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큰 장점 중의 하나는 안정성, 즉 웬만해서는 정년까지 보장되어 길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학교를 다닐 때도, 임용고시를 공부할 때도, 나의 평생직장에 대한 준비라고 생각하고 임한다.
하지만 막상 교직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고민은 ‘과연 내가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 까?’하는 것이다.
10년 전, 임용고시를 봤던 해에 전국적 역대 최저 임용 to로 단군 이래 최고 임용고시 경쟁률을 기록했었다. 졸업생과 누적된 재수생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게 뽑는 to 때문에 전국 교대생들이 모여 투쟁을 하러 상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일반대학교에 비해 3.5:1 정도의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이는 경쟁률 수치에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고, 투쟁에도 불구하고 to는 줄어든 그대로였다. 결국 우리들끼리의 내부의 경쟁으로 임용고시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이 경쟁률이 잔인한 이유는 입학 때 이미 한차례 교직만을 생각하고 진학한 학생들이 오로지 하나의 직업만을 염두할 수밖에 없는 특성화 목적의 교육을 받았지만, 다시 한번 더 경쟁에 의해 다수의 사람들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실패를 맛봐야 하기 때문이다. 총 3차에 걸친 임용고시 끝에 주변에 재수, 삼수생들은 넘쳐났었고 삼수 이상의 n수생 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다른 직종의 시험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경쟁률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지만, 애초에 교직의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이라고는 생각조차 안 해본, 허수가 0에 가까운 싸움이기에 실경쟁률의 의미는 다른 직종과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런 경쟁 속에서, 우리는 ‘임용고시 합격’이라는 눈앞에 주어진 묵직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하고 고통받지만, 정작 교사가 된 후의 고민에 대해선 생각할 틈이 없었다. 임용준비생은 그저 ‘합격만 시켜주면 뭐든지 할게요’라며 간절히 합격만을 갈망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어쩌면 그런 고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건 합격 이후의 일이라고 애써 외면한 채, 뒤로 미뤄뒀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합격 후에는 바로 몇 주간의 신규교사 연수를 시작하였고, 무언가 교직에 대한 고민을 할 겨를도 없이 6학년 학생들의 담임이 되었다. 그 후 정신없는 적응기 동안 고민과 성찰할 시기를 점점 늦추게 된 것 같다. 고민을 하다가도 당장 오늘 출근해서 할 일을 해치우다 보면, 점점 그 안에 매몰되어서,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고민이 힘들어진다. 매일매일의 업무를 해내고,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해결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더 이상 신규 교사가 아닌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교사가 되어있었다.
첫 제자 들은 벌써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 되었다. 또 미래의 제자 중 다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가들일 것이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교사들은 어느 직종보다 발 빠르게 세대교체되가는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적응하고, 같이 변화해 가야 하는 존재이다. 아직은 내가 흔히들 말하는 ‘젊은 교사’라 아이들과 세대차를 심하게 많이 느낄 만큼의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50대, 60대 교사들을 학교에서 보면, 학생들과 교사가 서로 세대차를 느끼고, 힘들어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그래서 평생직장으로서 교직에 있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기에 아직도 교직이 평생직장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그리고 생물학적인 나이차가 단순한 ‘노력’으로만 좁히기에는 서로가 이미 느끼는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학생들과 잘 지내고 학생들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교사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교직이 적성에 잘 맞던 사람들조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런 부분을 포함한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경력을 다 채우지 않고 명예퇴직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교직이 평생직장으로 괜찮을 것인가는 앞으로도 고민해봐야 할 풀리지 않는 어려운 숙제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