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이스 Apr 03. 2019

5. 패션 테러리스트

한국에서

한국에 와서 줄곧 집에만 있다가 드디어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종로 쪽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내가 늦는 바람에 우리 동네와 좀 더 가까운 영등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간다고 생각하니 조금 설레었다. 교통카드 기능이 들어 있는 아빠의 신용카드를 받아 들고 집을 나섰다.

주말 지하철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앉기는커녕 문 앞에 서 있는 것조차 공간이 여유롭지 않았는데 한국의 지하철, 아니 지옥철의 위엄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 겨우 역에 도착하자 생각보다 오래 걸린 탓에 약속시간이 이미 지나 있었고 핸드폰이 없는 나는 친구와 길을 엇갈리게 될까 걱정돼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역을 빠져나왔다.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도착하자 많은 젊은이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남녀 커플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부모님과 함께 나온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하나 같이 다들 너무 예쁘고 잘생긴 거다. 이거 무슨 몰래카메라인가 싶을 정도로 쉽게 말해 '물'이 달랐다. 여자애들은 하나 같이 세련된 화장에 깔끔한 옷차림이었고 남자애들은 다들 키가 크고 훤칠했으며 역시나 깔끔한 옷차림이었다. 


분명 비슷하게 입은 것 같은데 누가 봐도 나의 옷차림은 그들과 달랐다. 외국은 워낙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화장도, 옷 입는 스타일도 제각각인데 한국은 확실하게 이곳의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렇다고 다들 색깔만 다르고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공통점이 분명히 느껴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느낌을 모르고 살던, 유행에 뒤처진 나 같은 사람은 당연히 이곳 분위기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힙합바지를 입고 있다거나 고무줄 운동복을 입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나의 스타일은 확연하게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나는 마치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처럼 이질적인 스타일을 하고 있었으나 문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인 패션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어쩜 다들 그렇게 예쁘고 잘생겼는지 나도 모르게 두리번거리며 걸어 다녔다. 다들 리얼 버라이어티에 나오는 출연자들 같았다. 키 크고 날씬한 사람들만 영등포로 모이기로 약속이라도 한 건가. 나 자신이 더 '쭈구리'처럼 느껴졌다. 순간 내가 더 이상 한국에 살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였다. 이후 강남에 갔다가 똑같은 느낌을 또 받았다. 영등포에서 놀란 촌X은 강남에서 눈이 돌아갈 정도로 그곳은 별천지였다. 왠지 영어로 대화해야 할 것 같았다. 영어 잘한다고 뽐내려는 게 아니라 나는 외국 살아서 지금 꼴이 이 모양이라는 변명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흔히들 북미의 사람들은 다들 뉴욕 패션 위크 때 찍힌 사진들 속 사람들처럼 입고 다닐 거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전혀 사실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반대에 더 가깝다. 이곳은 유행이라 할게 딱히 없고, 꽤 대충 입고 다니는 편이다. 한 번은 클럽에 가겠다고 한껏 꾸미고 지하철을 탔다가 괜히 어색하고 뻘쭘해 민망했던 적이 있었을 정도다. 약간의 구두굽이 아닌 하이힐을 신은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고, 무채색이 아닌 옷도 별로 본 적이 없다. 워낙 꾸미는 거에 관심 없는 내가 여기서는 '코트 예쁘다', '가방 예쁘다'는 칭찬을 듣는다. 심지어 '옷 잘 입는다'라는 말까지 들어본 적이 있는데 참고로 말하면 나는 일 년에 쇼핑을 평균 두 번 정도 하는 사람이다. 그 칭찬을 한 사람도 나를 자주 봤다면 내가 그 옷만 주야장천 입는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내가 외국에 살면서 '편하다, 자유롭다, 부담이 없다'라고 생각했던 여러 이유 중에 하나가 이거라는 걸 깨달았다. 앞서 말했듯 꾸미는 것, 옷, 쇼핑에 관심이 없는 나는 20대 초반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너는 왜 그렇게 입고 다녀?', '너는 꾸미는 거에 관심이 없어?'라는 질문까지 들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유행을 타지 않는 나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충 입고 안 꾸며도 예쁜 얼굴이 아니기에 나는 그냥 '못난 애'였다. 차라리 내가 못났다는 걸 모르면 나을 텐데, 나 스스로도 내가 못 꾸미고 못 입는다는 것을 잘 알아서 그게 너무 큰 스트레스였고, 자존감을 낮추는 주범이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꾸미면 되잖아', '예쁜 옷을 사면 되잖아' 싶겠지만 내 입장에서 그런 말은 마치 전교 1등 친구가 '공부하면 되잖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한국을 떠나 지구 반대편에서 살면서 이 스트레스를 전혀 잊고 살았다. 오히려 '예쁘다'는 칭찬을 듣거나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존감이 올라갔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나라, 내 고향인 이곳은 그런 나에게 '뭐? 네가?' 하며 코웃음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4. 매운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