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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난 지금 오늘을, 누구보다 아름답게 살아갈 것이다

by 그레이스

이 글들을 사부작사부작 적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첫 편부터 29편까지는 네 달이 걸렸고,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나보다 더 열심히 치료를 받으며 건강관리를 했던, 그리고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던 큰 언니가 누구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고 떠났다. 나에게 전화해서 탄수화물을 많이 먹지 말고, 달걀은 난각번호 1번이라고 쓰여있는 것만 먹고, 날것은 먹지 말라며 당부하던 언니가 떠났다. 텃밭에서 캔 상추나 시금치를 주말마다 꼭 한 봉지씩 나눠주고 가던 언니. 언니가 떠나기 전 주말에 추우니까 넌 오지 말고 제부한테 와서 상추를 받아가라고 했던 언니. 그때 내가 갈걸. 가서 언니를 한번 더 볼 걸.


큰언니 장례식장에서 큰 형부는 응급실에 실려갔다. 그 후로 계속 중환자실에 있더니, 그로부터 열흘 뒤에 형부도 언니를 따라갔다. 성인이기는 해도 아직 어리기만 한 조카들에게 나는 눈물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짧은 시간 내 부모님을 떠나보낸 조카들의 마음을 내가 헤아릴 수 있을까.


조카는 큰언니의 사망신고와 함께 서류 정리를 하면서 언니 아들의 존재를 알게 됐다. 조카는 ‘나한테 시크릿 오빠가 있었네요’라며 덤덤하게 우리에게 그의 존재를 물어봤다. 언니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언니의 아들. 내가 혹시 많이 놀랐느냐고 물었을 때, 조카는 앞으로 제 인생에 엄마아빠를 모두 떠나보내고 있는 지금보다 더 이상 놀라거나 슬플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언니의 아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 함께 서류 정리를 하자고 부탁했다고 한다. 조카는 그렇게 부모님을 떠나보내며 엄마가 같은 오빠와 아빠가 같은 오빠의 존재를 알게 됐다.


수십 년이 지나서 언니의 소식을 들은 그 아이는 또 그 아이대로 얼마나 놀랐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과는 멀리 거주하고 있는 두 조카는 날짜를 맞춰 1박 2일로 내려와 은행 일과 서류 정리를 처리하고, 나와 언니들을 만나주었다.


처음 보는 조카의 얼굴에는 큰 언니의 얼굴이 보였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우리는 모두 목이 메었다. 우리 사이의 수십 년의 세월, 그리고 언니의 부재가 계기가 된 이 만남이 우리를 모두 목메게 했다.


일상적인 대화와 함께 큰언니가 너를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대신한 조카의 짧은 한 마디.


“우리 엄마는 참을성이 아주 많아요. 우리 엄마가 웬만해서는 절대 그러지 않을 텐데, 그 집에 오빠를 두고 나왔다는 건…”


거기까지 듣더니 나의 첫 번째 조카가 다 안다는 눈빛으로 한 마디를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저도 맞고 컸어요.”


엄마도 힘들었을 것임을 이해한다는 표정. 그리고 한 마디였다. 그 말에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두 조카는 내일 언니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인사를 간다고 했다. 나는 몇 번이고 참았던 말을 건넸다.


“내일 엄마한테 가거든 엄마가 못 데려왔던 오빠 내가 데려 왔다고 꼭 말해줘.”


그 말과 함께 꾹 참았던 눈물이 또 와르르 흘렀다. 언니는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33년 만에 만난 조카를 안아주며 나와 언니들은 몇 번이고 고민한 말을 건넸다.


“만나서 반가웠어. 우리 보러 용기 내서 와줘서 너무 고마워.”

“우리 종종 만나자. 근처에 오게 되면 꼭 연락 줘.”

“연락하고 지내자. 이모가 연락해도 되지?”


우리의 말에 조카는 ‘네’ 하며 대답했고, 그렇게 헤어졌다. 우리 세 자매는 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거의 동시에 말을 꺼냈다.


“정말 잘 컸네.”

“언니랑 같이 봤으면 정말 좋았겠다.”

“종종 얼굴 보고, 연락하고 지내면 좋겠다.”


어두운 차창 너머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오늘 태어났고, 오늘을 살고, 오늘 죽을 것이다. 어제랑 내일은 단어일 뿐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늘 오늘, 지금 뿐이다. 그래서 난 지금 오늘을, 누구보다 아름답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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