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인 학습의 비밀
파워 J 인 나는 육아에 있어서 수많은 좌절 경험을 통해 인생이 그렇듯 육아 또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여름 방학 동안 무엇을 할지 실현가능한 두 가지를 정했다. 방과 후 다녀와서 낮잠 자기와 하고 싶은 거 하고 놀기. 지금까지 아이와 나는 너무도 잘 지키고 있다. 헤헤.
지난겨울방학 때는 투덜대는 아이를 앉혀놓고 국영수 문제집을 풀었다. 아이의 학습능력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공부는 재미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버렸다. 그 이후 나는 ‘자기 발등에 불 떨어지면 하는 것이 책상공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수업내용을 힘들어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주의로 생각이 변했다.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며 지금은 단순한 학습지에 매몰된 일상보다는 책과 놀이를 통해 맘껏 세상을 탐색하고 배워가는 시기라고 배웠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그랬고 남편도 그렇게 컸다. 내가 공부 습관을 길러내는 것이라는 생각했던 것들은 단순히 학습지를 푸는 것에 지나지 않았고 주도성과 창의력이 높은 우리 아이에게는 지루하고 재미가 없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는 공부가 하기 싫은 것이 아니었다. 방식과 콘텐츠의 문제였다. 지루하고 일차원적인 방식보다 입체적인 학습을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미 본인의 관심사를 알아보며 보다 폭넓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올해 1월부터 남편과 함께 닌텐도 오픈월드 게임을 하기 시작했고 그 게임에 대해 꽤나 진지하게 임하며 8개월을 보내고 있다. 아이는 준연구자의 자세로 게임에 대한 책을 매일 학교에 들고 다니며 무기와 장소에 대해 알아보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료도 찾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고 자기 방식대로 게임을 풀어가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물론 남편과 함께 해나가고 있다. 나는 긴가민가하며 수도 없이 흔들렸지만 8개월 동안 아이가 보여준 게임을 대하는 방식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함께 하기로 했다.
아이는 연산문제집에서가 아닌 게임에서 세 자릿수 덧셈을 암산으로 할 줄 알게 됐다. 무기를 장착할 때 공격력을 더해가며 하는 암산이 그렇게나 정확할 수가 없다. (이기기 위해서는 그 계산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임은 학습과 상반된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엄마들 사이에서 나는 좀 독특한 엄마일지 모른다. 나 또한 딸로 자랐고 완벽주의에 불안이 높은 편인 엄마인지라 게임에 대해 관대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남편의 끊임없는 설득과 남자아이들의 특성에 대해 한참 공부를 하고 나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른 엄마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몇 안 되는 내 주변 엄마들은 게임에 대해 인식이 좋지 않다. 아직 게임기를 접해보지 않은 친구부터 일찍이 접해본 친구까지 스펙트럼이 넓은데 전반적으로 게임을 하는 아이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아이친구엄마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편이다. 어지간해선 다른 엄마의 교육관을 궁금해하거나 학원정보 교육정보들을 물어보지 않는 편이다. 자기 소신대로 하자주의. 물론 상대가 물어보면 내 의견과 소신은 밝히는 편이지만 나도 엄마인지라 아이 인생에 있어서는 팔랑귀가 되는 순간이 많기에 일부러 안 듣거나 묻지 않는다. 중고등학생을 키우고 있는 선배엄마에게는 가끔 조언을 얻거나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 편이긴 하지만 육아의 제1 원칙인 내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은 나와 남편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 수많은 육아 교육 정보의 바다에서 아이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주고 앞서 나갈 때는 함께 달려주며 쉬고 싶어 하는 순간에는 그늘이 되어주는 것이 부모가 할 역할이라는 신념을 지키고 싶은데 부모가 어지간히 단단하지 않고서는 힘든 셰상인듯하다. 사교육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아이가 필요로 하는 부분의 사교육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사교육은 너무도 많은 것(아이의 시간과 부모의 경제력)을 지불하고 희생하게 하는 것이 낭비이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들에게 불안을 조장하여 너도 나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교육의 마케팅 방식은 우리 부모들이 단단해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육아에 정답은 없다. 그 말인즉슨 답이 밖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오롯이 내 아이에게 답이 있다. 육아에서 정답을 찾고 싶은 우리 부모들에게는 아이를 판단하지 않고 가만히 관찰할 시간이 충분해야 한다. 그 방식이 아이가 나중에 자신을 대하고 알아가는 방식이 되리라 생각한다. 기다려주고 들어주고 믿어주자.
지난 학기에는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하교 후 세네 시간을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땀 흘리며 뛰어노는 아이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 학습은 책상이 아닌 놀이현장이라는 확신. 서울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가 아이답게 크는 것이 참으로 힘든 세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교육 열풍은 이미 영유아까지 내려와 있었고 학교운동장은 있어도 아이들이 노는 풍경이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운 좋게도 지금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하교 후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운동장에서 저녁 예닐곱시까지 뛰어논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형과 누나들이 노는 것을 보며 배우기도 하고 동생들에게 위험한 것을 알려주기도 하며 아이가 아이답게 크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놀이현장에서 배우고 오는 것들은 주로 아이의 문제해결력을 향상시킨다. 아이는 하고 싶은 놀이가 서로 다른 친구와 함께 노는 방법을 생각하고 제시하는 것, 실제로 그렇게 해서 놀아본 경험으로부터 얻은 자신감, 번갈아 가며 자신들의 용돈으로 군것질거리를 사서 나눠먹는 즐거움을 마음껏 즐기는 중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이는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 세상을 배워오는 아이를 통해 나도 단단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