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경은 어디에
이제 곧이다. 그 남자를 찾을 것이다. 가정을 망가뜨린 그놈을. 어느 날 나타난 그놈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아내와 딸과 함께 행복한, 아니 행복하진 않더라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라져 버린 딸, 죽어버린 아내. 나는 그들을 위해 복수해야만 한다. 아니, 나를 위해 복수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다세대 주택의 철제 대문은 입주민인지 택배 기사인지 누군가 출입하며 열려있었다. 계단 5개 정도 내려가는 반지하 집 앞에 서서 초인종 없는 방화문을 두드렸다. 문 너머 누구세요 하고 묻는 말에 은행원이라고 답했다. 은행원이 왜...라는 희미한 대답이 들렸다. 곧 문이 열렸고, 나의 왼쪽 구둣발을 살짝 틈에 걸쳤다. 남자는 당황했는지 문을 닫으려 했으나 실패했고, 나는 있는 힘껏 제꼈다. 남자와의 작은 실랑이가 몸싸움으로 커졌고, 뒤엉켜 있던 형체들은 곧 쓰러진 남성과 그를 제압한 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르고 있는 자가 주먹을 휘둘렀고, 누워 있는 자는 신음을 흘렸다. 왜 그러시오. 당신은 왜 그랬는데. 내가 뭘 했다는 거야. 뭘 했는지 모른다는 거야. 대답이 오고 갈 때마다 주먹이 휘둘러지고, 결국 피를 보고야 만다. 식어가는 핏방울을 봐도 식지 않는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겠다. 멱살을 잡아 의자에 앉혔다. 묶을 만한 것을 찾느라 여기저기 뒤졌으나 마땅치 않아서 신발장에서 발견한 박스테이프로 남자를 휘감았다. 테이프가 쩌억 쩌억 거리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을 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의 입에다가도 테이프를 붙였다. 곧 남자가 정신을 차렸으나 읍 읍 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남자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가장 아프게, 힘을 실어 확 뜯어 냈다. 짧은 탄성이 들렸다. 한 번쯤 이런 거 해보고 싶었다니까. 아파하는 남자에게 일부러 말해주고, 다시 한번 테이프를 들어 입에다 붙이려고 시도했다. 놀란 남자가 조용히 할 테니 붙이지 말라고 했다.
이봐 정말 왜 이래? 신식 씨 이런 사람 아니잖아. 아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우리 가정을 망가뜨렸잖아.
말이야 똑바로 합시다. 원래 망가져 있던 거였는데 내가 뭘 망가뜨렸단 말이야.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해준 거뿐이야.
그제야 남자와 나의 인식의 차이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당신, 일부러 그러는 거야? 모르는 체하는 거야 뭐야.
아니, 내가 무슨 죽을죄를 지었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선혜 씨가 죽은 거 몰라?
남자는 깜짝 놀랐다. 동공까지 커진 것이 보였다. 정말일까.
선혜가 왜 죽어? 어쩌다가? 어디 아팠어?
선혜 씨는 말이야… 가위에 찔려 죽었어. 당신 정말 아무것도 몰라?
정말 모르는 것 같아 보였다. 경은의 행방에 관해서도 아는 게 있는지 확인해 봤지만 그는 아는 게 없다고 했다.
경은이는 말이야... 행방불명이야.
우리의 첫 신혼여행은 셋이서 했다. 고등학생이지만 일주일 동안 경은을 혼자 있으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경은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이긴 했다. 아무래도 불편했겠지. 엄마랑 둘이 가는 여행도 아닌데. 아, 이제까지 둘이 여행을 간 일은 내가 알기론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어색했을 것이다. 선혜도 경은을 두고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경은을 걱정하는 선혜가 신경 쓰이는 것보다는 경은도 같이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경은과 친해질 계기가 필요한 것도 이유였다. 성화에 못 이긴 경은과 우리 부부는 제주도로 떠났다. 경은이는 처음 비행기를 타본다고 했다. 그래서 약간의 흥분과 함께 긴장을 한 것처럼 보였다. 평소 무뚝뚝한 모습만 보이던 아이가 처음으로 진짜 애처럼 보였던 것 같다.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해서 귓속말을 했다.
뒤에 앉아 있는 아저씨가 지금 핸드폰을 하고 있거든. 그런데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도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꾸지 않으면 비행기가 떨어질지도 몰라...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경은이가 웃겼지만 웃음을 참았다. 선혜는 경은이에게 가만히 좀 있으라고 눈치를 주는 것 같았다. 본인도 두 번째로 비행기를 타는 거면서 딸에게는 긴장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선혜는 내게 국내선도 기내식이 있는지 물어보곤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둘 다 귀여워서 어쩔 줄 몰랐다. 경은이는 비행기가 착륙하고 핸드폰을 하던 남자가 먼저 통로를 빠져나가자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공항 옆에서 렌트를 해서 예약했던 호텔로 이동 후 체크인을 했다. 둘 다 방이, 침대가, 벽지가, 조명이,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너무 좋다고 연신 떠들어 댔다. 평소 엄마랑은 몇 마디 말도 잘하지 않던 과묵한 경은이도 오늘만큼은 신이 나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그때 녀석을 보면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행복한 것 같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이리저리 조몰락거리는 것 같았다. 자녀라니... 딸이라니...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기만 했다. 미소 띤 선혜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게 좋아요? 앞으로도 행복하게 해 줄게요.
이렇게 좋은 곳에 온 것만으로도 많이 행복해요.
우리는 짐을 풀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나왔다. 지역 시장으로 이동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군것질을 하고, 시장 옆 횟집에서 활어 회도 한 접시 먹었다. 또다시 구경거리에 나서는데 선혜 씨가 내 오른쪽 팔을 자신의 두 팔로 잡았다. 다 큰 딸은 뒤에서 쫄래쫄래 쫓아왔다. 누가 보면 영락없이 한 가족으로 볼 것이었다.
차에 숙소에서 먹을 음식들을 실어서 함덕 해변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선혜 씨와 경은이는 여행 내내 벌어질 다툼 중 첫 실랑이를 벌였다.
난 이런 거 입기 싫다고.
엄마가 일부러 사 온 거니까 한 번만 입어봐.
선혜의 손에는 노란색 비키니가 들려 있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입어!
내가 봐도 고등학생에게 입히기에는 무리스러운 옷이었다. 선혜 씨는 가끔 경은이에게만 그렇게 이상한 고집을 피울 때가 있는 것 같았다.
선혜는 마음을 돌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경은이 타협할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 경은이 차로 혼자 돌아가버림으로 상황이 종료 됐다.
쟤가 저런다니까요. 아휴. 미안해요. 신식 씨.
전 괜찮은데... 경은이가... 자기 취향이라는 것도 있는데, 너무 강요하는 건 안 좋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경은이 한테는 이런 게 잘 어울려요. 잘 어울리니까 입으라고 하는 건데, 엄마 마음도 모르고 참.
결국 어정쩡하게 바다를 보다가 우리도 차로 돌아갔다.
선혜와 경은이 말을 하지 않자,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는 나에게로 집중됐다. 운전 중에 경은이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초혼인데, 엄마랑 결혼하는 걸로 부모님이 뭐라 하지 않으셨어요?
재혼이 뭐가 어때서 그러니? 경은이 같은 딸도 생기고 좋지.
에이, 그래도 그렇지 않잖아요.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께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인 것을 말씀드리니 여러 가지 생각을 하신 것 같았다. 무정자증… 아무래도 이렇게라도 손주가 생기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후 우리의 결혼은 큰 반대 없이 진행되었다.
정말이야. 또 엄마랑 만나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데.
그래도 결혼식 정도는 하고 싶지 않았아요?
글쎄, 나는 상관없었어. 엄마가 하고 싶지 않아 했으니까, 안 한 것뿐이고. 오히려 신경 쓸게 많이 없어서 좋은걸.
생각해 보면 어쩌다가 이렇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나 싶기도 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다가 혼자 죽을 줄 알았는데. 창구에 앉아 상품을 팔고, 돈을 만지고, 조회를 하고, 분실된 비밀 번호를 다시 등록해 주고, 은행을 찾아온 사람들 하소연을 들어주고... 그러다가 선혜를 만나게 될 줄이야.
대출 상담을 하면 생각보다 많은 말들을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은 내게 가정사부터 시작해서 무슨 일을 하는지, 가족은 누가 있는지, 사이는 좋은지, 자신이 지금 얼마나 불행하고 심리 상태가 어떤지 등에 대해 늘어놓는다. 내가 직접 돈을 빌려주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왜 꼭 대출이 필요한지 설명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많은 사람 중 선혜는 유독 혼자 많은 짐을 짊어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 짐은 홀로 딸을 키워야 하는 한 엄마로서의 짐일지도 모르지만, 무언가 더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에도 쓰러지지 않겠다는 강인함이 보였다. 나는 그런 면에서 선혜에게 호기심을 갖게 된 것 일지도 몰랐다. 대출 조건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어떻게든 조건을 맞추기 위해 여러 번 상담을 받고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 그녀에게 끌려 나도 백방으로 방법을 알아봐 주었다.
신혼여행은 어려움이 많았다. 배낚시, ATV 타기, 일출봉 오르기 같은 흔히 하는 활동들을 했는데, 선혜와 경은이는 계속 부딪히기 일쑤였다. 선혜는 경은이를 계속 보호하려고 했고, 경은이는 그런 선혜에게 저항했다. 손으로 고기를 잡지 마라, ATV를 운전하지 말고 뒤에 타라, 계단 많이 오르면 종아리가 굵어지는데 같은 말들을 해서 경은이가 발끈하게 했다. 둘을 중재하는 것이 내 역할인 것 같은 여행이었다. 그런 식으로 우리의 여행은 흘러갔었다.
선혜와 경은의 대치는 일상에서도 계속되었다. 생활 자체였다. 나는 딸과 엄마의 관계가 원래 그런 건가 싶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봤을 때 보통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아무튼 우리의 결혼 생활에서 내 역할은 중재자가 분명했다.
어느 날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다. 주광색 거실등이 밝게 켜져 있음과 동시에 차갑게 식은 정적이 가득한 것으로 봐서 선혜와 경은이가 또 싸우고 있는 것을 직감했다. 안 방 문과 경은의 방 문이 모두 닫혀 있었다. 나는 어디부터 문을 두드려야 할지 고민하다가 경은의 방으로 향했다. 잠겨 있었다. 내가 왔음을 알려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안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또 뭐 때문에 그런 거예요?
문을 열며 내가 말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선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안한 기색을 표정에 담았다. 그녀가 원한 결혼 생활이란 이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깟 옷 좀 버렸다고 화를 내지 뭐예요. 고 3이나 됐으면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아니, 고 3이나 된 아이 옷을 함부로 버리는 게 어디 있어요. 그 예민한 시기에. 나라도 화날 거 같은데.
아니, 내가 바지는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에요. 나 모르게 청바지를 숨겨뒀지 뭐예요.
나는 짐짓 놀라지 않은 척하며 다시금 좋게 이야기하려고 했다.
청바지가 어때서요. 아니, 바지 좀 입으면 안 돼요? 당신은 경은이를 너무 통제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선혜의 눈 빛이 잠깐 날카로워진 것을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 선혜의 이런 모습을 알게 될 때마다 놀라움에 더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결혼 자체를 후회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경은이에 관한 것만 제외하면 선혜와의 결혼 생활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여느 신혼부부와 다를 게 없었다.
아무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딸한테 뭘 입혀야 하는지는 엄마가 잘 알아요. 그러니까 그런 줄 알아주세요.
요즘 시대에 바지를 못 입히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요. 내 말은 경은이가 힘들만하다는 거예요.
신식 씨는 내 걱정이 어떤 건 줄 잘 몰라요. 쟤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남자 같이 행동했는지 알아요? 고등학교 교복도 바지를 입으려고 한다니까요? 다른 애들은 다 치마 입고 다니는데.
선혜와 경은이 일로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적당히 대화를 끊고 밖으로 나왔다.
경은아? 아저씬데, 잠깐 얘기 좀 할까?
잠시 뒤 문이 열렸다. 방에 들어가자 분홍색 벽지에 고양이 그림이 여럿 그려진 침대 이불이 눈에 들어왔다.
괜찮니?
엄마가 내 옷을 그냥 버렸어요. 진짜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청바지 하나 못 입는 게 말이 돼요? 내 물건들을 이렇게 말도 없이 건드는 거 이제 진짜 지긋지긋해요. 어릴 때부터.
아저씨가 네 맘 잘 알아. 엄마한테 화 많이 났겠구나.
아니요, 아저씨는 잘 모를걸요. 내가 얼마나 많이 당하면서 살고 있는지.
많이 속상한가 보구나. 일단 나와서 같이 밥 먹자. 배고프지?
됐어요. 엄마랑 둘이 드세요. 저는 오늘 그냥 굶을래요.
아무래도 오늘은 중재가 어려울 듯싶어 경은이의 방을 나왔다. 선혜 씨와 둘이서 저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집을 피울 거면 차라리 굶으라지.
선혜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행동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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