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 같다
퇴원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왔다. 아픈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예약을 하고 와도 늘 시간은 지켜지지 않았다. 누군가 그랬었다. 아프려거든 시간과 돈이 많아야 한다고. 어디서 들었던 말인지 한참을 생각하고 있으니 내 이름이 불린다.
담당 교수님은 내 수술부위를 보고는 소독을 진행했다. 방사선 치료 28회와 호르몬 주사, 약물 치료를 병행하자고 하신다. 방사선 치료는 상처가 아물기 전까지는 진행할 수가 없다고 한다. 방사선 담당 교수님과의 외래 진료 후 방사 설계 CT를 하고, 1~3주 후에 치료 시작일을 알려주신다고 한다. CT 설계를 위해 병원복을 입고 대기하고 있으니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아버님 생각이 났다.
아버님은 교통사고 후 머리에 미세한 뇌출혈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발견이 늦게 되어 신체에 마비가 왔다. 서울에서는 치료를 받기 싫다고 하셔서 우리가 있는 지역으로 오셨다. 아버님이 아플 때 나는 한창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입덧으로 매일매일이 힘겨웠던 날이었다. 하루는 아버님 전복죽을 먹여 드리고 주무시는 것을 보고 간병인 분께 인사를 건넨 후 집으로 돌아왔었다. 집에 막 도착해서 윗옷을 벗자마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간병인 말로는 MRI를 찍으러 가야 하는데 갑자기 본인 점퍼를 입으시고는 절대 벗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신다고 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보니 아버님은 점퍼 지퍼를 단단히 잠그고는 두 손으로 옷을 움켜쥐고 계셨다.
“아버님,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둘째예요. 이 옷을 벗어야 검사를 하실 수 있어요. 제가 잘 가지고 있다가 아버님 검사받고 나오시면 바로 드릴게요.”
아버님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만 보고 계셨다.
“아버님, 저 ○○엄마예요. 좀 전에 아버님 죽 먹여드렸던 둘째요.”
내 얼굴을 천천히 보시더니 아버님은 내 손을 잡았다. 지퍼를 열고 옷을 벗겨드리고 나서 보니 점퍼 안에는 무언가 많이 들어 있었다. 검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병실로 가는 길에 다시 점퍼를 쥐어드렸더니, 아버님은 그 점퍼를 끊임없이 만지작만지작 하셨다.
“애기 엄마도 침대 잡아야겠네. 얼굴 좀 봐요.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이제.”
병실에 도착하자 간병인은 내 얼굴을 보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며칠째 입덧으로 제대로 먹지를 못했던 내 모습은 잔뜩 수척해져 있었다.
아버님에게 또 오겠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내 손에 점퍼를 쥐어주며 가져가라는 손동작을 하셨다.
“그럼 이거 가져갔다가 아버님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다시 가지고 올까요?”
아버님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셨고, 그 점퍼를 들고 집에 와서 보니 안주머니에는 통장과 현금이 들어 있었다.
뇌수술을 하고 회복기에 계실 때, 아버님과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머님이 서운하게 했던 말, 어머님이 보고 싶다는 말, 그리고 그중에 가장 생각나는 말은 남편한테 주셨던 본인의 땅을 우리 아들 이름으로 바꿔놓으라는 말이었다.
“그걸 왜요?”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니, 아버님은 천천히 말을 이어가셨다.
“내가 서울에 있을 때. 네 어머니 병원비가 모자랄 것 같아서 자식들에게 돈을 좀 달라고 했었다. 큰 아들한테 전화하니까 집에 돈이 없다고 하더라. 또 막내아들은 내가 살고 있는 집을 팔라고 하더라. 둘째는 자기 이름으로 된 그 땅을 파라고 하더라. 이름만 자기 거지 아버지가 산 땅이니까 누구한테 돈 달라고 하지 말고 부족하면 그거 팔아서 통장에 넣어드릴 테니 편하게 쓰시라 하더라. 그래도 부족하면 또 다른 땅도 팔아서 드리겠다고. 걔 이름으로 해두면 누가 팔자고 하면 다 팔아버릴 거 같더라. 그니까 꼭 니 아들 이름으로 바꿔라. 그리고 내가 그 땅 못 팔게 하려고 그 땅 파면 지하에서 암반수가 나온다고 해놨어. 물 귀한 세상 오면 물만 팔아도 살 수 있는 땅이라고 말해놨다.”
아버님은 그 이야기를 하며 웃으셨다. 그렇게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아버님과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병원에서는 매일 같은 부위에 정확한 투사를 하기 위해 내 상체를 본 딴 석고 틀을 만들었다. 방사선 치료는 통증이 있거나 아프진 않은데 피곤함이 몰려왔고, 매일 정해진 횟수만큼 정확히 해야 하기 때문에 다치거나 아프면 안 된다고 방사선 담당 선생님이 몇 번이고 주의를 주셨다.
대기실에 앉아 있을 때면 나와 같은 치료를 받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천천히 쳐다보게 된다. 우리는 모두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 같다. 병원이란 공간이 환자에게도 보호자에게도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이 아닌,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늘. 나에게도 묻어 있을 그 그늘을 떨쳐내려 했지만, 서른 번 가까이 되는 방사선 치료는 내 피부에 짙은 그늘을 만들었다. 그 그늘 탓인지 나의 병을 모르는 이들도 어디 아프냐고, 어디 아팠냐고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