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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Sep 26. 2022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바리스타입니다.

할아버지카페의 시작 


오늘은 하늘이 참 좋습니다. 근래에 보기 드문 파란 하늘입니다. 쌍문동 우리 집에서 제 직장인 할아버지카페까지 걸어오는 동안 파란 하늘 아래에 굴곡이 선명한 백운대를 몇 번이나 올려 다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나이가 칠십을 넘긴 지 오래여서, 가벼운 당뇨와 고혈압을 지병으로 갖고 있습니다. 가게에 나갈 때마다 제 건강을 챙기는 마누라의 잔소리가 여간 심한 것이 아닙니다. 전철이나 버스 대신 걸어서 다니라고요. 요즈음은 허릿병까지 생겨서 걷는 것이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닌데도, 막무가내입니다. 병원에서 허릿병도 걸어야 낫는다고 했다면서요. 


지난주 내내 미세먼지가 심했습니다. 코로나 문제와는 별개로, 탤레비전이며 인터넷에서 대기 오염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시끄럽게 전해졌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걷지 말고 차를 타고 가라는 마나님의 하명을 들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가게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 정도 걸립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닐지 몰라도, 저는 조금 힘에 부칩니다. 그래서 미세먼지 탓에 차를 타고 가라는 마누라의 말이 처음엔 웬 떡인가 싶었지요. 하지만, 꽃놀이도 하루 이틀이지요. 그간에 걸어서 출퇴근한 것이 저도 모르게 몸에 배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전철역까지 오 분 남짓 걷기는 하지만, 겨우 한 정거장밖에 안 되는 거리를 일주일 내내 땅속으로 다니려니 여간 지루하고 답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세먼지 탓에 온 동네가 뿌옇고 흐리긴 해도, 풀냄새 흙냄새를 맡으며 우이천을 따라 할아버지 카페까지 오가던 시간이 아쉽게 느껴지더군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진희입니다. 1947년에 태어났으니, 2022년 올해로 일흔여섯이 됩니다. 고향은 이북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남으로 내려온 까닭에 고향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황해도 해주 사람입니다. 이원수 공과 신사임당의 맏아들인 이선 어르신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이라는 것이 자랑이라면 자랑이겠습니다.      


우리 일가가 남한으로 내려온 것은 한국전쟁 직전이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소백산 자락의 달밭골이란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의 풍기지요. 사실 이곳은 피란을 하기 위해 몰려든 도인촌입니다. 그곳에는 동학 도인들과 정감록의 유토피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자라면서 인내천도 배우고, 정도령의 시대도 몸에 익혔습니다. 아마도 제가 어른이 된 이후에 도인 소리를 듣게 된 것도 어린 시절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사는 우이동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스무 살 청년 때입니다. 이곳에서 콧구멍만 한 방 한 칸을 얻어서 고향 친구들과 자취를 하며 직장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해외에 기술자로 수년을 나가 있기도 했습니다. 지방에서 사업도 하고, 장사도 했습니다. 그러다 우리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다시 우이동으로 돌아왔습니다. 처음 몇 해는 번화한 수유리 쪽에 살기도 했습니다만, 우이동에 작은 빌라를 하나를 얻어서 들어앉았지요. 알고 보면 나름, 우이동의 반 토박이인 셈입니다. 하지만, 양심적으로 제가 우이동에 진득하니, 머물러 있었던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부터 하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가?’ 돌아보는 나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물음이 몹시도 간절하다 보니 결국은 답을 찾고자 집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단 며칠이면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점점 생각하지도 못하게 길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자칭, 도인들이 산다는 계룡산으로 태백산으로 영월로 현자가 있다는 곳엔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곤 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러 저 혼자 집을 떠나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닌 세월이 대략 이십 년이 넘지요.      


이미 앞서 이야기로 짐작을 하셨을 테지만. 저는 집에서 멀지 않은 북한산 자락에서 작은 카페를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할아버지이니, 카페 이름 또한 ‘할아버지 카페’입니다. 당연히 제 직업은 바리스타입니다. 할아버지 바리스타이지요. 그냥,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로스팅을 하고 여러 종류의 커피를 섞어 블렌딩이라는 것도 합니다. 핸드 드립으로 커피도 내리고, 콜드 브루도 합니다. 행여, 폭삭 늙은 영감이 내리는 커피가 무슨 맛이 있을까? 생각하는 양반이 있다면, 큰코다칩니다. 제가 무면허 야매 바리스타에다, 이름 있는 챔피언십 한번 나가본 적은 없지만, 커피를 마셔 본 사람마다 엄지를 치켜올립니다. 일부러 유명한 카페의 바리스타도 정체를 숨기고 맛을 보러 옵니다. 그래서 인근에서는 꽤 커피를 잘하는 집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동네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감사하지만, 때로는 방학동이나 창동, 노원에서 차를 끌고 오시는 손님도 있고, 일요일마다 송추나 구기동에서 일부러 산을 넘어와 원두를 사 가는 손님도 있습니다. 분당이나 용인서 오시는 손님도 있지요. 사람, 참 싱겁게 시리. 어쩌면 누군가는 제 이야기에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 든 영감이 주책맞게 제 자랑이 심하다고 말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자랑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일까요, 제 가게를 찾는 손님 중에는 저에게 커피의 비결을 묻는 양반들이 퍽 많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잘 들리지 않아서 보청기를 낀 귀에다 손을 얹고 귓속말로 묻습니다. 할아버지, 맛있는 커피 비결이 뭐예요?  글쎄요, 맛있는 커피의 비결이라 하면..., 저도 손님의 귀에 대고 조심스레 이야기합니다.      


뭐, 별 것 없습니다.

도인이 만든 커피라서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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