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맑음.

by 고귀한 먼지

첫 문장을 쓰기가 쉽지 않구나.

10분 넘게 노트북 앞에서 망설이다 그냥 이렇게 성의 없게 채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시작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이달이 지나면 가을이 더 빠르게 지나갈 것 같아서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 가을을 눈에 담았다. 멀리 가진 못하고 그냥 주변을 천천히 돌며 보지 못했던 색들에 감탄했다. 40분 정도 홀로 걸었던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오늘이 풍요로워졌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그리고 이번 주까지 한 편의 단막극 극본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장편영화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는 글이다. 1차 초고를 예정대로 이번 주 금요일이면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완성도를 따질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태어나 글자 11포인트로 A4지 40장을 처음으로 채웠다는 점에 스스로 감동하고 있다. 지난 2017년에 말도 안 되는 트리트먼트로 서른몇 장 채운 게 최고였던 것 같은데, 어찌어찌해서 그 기록을 깼으니 내가 보더라도 스스로가 대견할 수밖에.


더디긴 하지만 난 이렇게 또 성장했다.


토요일 하루를 빼고, 지난주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매일 글을 썼다는 사실도 자랑스럽다. 자고로 작가는 쓰는 사람이고, 매일 써야 작가라고 하는데 지난주부터 이번 주까지는 어설프지만 작가 흉내를 내며 평범한 하루를 의미 있게 보냈으니 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는가.


KakaoTalk_20211026_153105591.jpg 가을은 가을이다. 잠시라도 눈에 가을을 담으니 하루가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은 무엇일까?


가을을 담고 싶어 걸었다지만 공허함을 털어버리고 싶어 홀로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을이라 그런가? 아니, 자주 그러는데 지금이 가을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지.


어제 EBS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란 주제로 유명 석학이 강연하는 내용을 시청했다.

그가 말하는 의미 있는 삶이란, 내가 정한 가치를 추구하며 그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과 교류하는 삶이라고 한다.

글을 쓰는 건, 글을 써서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건 내가 정한 삶의 가치다. 그 가치를 추구하며 최근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았다지만, 그 가치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들이 주변에 없으니 이 공허함의 원인은 거기에 있는 걸까? 최근에는 혼자가 훨씬 편한데 그건 바꿔 말하면, 함께 편하게 얘기 나눌 이가 주변에 없기에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결론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거구나.

사람을 만나 서로의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야지.

그래야 이 공허함이 조금은 사라질 것 같다.


2018년 5월, 그 이후로 벌써 3년.

함께 무언가를 만들었던 시간이 너무 그립다.

올해는 이야기를 창작하는 일에 나름 열중했다면 내년에는 꼭 만들자.

어떻게든 만들어서 사람들과 공유하자.


그나저나 가을이 가기 전에 단풍 구경 한번 가야겠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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