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과 철구 #5

단편소설

by 고귀한 먼지

그날은 봄비가 내린 일요일이었다. 그해 첫 봄비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오후부터 비가 꽤 내린 일요일이었다. 미영은 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하다 우연히 광화문에서 열리고 있는 세월호 2주기 기념식을 지켜봤다. 비를 맞으며 단상에 오른 누군가는 울부짖고 누군가는 흐느꼈다. 미영은 광장 건너편 고층 건물 계단에서 비를 피하며 거대한 통곡의 장을 바라봤다. 단상 옆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유가족으로 보이는 한 어머니의 모습이 잡혔다. 우비도 없이 앉아 있던 어머니의 눈빛.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약간 떨구고 바닥을 바라보던, 초점을 잃은 눈동자.

어?

학생총회를 마치고 보름쯤 지나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학생회는 단과대 도서관과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이들을 위해 인문대학 건물 앞에서 야식을 판매했다. 미영은 그날 동현과 한 조로 야식을 팔았다.

야식 판매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 둘은 건물 뒤 작은 언덕에 자리 잡은 벤치에서 맥주를 한 캔 마셨다. 그때 동현은 기습적으로 미영의 볼에 입을 맞췄다. 미영은 당황한 채 잠시 얼어있다가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급하게 일어난 미영은 본능적으로 학생회실로 갔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조금 뒤 동현이 학생회실로 들어왔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컴퓨터 앞에 앉은 동현. 동현은 무언가를 검색하는가 싶더니 음악을 틀었다. 과 신입생 환영식날, 선배들이 무대 위에 올라 율동을 할 때 흐르던 음악이 나왔다. 미영은 그 음악을 듣고 조금 마음이 놓였던 걸까? 아니면 왜 그때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바보처럼 가만히 앉아서 눈만 멀뚱 거리고 있던 걸까? 다시 자연스럽게 일어나 문으로 향하는 동현. 미영은 동현이 화장실을 가거나 담배를 태우러 가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을 잠그는 동현. 그리고 미영에게 다가오는 동현.


어?

미영은 학생회실을 박차고 뛰쳐나와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도서관 앞 잔디밭에 쓰러져 야식을 판매할 때 먹었던 김밥과 달걀을 모두 토해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고민하며 일주일 정도 학생회실을 찾지 않다 용기를 내 다시 찾은 미영은 자신을 감싼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충격적이었던 건 자신을 경멸하듯 바라보는 한나의 눈빛이었다. 그때 미영은 뭔가 대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해 겨울 동현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미영은 학교 정문에서 유세 활동을 하는 학생회 사람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도저히 학교를 더 다닐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 일이 있고 1년이 지난 후, 미영은 편의점 계산대 밑에 놓인 작은 텔레비전에서 잊고 있던 술집 사장님을 봤다. 미영은 사장님의 초점 없던 눈동자의 기원을 그날 방송된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게 됐다. 미영과 같은 나이를 걸치고 있던 사장님의 젊은 시절은 고립된 광주의 마지막 새벽을 지키고 있었다. 그제야 미영은 그날 새벽의 어둠을 응시하던 초점 없던 그 눈동자의 시선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광화문에서 미영은 그 눈동자를 다시 만났다.

비를 피하려고 계단 밑에 서 있던 미영은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눈동자를 향해 걸어갔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눈동자를 바라보고 싶었다. 순간, 눈동자가 미영을 바라봤다. 그렇게 서로의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미영은 들었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간절한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거울을 통해 늘 봐왔던 저 눈동자. 미영은 이제 저 눈동자가 자신에게 계속 건넸던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살아야 해. 당당하게. 숨지 말고 살아야 해.’


그날, 미영은 저 눈동자를 열심히 기록하던 철구를 처음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