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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Nov 07. 2024

못된 며느리가 되기로 결심했다

시댁 탈출기

어제 시누형님이 아이를 낳았는데, 시부모님은 조용하다. 출산한 형님에게는 개인적으로 축하인사와 축하금까지 전했다. 시부모님께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되신 것 축하드린다는 연락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연락처 검색부터 손이 떨릴뿐더러, 어떤 말이 돌아올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남편은 자기가 인사드렸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고 나는 흔쾌히 그러기로 했다.


예전 같았으면 오바육바에 축제 분위기를 내며 유난 떨었을 시댁이 조용한 걸 보니 오히려 불안했다. 이래도 불안하고, 저래도 불안한 시댁이다.


어제 시부모님께도 축하인사를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문제로 고민이 되었고 친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시어머니 PTSD를 알고 있는 친구는 “연락드리는 게 보편적이긴 하지만 너의 경우는 글쎄다.. 안 하는 게 네 마음이 편하지 않겠냐. 남편 보고 대신하라고 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맞다. 십 년을 시달려온 나의 경우는 그렇다. 지긋지긋한 단톡방을 탈출한 지 석 달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참 관성이란 게 무섭지, 또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나란 인간. 친구는 내가 시댁에 미안할 정도로 못해보는 걸 권했다. 그래야 관계가 회복되든지 말든지 할 것 같다며 말이다. 명절에도 연락드리지 말아 보고 나 몰라라 하면서 그냥 좀 못된 며느리가 되어보는 게 어떻냐고 했다. 그래야 나의 억울한 마음이 조금은 풀릴 것 같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지금 마음 같아서는 10년 동안 시달린 걸 생각하면 30년 동안 배로 갚아주며 지내야 풀릴 것 같은데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친구 말대로 못된 며느리가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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