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는 맨 손으로 만져야 한다

by 미학자P

내가 해외 자료들을 기반으로 고서 수집 공부를 할 때 제일 먼저 알게 된 것이 바로 맨손으로 고서를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유물이나 귀한 것을 다룰 때 면장갑을 끼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느낀다.

실제로 고서를 다루는 유튜브 콘텐츠 등을 보면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이 있다.


"아니, 그 귀한 책을 맨손으로 만져도 되는 건가요? 보기 불편하네요."


이런 불편한 댓글들이 꼭 등장한다.

이에 대한 논쟁은 굉장히 오래된 것이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자료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제대로 알려야겠다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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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확실히 밝혀둔다.


"고서는 깨끗이 씻고 말린 '맨손'으로 만지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맨손이 종이를 다루는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면장갑을 끼고 종이책을 읽는다고 생각해 봐라.

종이의 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손의 감각은 둔하게만 느껴진다.


하물며 고서의 경우는 종이의 상태가 민감하고 예민하기 때문에, 면장갑에 의해 어딘가가 바스러지거나 손상을 입기가 더 쉽다. 문제는 바스러지거나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와도 면장갑을 끼고 있으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책은 애초에 손으로 다루도록 나온 물건이다. 맨손으로 다룰 때 가장 예민하게 책의 상태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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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더 확실히 하고 싶어서 한국 콘텐츠를 찾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었나, 어디선가 오래된 교육 영상에 오래된 책을 장갑을 끼고 다루는 모습으로 찍은 것이 있었는데, 이렇듯 예외는 물론 있다.

예를 들어 삽화를 정말 예민하게 다뤄야 하는 것들, 금속 제본, 코팅된 인화지 등 산에 반응하는 것들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장갑 낀 손이 책을 더 손상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내용을 해외 사이트에서 하나 가져와봤다.



Our skin is slightly acidic, that’s true, and acid hurts paper. But preservation librarians Cathleen Baker and Randy Silverman argue in their landmark 2005 article:


Compared with the destructive effects of air pollution, heat, light, poor storage conditions, repeated folding, and internal acidity, the chemical deterioration caused by paper’s contact with bare skin is imperceptible.


So. Touching the paper with bare hands isn’t too big of a deal. (Though obviously you shouldn’t be reading a first edition while eating a bag of potato chips.)


대충 번역하자면:


사람의 피부는 약산성이고, 산은 종이를 손상시킨다. 그러나 보존 사서인 캐슬린 베이커와 랜디 실버맨은 2005년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대기 오염, 열, 빛, 열악한 보관 환경, 반복적인 접힘, 내부 산성 등의 파괴적인 영향과 비교할 때, 종이와 맨살이 접촉해 발생하는 화학적 손상은 눈에 띄지 않는다.


따라서 맨손으로 종이를 만지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물론 감자칩을 먹으면서 초판을 읽으면 안 되겠지만.)


https://www.rebeccaromney.com/blog/the-white-glove-myth#:~:text=Book%20Collecting,a%20paperback%20with%20gloves%20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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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한 자료는 정말 외국에 차고 넘치는데,

뉴욕타임즈에서 답답한 마음에 쓴 기사에 이 문제에 대해 아주 명쾌히 설명이 되어 있어서 올린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불편러들에게 넌덜머리가 난 보존처리 담당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




“The glove thing,” Maria Fredericks, the director of conservation at the Morgan Library and Museum, said when contacted about the matter, sounding slightly weary. “It just won’t die.”


“Every time it comes up, I sigh deeply,” said Eric Holzenberg, the director of the Grolier Club, the nation’s oldest private society of book collectors. “And then I give my three-sentence explanation of why it’s” — to use a milder term than he did — bunk.


To (politely) sum up the current consensus: Gloves reduce your sense of touch, increasing the likelihood that you might accidentally tear a page, smear pigments, dislodge loose fragments — or worse, drop the book.


And whatever their associations with cleanliness, cotton gloves attract dirt. They also tend to make hands sweat, generating moisture that can damage a page. Rubber gloves, while moisture-proof and generally better fitted to the hand, are too grabby.


While there are some exceptions, librarians overwhelmingly agree.


“The best way to handle a rare book,” said Mark Dimunation, the longtime head of the rare books and special collections division at the Library of Congress, “is with clean hands and caution.”


https://www.nytimes.com/2023/03/09/arts/rare-books-white-gloves.html




전문을 확인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위에 뉴욕타임즈 기사 주소를 첨부해두었다.


이 부분 역시 요약하자면,

장갑을 낀 손은 촉각을 둔화시켜, 실수로 페이지를 찢거나, 안료가 번지거나, 헐거워진 조각을 떨어뜨리거나, 더 심한 경우 책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결함과 상관없이, 면장갑은 먼지를 끌어당긴다. 또한, 손에 땀이 나게 하는 경향이 있어, 페이지를 손상시킬 수 있는 습기를 발생시킨다. 고무장갑은 방습 기능이 있고 일반적으로 손에 더 잘 맞지만, 너무 꽉 낀다.



그러니 고서를 맨손으로 만지는 누군가를 본다면, 뭔가 좀 아는 자로 봐주길.

그리고 만져볼 일이 있다면, 깨끗이 씻고 잘 마른 손으로 다루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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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시절 메이크업 원장님께 메이크업을 배운 적이 있는데,

어떤 도구가 제일 좋은지 아냐고 넌지시 물으시며 말씀하셨다.

바로 손이라고.

그 어떤 브러쉬와 스펀지보다도 훌륭한 도구는 우리의 손이라고.


특히나 책을 다루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맨손은 생각보다 굉장히 멋진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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