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동네에서 제일 예쁜 여자아이

주눅에 대하여

by 재요

어디에든, 눈에 띄게 예쁜 여자아이 한 둘은 있게 마련이다.


영화 아홉 살 인생을 본 적이 있는가? 거기에 보면 서울에서 전학 온 장우림이란 여자애가 나온다. 시골에서는 흔치 않은 하얀색 스타킹을 신고, 서울 냄새 물씬 풍기는 세련된 원피스를 입은 소녀다. 내 기억에도 그런 여자애가 하나 있다. 사십 년도 더 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름이 인선이던가, 유선이던가. 그 집 자매가 선자 돌림이었다. 커다란 눈에 쌍꺼풀이 깊게 지고, 속눈썹도 길었다. 아마도 그 애의 엄마가 세련된 멋쟁이가 아니었던가 싶다. '들장미 소녀 캔디'에 나오는 이라이자처럼 긴 머리를 가닥가닥 고데를 해서 늘어뜨렸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 애는 어른처럼 검은 롱부츠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왔다. 나 또한 서울 사는 이모가 이름 있는 상표의 아동복을 보내와서 입혔지만, 영 테가 나지 않았다. 내년 후년까지 옷을 입힐 심산으로 치수가 큰 옷을 사보 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머리는 선머슴처럼 짧은 머리였고, 양 볼은 콧물과 찬바람 때문에 빨갛게 살이 터 있었다.


아름다운 장미는 가시가 있다.


그건 그 여자애도 마찬가지였다. 예쁜 만큼 앙칼진 구석이 있었다. 우리 엄마는 이번에도 내 등을 떠밀었다. 어서가. 가서 친구 하자고 그래. 나는 엄마에게 배운 대로 아무 생각 없이 그 여자애 앞에 가서 말했다. 우리 친구 하자. 그 애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 애의 손을 잡으려 하자, 매몰차게 내 가슴팍을 밀쳐냈다. 아주 머쓱한 기분이 들면서 울 것 같았다. 우리 엄마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나 보다. 가까이 와서 그 예쁜 애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우리 아이가 친구 하자고 그러는 거야. 그 애는 참으로 도도하고 새침하게 말했다.


거지 같아요.


내 여덟 살 인생동안 들어본 말 중에 가장 모욕적이고, 슬픈 말이었다.


나는 그 몹쓸 기분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았다.


나는 그날의 일이 엄마가 나를 지켜주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의 배려받지 못한 상처가 살면서 문득문득 올라왔다. 뭔가 단정하고 예쁜 것들을 보면, 나는 그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그 까마득히 오래된 일에 대해서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나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엄마에게는 기억조차 없었던 일이었다.


그 시절 엄마의 기억은 나와는 아주 많이 달랐다.


엄마의 눈에는 내가 늘 작은 공주님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른 집 아이는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의 눈에는 내가 되려 응석받이에 새침데기로 자라서 앙칼진 구석이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늘 할머니의 치맛폭에 쌓여서 외톨이로 혼자 지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그래서 먼저 다가가 친구를 사귀었으면 하는 생각에 등을 떠밀었다고 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4화나를 주눅 들게 만드는 아빠의 호통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