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외숙모 됐어요
그동안 바빠서 미루고 미뤄왔던 하봄이(우리집 강아지) 미용을 예약한 날이다. 하봄이를 샵에 맡기고 북아트에 쓸 종이를 사러 문구사에 왔다가 주차를 하고 핸드폰을 보는데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형님이 순산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형님에게 얽힌 감정 (대부분이 시어머니 때문이긴 하지만)이 많았던 지라(말하고 풀긴 했지만), 기분이 그리 좋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새 생명의 탄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라 했던가. 외숙모가 됐다는 사실이 나쁘지 않았다. 그냥 그저 그런, 잔잔한 긍정으로 다가왔다.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는 건, 시어머니가 준 PTSD 때문일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기분 나쁜 일들이 먼저 떠오르는 걸 열심히 가라앉히며 기쁘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을 즐기는 중이다.
예전에는 이런 기분이 들면 양가감정으로 생각하고 많이 괴로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섬세한 감정을 가진 나에게는 여러 색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매번 느끼고 매일 인정하며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내가 해낸 성장들 중에 가장 큰 성장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마음을 그 자체 만으로도 충분하고 완전한 것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혼과 재혼으로 나름 우여곡절이 있었던 시누형님은 딸을 낳았다. 20대 중반에 출산을 한 나로서는 30대 후반인 형님의 출산이 노산이라 걱정(?) 아닌 걱정이 되긴 했지만 형님의 넘치는 자신감에 걱정을 금방 접을 수 있었다. 무식이 용감이라고 했던가.
“남들도 다하는 걸 나라고 왜 못하겠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까. 출산 축하 인사를 보냈을 때 돌아온 답장은 이러했다.
“이걸 어떻게 어린 나이에 해낸 거야? 선배님”
출산 전 아무것도 몰라서 넘치던 자신감은 어디 갔단 말인가. 10년 전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그리고 형님이 해주는 선배님 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그간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 시어머니로부터 말로, 비교로, 상처받았던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형님이 육아에 첫 발을 뗀 축복의 날, 나는 지난 10년 동안 나와 형님을 비교하는 말로 상처를 주셨던 시어머니가 더 두려워지는 첫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