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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n 05. 2024

경제력 없는, 별로인 여자

경단녀 경력 9년차

작년 크리스마스. 제주도로 이사를 왔다. 남편과 연애할 때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9년 뒤에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제주 발령소식을 듣고 좋아하기는커녕 눈앞이 깜깜했다. 아이를 키우며 쌓았던 몇 안 되는 소중한 우정들과 아이의 교육환경,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6시간 동안 온전히 내 이름으로 살 수 있던 파트타임 일자리, 단박에 내려놓아야 하는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고 결정된 일이었기에 빨리 받아들였다. 신혼 때부터 함께 한 묵은 짐들을 열심히 채소마켓에 올리고 팔았다. 평수를 반으로 줄여가다 보니 치워야 할게 한둘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막상 하다 보면 끝이 보이고 다 하고 보니 좋긴 좋았다.


홀가분한 마음과 섭섭한 마음으로 제주살이를 시작했다. 오자마자 아이가 방학이라 두 달 동안 꼭 붙어서 지냈다. 힘들기도 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나를 지탱해 주는 듯했다. 아이가 웃으면 나도 웃음이 났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행복한 겨울을 보냈다. 그렇게 봄이 왔고 아이는 우리 부부의 걱정과 달리 새로운 학교에 너무도 잘 적응했다. 나는 아이가 학교 간 사이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1시 50분에 수업이 끝나는 아이를 데리러 가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는 건 아이를 기관에 보내본 부모라면 알 것이다. 집안일을 하다 끝나는 자유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어떤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 초조 짜증이 올라오는 병이 있다. 원래 어떤 성취로 나의 존재를 증명해 왔던 터라 그럴까. 존재만으로 괜찮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아본 적이 없어서일까. 나에게 있어서 엄마라는 일은 성취를 하려 할수록 좌절을 맛보는 그런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확실히 있다.


결혼 전 나는 프리랜서였다. 이직을 하려는 타이밍에 아이가 생겼고 입덧이 심해 복직을 하지 못했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나의 어렸을 적 정서적 결핍으로 36개월은 엄마무릎학교에서 키우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경단녀가 되었고 절대 잊히지 않는 8년 전 장면이 있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시댁에 내려갔다. 당시 아이는 5개월이었고 우리 부부와 같은 해에 결혼한 시누형님은 임신을 미루고 있었다. 시어머니 차를 타고 가면서 형님네는 아기 안 낳느냐 이야기가 나왔고 시어머니는 “형님은 나중에 낳아도 되고 여자가 경제력이 있어야지. 남편카드로 눈치 보면서 고기 사는 게 얼마나 별로냐”면서 “요즘은 늦게 낳는 추세라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그때 낳는 게 더 좋다.”며 형님을 감싸는 말이 나에게는 상처로 남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경제력 없는, 별로인 여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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