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발바리 ‘아름이'
최근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시고르자브종이라는 품종이 언급되는 게 있어서
혹시 최근에 알려지거나 내가 몰랐던 강아지 품종 인가 해서 여러 방면으로 알아봤더니
그건 바로…
시골 잡종 , 즉 믹스견을 아루 사랑스럽게 표현한 것이었다.
고양이를 고영희 씨라고 표현하는 언어유희처럼….
내가 알고 있는 시고르자브종중 제일 기억에 남는 녀석이 하나 있다.
이름은 ‘아름이’
시골에서 진짜 흔히 볼 수 있는 발바리이다.
때는 꽃샘바람도 잦아들고 아지랑이가 한창이던 즈음
“ 애좀 봐봐,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아..”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한분이 강아지를 안고 병원으로 내원했다.
2일 전 강아지를 출산 한 뒤 오늘은 갑자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고 한다.
방사선 촬영 결과 뱃속에 아직 태아 한 마리가 남아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음파 검사를 한 결과 태아의 심장이 뛰지 않는 죽은 상태였다.
아름이의 상태를 설명하자
“ 이를 어째...”
아름이를 애처로이 쳐다보시는 할머니.
강아지의 자궁은 사람과는 다르게 쌍으로 되어있어, 여러 마리가 임신이 가능하다.
그래서 출산하기 전에 병원에서 태아의 수와 난산의 가능성 대해서 검사를 받는다.
그래야만 뱃속에 태아를 모두 출산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이는 이런 검사가 없었기 때문에 배속의 잔존 태아 여부를 할머니는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유인즉
아름이는 할머니의 강아지가 아니라 옆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로, 주인 내외가 거의 돌보지 못하고 자주 집을 비워
할머니께서 손수 사료며 간식을 자비로 사서 챙겨주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치료 부분이었다.
할머니가 보호자가 아니어서 더 이상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자기가 돈을 낼 테니 수술이든 치료든 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원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 수술 또는 치료가 가능하다는 설명을 하자,
아름이를 맡긴 채 아저씨를 데리러 다녀오는 수고까지 하셨다.
한참이 지난 후 해거름 즈음해서 내원한 할머니와 아름이의 보호자.
“ 원장님이 살리던지 죽이던지 마음대로 하쇼”
아름이를 한번 쳐다보고는 아저씨는 병원문을 나서는 것이다.
하루 벌어서 먹고사는 인생인데, 강아지 수술까지 시킬 형편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아름이가 죽을 것인데.....
할머니는 그래도 숨탄것인데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면서 치료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수액을 맞히고 몸 상태를 조금 회복한 뒤 다음날 수술을 위해 입원실에서 아름이를 하룻밤 보내게 했다.
다음날 아침 아름이의 입원실을 보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 검사에 확인되었던 배속의 태아를 아름이가 품고 있는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강아지를 살펴봤지만 초음파 검사 결과와 동일하게 기형의 상태로 죽어 있었다.
태아가 나왔으니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기에 다행이었지만 , 죽은 강아지를 꺼내자 계속 입원장을 돌며
자기 새끼를 찾는 아름이를 보니 애처로워 보였다.
집에 있던 아름이의 새끼 강아지 두 마리를 상자에 담고 다시 병원을 찾은 할머니와 아저씨.
아저씨는 어제와는 다르게 아주 공손히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아름이를 보고는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물론 수술비 걱정도 되었지만 아름이가 아프고 또 잘못될 가능성에 더 마음이 편치 않아 어제와 같은 말을 했던 것 같았다.
할머니도 연신 “다 원장님 덕이야..”라며 웃으시는데,
밤새 죽은 강아지를 낳으려고 배를 틀었을 아름이를 생각하니 인사받기가 미안해졌다
내가 해준 것이 별로 없어서 말이다.
아름이는 2~3 일 정도의 산후조리를 위한 입원 치료 후 건강상태가 좋아져서 퇴원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무심코 병원 문밖을 쳐다보는데 강아지가 계속 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다름 아닌 “ 아름이”.
‘어서 문 열어주세요 ‘ 라며 문밖에서 꼬리를 치며 깡충깡충 뛰기까지 한다.
문을 열어주자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은, 아름이가 입원해 있던 입원실.
문닫힌 입원실을 발로 긁으며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병원 식구들이 모두 의아해하는데 누군가 “ 원장님! 아름이가 아무래도 죽은 애기를 찾는가 봐요”라고 했다.
그랬다. 아름이는 입원실에서 출산한 강아지를 찾으러 한 번밖에 와보지 않은 병원으로 6차선 도로를 가로질러서 혼자 찾아왔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보호자가 병원 앞에 데려다주고 볼일을 보는 줄 알고 병원 문 닫을 때 즈음 집으로 찾아가서 데려다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름이” 혼자서 병원을 찾아서 오는 것이었다.
아름이는 낮에는 유기견들과 같이 마을을 돌아다녔고, 그 중간 코스로 병원에 들러서는 간식거리와 물을 얻어먹고 한두 시간 쉬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아름이가 병원에 들어오면 먼저 병원 식구들과 차례로 인사하고는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은 언제나 동일하게 예전 아름이가 입원했던 입원실이었다.
계속 죽은 자기 강아지가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도로를 건너는 것도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다가 초록불을 이용해서 사람들과 항상 같이 건너서 다니는 영특함을 보였다.
이렇게 2-3달이 넘게 혼자 병원을 놀러 오던 아름이가 어느 날부터 새끼 두 마리까지 데리고 병원으로 놀러 오는 것이었다.
젖을 떼고 걸음마가 가능해지자 그때부터 새끼들을 데리고 마을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병원 식구들은 TV 프로그램 중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가도 되겠다며 웃곤 했다.
이렇게 매일 오다시피 하던 아름이의 병원 방문이 뜸해진 것은 출산 이후 건강 상태가 좋아진 뒤 몇 가지의 예방접종을 맞고,
다리를 절며 왔을 때 방사선 촬영과 주사를 맞은 후부터였다,
‘병원에 놀러 오니 예전에는 간식만 먹었는데 이제 아픈 주사도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 것 같았다.
참으로 영리한 녀석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할머니 홀로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아름이가 없어졌어. 딸이 장에 데리고 갔는데 잃어버렸나 봐... 시장을 아무리 뒤져도 없어...”
똑똑하고 길을 잘 찾는 아름이도 처음 가본, 더구나 길이 복잡한 재래시장에서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할머니의 꼭 찾아 달라는 부탁에 유기견 입양센터 등 모든 곳을 찾아봤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지금도 한 번씩 병원 밖 도로에 발바리들이 지나가면 혹시나 아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문을 열고 “아름아 “라고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