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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Jul 07. 2023

어린양과 아이들이 내게로 왔다

지진이 난 튀르키예로 가다 (7)

지진 피해가 심각한 지역 중 하나인 카흐라만마라쉬, 아이들이 많던 예쁜 엘마랄 마을. 뜨겁던 해가 점점 기울어지고 많던 환자들도 많이 줄게 되면서 철수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아름다운 마을의 풍경을 한번 더 눈에 담고 싶어 우리가 있던 곳 뒤에 건물들의 잔해와 같이 언덕이 나 있던 곳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낯선 풍경 사이에 홀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난 늘, 내가 밟고 있는 땅과 보고 있는 곳 앞에서 잠시 멈춰선다.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며 변화무쌍한 인생이 재미있다고도 느낀다.


튀르키예에 자주 왔지만, 이 도시는 처음이다. 81개 도시를 다 가볼 수나 있을까? 산이 둘러싸고 있는 고요하고 전원적인 풍경. 지진이라는 일이 나를 이 아름다운 곳에 오도록 했다. 전자는 피할 수 없었지만 후자는 내가 선택할 수 있었으니 감사하다. 





그렇게 풍경을 느끼는 도중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저 멀리서 누군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올라 있는 작은 언덕 맞은편에 집이 있었는데 가깝지는 않았고, 그쪽으로 가려면 길이 나지 않은 경사길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그 길을 가로질러서 걸어오는 이들은 검은색 히잡을 쓴 한 여성과 여자아이였다. 그런데 히잡을 쓴 여성이 무언가를 안고 있었다. 가까워지기를 지켜보니 작은 양을 한 마리 안고 있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히잡을 쓴 여성도 청소년쯤으로 어려 보였다. 나는 그들이 이쪽을 보며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혹시 나에게 오는 걸까?


정말 그 아이들이 품에 안아 데리고 오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벌써 가까워져, 작은 턱을 올라왔다. 그들이 데려온 것은 아주 어리고 작은 양 한마리였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한테 온 거냐고 묻자, 그 아이들은 순수하게 웃으며 그렇다고, 멀리서 나를 보고 어린양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나는 그 때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어린양을 보는 것도, 이 아이들이 나를 위해 이 양을 데려와서 나에게 다가온 것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아이들은 한국인들이 자신의 마을에서 진료를 봐 주고 여러 놀이를 같이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워낙 많았던 탓에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쩌면 아이들이 모였을 때 그 중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검은 히잡을 쓴 아이가 어린양을 내려놓자마자 양의 연약한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려 하지만 아직 익숙지 않는지 몇 걸음 걷지 못한다. 두려운 듯이 서 있는 어린양은 그냥 새끼인 줄만 알았는데, 무려 어제 태어났다고! 말 그대로 이제야 세상에 나온,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울 상태의 어린양. 


이 작은 순간은 나에게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이었다. 그 순간이 내게 이곳에 온 모든 보상이라고 해도 충분할 정도로. 아이들은 그들이 데려온 작은 새끼양과 자신들의 발걸음과 나를 향한 친절과 호기심이 나에게 어떤 의미와 기억이 되었는지를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순수하게 나를 향해, 어제 막 난 새끼양을 보여 주려고 온 것이었으니까. 


양의 이름을 내 터키이름인 아일라라고 짓겠다던 아이들. 


그 작고 어린 생명체도, 그리고 그를 품에 안고 낯선 이에게 보여주려고 길을 걸어온 아이들도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 작은 순간이 나를 이곳에 영원히 머무르도록 한다. 곧 있으면 나는 돌아가야 한다. 이 어린양도 곧 자라나서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시간은 그렇게 우리를 변화시키고 떨어뜨린다. 그러나 이 가운데 있던 사랑과 호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왔던 것도 사랑 때문이었고, 아이들이 내게 왔던 것도 사랑 때문이니까. 떠는 새끼양과 세 쌍의 빛나는 눈망울들은 영원히 거기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뒤로하고 서 있는 나 자신도. 




아, 누군가에게 나의 발걸음이 이런 종류의 것이 되기를 하고 소망해본다. 이 어린아이와 같은 것. 어린양의 연약한 다리같은 것. 어린양을 보며 나는 어떤 인생을 떠올린다. 33년 짧은 시간동안 이 세상에 와서 어린양처럼 순하고 저항 없이 제단 위에 스러졌던 하나의 인생을. 그리고 그것으로 삶과 사랑을 회복했던 수많은 얼굴들이 뒤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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