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앞에 다다른 저는 어깨에 메고 있던 손가방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냅니다. 제가 가지고 다니는 열쇠는 스타벅스 로고가 새겨진 초록색 고무 밴드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애들이 잃어버리지 말라고 달아준 것입니다. 원래는 열쇠고리에는 엄지만 한 곰 인형이 마스코트로 달려 있었습니다만, 언제부터인가 성가시고 귀찮게 여겨져서 생각 없이 떼어버렸지요.
그것을 두고 우리 마나님은 또 한소리를 했지요. 제가 늙어서 귀찮은 게 많다고요. 귀찮은 게 많으면 세상에 미련이 없으니… 딱,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즈음에는 별 것 아닌 것도 새삼스럽게 불편하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언젠가는 아침마다 고쳐 매는 운동화의 매듭 끈이 몹시 귀찮고 성가시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끈 없는 운동화를 하나 사달라고 해서 지금까지 신고 있습니다.
가게에 들어선 저는 영업의 시작을 알리는 오픈 사인의 스위치를 올립니다. 탁자 한 귀퉁이에 모아놓았던 화분들에 밤사이 잘 났느냐, 인사도 건넵니다. 그런 다음 볕이 잘 드는 바깥 화분으로 자리를 옮겨줍니다. 우리 집 큰 아이는 촌스러운 것들 일색이라며 핀잔을 주지만, 제게는 한없이 예쁘고 안쓰럽기 그지없는 아이들입니다. 이 봄이 가면 언제 또 이 아이들을 보게 될까요? 이듬해에 똑같은 아이들을 데려다 놔도 그 아이들이 지금의 아이들이 될 수는 없지요. 이런 마음이 제 놈들을 보는 아비의 마음인 것을 자식들이 알기는 알는지요. 한해, 한해 몰라보게 자라다가, 언제부터인가는 제 아비와 함께 늙어가는 듯 보이는 우리 아이들 이야기입니다.
열 평 남짓 컴컴한 가게에 불을 밝히고, 밤사이 가게 설비들이 무사했는지 하나하나 점검을 합니다. 컴퓨터를 켜서 포스 프로그램과 라디오 프로그램도 열어놓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김정원 DJ의 클래식 프로그램에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작년까지는 미남배우 강석우 씨가 DJ를 하더니, 올해는 김정원이라는 젊은 피아니스트가 진행하더군요.
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우리 가게의 첫 번째 커피를 드립으로 내립니다. 그리고 미리 정해놓은 탁자에 정성스럽게 내려놓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미신이라 여기며 싫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가게를 지켜주시는 작은 수호신들이 있다고요. 우리 나이의 노인들은 그와 같은 수호신을 ‘대감님’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가게를 지켜주는 대감님께 오늘 하루도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아무리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도 저는 남의 이야기처럼 여겼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만큼 안전하고 평온하게 일상을 지났던 것 같습니다. 가게를 찾는 모든 손님을 역병으로부터 보호해주시고, 저희 가게 또한 늘 안전하고 무사하게 해달라고 빌지요.
그리고 저는 그제야 한숨을 돌립니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할 여유가 생겼습니다. 제가 카페의
주인이 된 이후로 가장 행복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친구들에게서 새벽부터 날아온 카카오톡 소식도 꼼꼼히 챙겨보고, 뉴스도 봅니다. 가끔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고향 친구에게 안부 전화도 합니다. 머리가 허옇게 세도 제 마음엔 너나 나나 어린 소년입니다. 그래서 이놈 저놈 할 수밖에요. 어떤 놈은 아침부터 돈 벌 일이 생겼다며 일터에 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이에는 돈을 벌고 싶어도 써주는 사람이 없어 태반이 백수입니다. 그런 녀석에게 용케 건수가 생겼다니, 축하할 노릇입니다. 친구의 목소리에 신바람이 가득합니다. 어허, 그래라, 돈 나오면 밥 사는 것 잊지 마라. 또 어떤 놈은 근래에 배운 색소폰 삼매경에 빠져서 종일토록 연습하다가 입술이 부르텄단 이야기도 합니다. 젊은 나이에는 마누라가 손가락으로 꿀만 발라줘도 하룻밤 사이에 아물었는데, 이제는 늙어서 다 틀렸답니다. 그래도 또 연습하러 간다니, 아무도 못 말립니다. 늙으나 젊으나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습니다.
할아버지카페는 달력에 표시된 빨간 날과 주말이 가장 바쁩니다. 그건, 저희 가게가 자리한 동네도 마찬가지지요. 북적이던 등산객들과 나들이 손님으로 가득했던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허전한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할아버지 카페의 월요일은 주말만큼이나 바쁜 날입니다. 주말에 떨어진 음료의 재료들을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가게에서 팔아야 할 커피도 볶아놓아야 합니다. 우리 집 로스터기로 한가득 볶아도 기껏해야 하루, 이틀입니다. 잘해야 화요일 저녁까지 쓰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우리 집의 자랑인 콜드 브루도 바짝 신경을 써서 미리 내려놓지 않으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닙니다. 요즈음처럼 날씨가 더워지는 날에는 콜드 브루 아이스를 찾는 손님이 퍽 많습니다. 바리스타인 저도 모르는 사이에 유리병 가
득했던 콜드 브루가 사라지는 일은 예사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한가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빨리 움직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