히 그것을 좇는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다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점점 더 불편해졌다. 게다가 우리는 현지 의사로부터 옴이 있는 아이들 때문에 장갑을 껴야 하고, 아이들을 만지면 안 된다는 주의를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차광막이 쳐져 있어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었던 곳에서 추방을 당했다. 그래서 우리는 진료 보는 곳과 조금 떨어져 있는 공터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곳에는 그늘막은 없었지만 꽤나 넓어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상을 펴고 가져온 물품들을 하나하나 꺼내놓았다. 세울 수 있는 작은 농구골대와 공, 비즈 만들기, 색종이, 무거운 스케치북 대신 A4용지와 크레파스와 색연필, 아이클레이, 에코백 그림 그리기.. 이곳저곳에서 후원받거나 구매해 한국에서 가져오거나 터키에 사시는 분들이 가져온 물건들이었다. 


물품들만 보자면 사실 별 게 아닌데, 아이들은 너무나 즐거워했다. 접이식 책상 위에 옹기종기 모여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며 옆의 아이에게 혹은 나에게 이것저것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천국을 그려보거나, 앞으로의 꿈에 대해서 그리거나 적어보라고 했다. 뭘 하고 있나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내 터키어 이름을 적고 그 옆에 자기 이름을 적어놓았다. 너무나 귀엽지만 동시에 웃기기도 했다. 한국인을 본게 난생 처음이라며 사인을 요구하는 두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고 "내 사인을? 왜?" 하고 외쳤다. 아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요구했다. 카드 결제할때도 잘 하지 않는 사인을 터키에서 할 줄이야.



부끄러웠다. 아이들을 놀아주고 잘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 나는 그런 것을 별로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별 도움 안되는 자의식. 그 모든 것 앞에서. 아이들은 그냥 두어도 즐거워했다. 간혹 가다가 자기에게 물건들을 달라던지 더 달라던지 하는 요구를 하는 아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이야 원체 그러니까. 하지만 대부분은 고집을 부리거나 욕심을 내지 않았다. 정말 순수하고 맑은 시골 아이들이었다. 다들 서너명, 많게는 여섯일곱명의 형제자매들이 있단다. 집안에 형제들이 많아 늘 양보해야했고 자기의 것을 쉽게만은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일 것이다. 나이가 어린데 벌써 히잡을 쓰고, 본인도 어린이면서 더 어린 동생을 안고 다니는 아이들도 많았다. 이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물었을 때 아이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여기, 이 작은 마을 바깥을 거의 벗어날 일 없이, 부모의 노동과 가사를 분담하며 무관심에 길들여졌을 아이들. 최근 지진까지 경험하며 트라우마와 공포를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아이들이 한국의 아이들보다 더 불행하다거나 어려운 처지라거나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천국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있다면 이 아이들의 모습과 훨씬 비슷할 것 같았다. 분명, 어려운 상황이지만. 자기 자신에게 빠져들거나 다른 사람을 시기하거나 넘보지 않으면서.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작은 것들에 즐거워하는 아이들. 



수데라는 이름을 가진 한 아이가 꿈을 적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자신의 소망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이라고 한다. 얼마나 아이답고 또 아름다운 소망인지. 수데의 꿈은 내가 여기 올 때 타고 온 비행기를 단지 '타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하늘을 오를 때의 그 경이와 자신의 발로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는 것.. 그것일거다. 


지진이나 가난 여러 질병들은 늘 존재하고 가끔은 예상치 못하게 우리의 뒤통수를 치기도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웃음은 그 모든 것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나의 우울이나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들도 그들의 눈망울 안에서 녹는 것 같았다. 어린아이의 웃음과 즐거움이 튀르키예 땅에 흘러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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