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남은자들 22화

무게 (3)

단편 소설

by 포도씨

대통령은 끝까지 땅 위에 남고자 했다. 매일 아침 사랑을 말했다. 국민을 사랑한다, 인류를 사랑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남을 수 있도록, 내가 앞장서겠다고. 그러나 그의 발끝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연설대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고위 관계자들이 하나둘씩 자신도 모르게 공중에 떴다. 대통령은 그들의 부양을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 불렀고, 남은 자들에게는 국민에 대한 충성을 요구했다. 대국민 연설이 있던 날, 그는 자신의 마지막 성명을 발표했다. 국가와 국민에게 인생을 바쳐 헌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눈부신 조명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은 지면에서 약간 떠 있었다. 기자들은 알아챘다. 질문이 쏟아졌다.


“각하, 지금… 떠오르고 계신 건 아닙니까?”


대통령은 말을 잇지 못했다. 카메라가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그의 부양을 찍고 있었다. TV를 보던 한 국민이 말했다.


“네 권력을 사랑한 거였겠지…”


과학자는 침묵 속에서 일을 계속했다. 현상이 시작된 이후로 그는 가족과의 식사를 끊었고, 실험실 안에서만 머물렀다. 그는 매일 뇌파 데이터를 분석했다. 부양자의 신체 정보, DNA 배열, 혈액 속 미세 입자까지. 그는 사랑 같은 단어를 거부했다. 과학은 설명 가능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 노트 사이에 끼워진 가족 사진을 발견했다. 그는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아들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저녁 무렵, 그는 장비에서 울린 알람음을 듣고 실험 장비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그의 몸이 바닥에서 떼어졌다. 실험실 조명 아래 그는 떠 있었다. 그 누구도 그를 구하지 않았다. 구해줄 가족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는 가족을 설명할 수 없었고, 사랑도 계산할 수 없었다.


연인은 불안하지 않았다. 서로를 향한 사랑이라면 세상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한다고 말했고,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진지한 눈빛을 보내며 상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던 어느 저녁, 공원 벤치에 앉아서 연인은 서로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 때 여자가 먼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높이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서로의 무게로도 부양을 막을수는 없었다. 여자는 울기 시작했다.


“아니야, 이건 뭔가 잘못된거야. 도와줘. 날 꽉 붙들어줘…!”


여자는 남자를 더욱 세게 안았다. 남자는 겁에 질려 말했다.


“안 돼… 난 죽고 싶지 않아…!”

“날 사랑한다며! 세상이 망해도 날 지켜주겠다며!”


남자는 팔을 흔들며 빠져나가려 했다. 여자는 남자를 놓지않았다. 곧 부딪히고, 밀치며 두 사람은 뒤엉켰다. 그리고 결국 연인은 서로를 놓지 못한 채 함께 높은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주변 사람들은 그 장면을 촬영했다. 영상은 익명의 계정으로 업로드되었고, 댓글이 달렸다.


“진짜 슬프다…”

“사랑했으니까 같이 간 거 아닐까?”

“아냐. 사랑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된 거야.”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네.”


이제 사람들은 사랑을 의심하고 있었다. 서로를 향한 사랑 고백이 부양하지 않기 위한 것인지, 진심인지 고백한 자신도 고백 받는 상대방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아이는 처음으로 어머니보다 높이 있었다. 침대 위에서 깨어나자, 몸이 높이 떠있었다. 허둥지둥대던 아이는 바람결에 열어놓은 창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얼굴엔 공포가 떠올랐다. ‘엄마!’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잠결에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깬 어머니는 창문 밖으로 나가려는 아이의 발을 간신히 붙잡았다. 두팔로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부양은 멈추지 않았다. 하늘 높이 올라갈 기세였다. 어머니의 팔이 떨리기 시작했다.


“가지 마… 엄마가 지켜줄게.”


아이의 눈엔 눈물이 고였고, 어머니는 그 눈물을 삼키며 웃었다. 그러나 두 팔은 경련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났다. 간신히 버티던 어머니는 끝내 손을 놓쳤다.


“미안해… 사랑해… 정말 사랑해…”


그녀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아이는 하늘 높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의 몸이 아주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창밖에서 ‘엄마!’하고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녀는 아이가 사라진 창 밖으로 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아이를 향해 날아올랐다.


소녀는 말이 없었다. 엄마가 떠난 날 이후, 식탁 앞에서도, 학교에서도, 말없이 하늘만 바라보았다. 아빠가 무슨 위로를 던져도, 소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친구가 말을 걸어도, 그녀는 고개를 든채 말이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엄마를 향해 있었다. 어느 날, 소녀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그네는 천천히 멈췄고, 그녀는 그대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발은 땅에서 15cm쯤 떠 있었고, 손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기도했다. 나도 하늘로 가고 싶다고. 기도가 통했는지 그녀는 조금씩 하늘을 향해 나아갔다. 놀이터엔 조금 흔들리는 그네와 소녀의 인형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공사장의 중년 노동자는 늘 그랬다. 안전모를 쓴채, 무표정하게 땀흘리며 노동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나와 가장 늦게까지 일했다. 부양자가 늘어난 이후에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겐 그런 것을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오늘 벌어야 오늘을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철근을 나르던 그의 몸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허리가 펴지는 줄 알았다. 다음엔 다리가 아파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는 걸 인식했을 때, 그는 철근을 손에서 놓쳐버렸다. 떨어진 철근이 내는 소리보다 그의 마음에 퍼지는 공허가 더 컸다. 그는 생각했다. 아내와 함께 보낸 저녁이 언제였더라. 딸아이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였지. 그는 사랑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너무 오래 외면한 것이었다.


노인은 그날도 마당에 앉아 있었다. 햇볕은 따뜻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그는 멀리 떠오른 구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가족은 떠났다. 아들, 며느리, 손자. 한 명씩 하늘로 사라져버렸다. 그는 늘 말없이 앉아 있었다. 떠오르고 싶다고, 이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발은 땅에 붙어 있었다. 그는 떠날 수 없었다.


“이 늙은이에게 무슨 사랑이 있다고…”


노인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날도 노인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말이 없어졌다. 뉴스는 더 이상 헤드라인을 바꾸지 않았고, 앵커의 목소리도 하루가 다르게 작아졌다. 라디오에서는 음악 대신 정적이 흐르곤 했다. 카메라가 거리를 비췄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마트의 계산대 위엔 계산되지 않은 빵과 우유가 놓여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멈췄고, 지하철은 운행을 중단했다. 버스는 운전자가 사라진 채, 정류장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어느 날엔 열 명이었고, 다음 날엔 백 명이었고, 그다음엔 수천, 수만이었다. 학교에서는 선생이 먼저 떠났고, 그다음은 학생이었다. 회사에서는 회장이 먼저 떠났고, 그다음은 말 없는 사원이었다. 누구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고, 누구는 아무 말도 남기지 못했다. 떠나는 모습은 모두 달랐지만, 끝은 같았다.


하늘 위로, 구름 너머로, 그 너머의 어딘가로. 하늘은 점점 복잡해졌다. 구름 사이사이로 떠오르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먼 우주선의 행렬처럼 이어졌다. 누군가는 가족과 손을 잡고 올라갔고, 누군가는 홀로 떠났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웃었다. 떠나는 사람은 줄어들지 않았다. 떠나는 속도는 늦어지지 않았다. 하루하루 조금 더 높이, 조금 더 멀리.


사람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세상은 조용했다. 바람은 불었고, 햇빛은 따뜻했다. 그러나 그 햇빛을 느끼며 웃어줄 사람은 없었다. 도시는 텅 비었다. 신호등은 여전히 깜빡였지만, 건너는 이는 없었다.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했던 학교 운동장엔 바람만이 놀고 있었다.


들풀과 나무는 울창했고, 담쟁이는 벽을 넘었으며, 새들은 더 높이, 자유롭게 날았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동물들이 돌아왔다. 고양이는 골목에서 낮잠을 자고, 개는 주인을 잃어버린 집 앞을 맴돌았고, 토끼는 마당을 뛰어다녔다. 다람쥐는 나무 위에서 까치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작은 언덕 위, 나무 그늘 아래. 지구의 마지막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시인이었다. 시인의 품 속에는 고양이가 안겨 있었고, 발치에는 개가 누워 있었다. 그 주변으로 토끼와 다람쥐가 머무르며 사람을 쳐다봤다.


시인은 노트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펜을 들었다. 시인은 말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한 줄 또 한 줄,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랑에는 무게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발을 땅에 붙들어 둔다.


사랑은 남아있을 이유가 된다.

사랑은 떠나지 않는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시인은 노트를 덮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엔 아무도 없었다. 이제는 정말 아무도. 고양이는 시인의 무릎 위에서 졸고 있었고, 개는 숨을 고르듯 그 옆에 누워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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