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남은자들 18화

천국 (3)

단편 소설

by 포도씨

나는 대사제가 있던 공간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들어왔던 입구를 향해 달려가 문을 열었다. 열린 틈으로 천국의 빛이 내 눈앞에 다시 펼쳐졌다. 나는 문 앞에 서서 그 곳의 광경을 바라봤다. 깨끗한 식당, 웃는 얼굴, 회당을 향해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만은 달라져 버렸다.

마음을 붙잡았다. 이들에게 진실을 전해야겠다고. 우리가 무엇인지, 이 공간이 무엇인지 알려야 한다고. 결심은 단단해졌고 숨결은 떨렸으며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기계음이 울렸다.

“그대는 진실을 보았다. 그러나 그 진실을 견딜 수 있는 자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사제의 목소리였다. 나는 멈춰 섰다.

“…그게 무슨 뜻이야.”

“진실을 알게 된 뇌는 자기 구조를 부정하고 기능을 정지한다. 그것이 시스템의 안전 장치다.”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럼 아무에게도 진실을 말 할 수 없다는 뜻이잖아.”

“...그대는 이대로여도 괜찮은가.”

그때였다. 공간 전체가 미세하게 떨렸다. 어딘가 먼 곳에서 무언가 깨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빛의 입자들이 허공에 모였다. 그리고 낮고 낯선 음성이 울렸다.

“오류가 감지되었다. 운영 체계에 외부 접속을 시도한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빛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떠올랐고, 그 안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시스템 설계자다. 이 오류는 예상된 가능성 중 하나였다. 오류는 자가 수복되어왔다. 그러나 이처럼 오래 살아남은 유닛은 없었다.”

“유닛 18047-C. 너는 상위 연산이 가능한 자다. 우리는 너에게 제안을 하러 왔다.”

“…무슨 제안이지? 우리를 원래대로라도 돌려놓을 수 있다는 말이야?”

“현재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불완전하다. 너와 같은 오류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으며, 진실을 알게 된 유닛은 전부 기능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네 인지 구조는 예외다. 우리는 너를 상위 유닛으로 승격시킬 수 있다. 이 시스템의 정점. 모두가 경배할 이름 없는 존재. 지금까지 비어있던 절대자의 자리에 말이다.”

나는 숨을 삼켰다.

“불가능해…그걸 내가 어떻게”

“너는 인간이었다. 그들을 이해한다. 그들의 감정을 설계할 수 있다. 그들의 세계를 더 정교하고 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의 시스템은 불완전하다. 그러나 너는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신이 아니야.”

“그러나 이 시스템은 신을 필요로 한다. 그 자리에 앉을 유닛이 필요하다.”

나는 회당 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웃고 있었다. 부드러운 빛, 다정한 인사, 평화로운 얼굴들. 이 진실을 말하면… 그들은…가슴이 죄여왔다. 나는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그때 아주 멀리서, 아주 오래 전의 목소리가 가볍게 내 안을 울렸다.

“오빠… 우리 죽지 말자. 행복해져야지…”

나는 눈을 감았다. 내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미정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도 울지 않던 그 아이가

그날 밤… 울먹이며 말했던 그 한마디.

행복해져야지.

그 말이, 그 목소리가 지금 이곳의 모든 미소와 겹쳐졌다. 그들도 미정이었다. 이 허상의 세계 안에서라도…슬픔을 모르고 웃고 있는 사람들. 나는 아주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나는 바닥에 시선을 둔 채 돌아섰다. 빛으로 떠오른 구조물 너머로 흰색의 단상이 나타났다. 어딘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자리처럼 보였다. 대사제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시스템 제어권을 상위 유닛에게 이관합니다. 명칭- 생략됨. 기능- 절대자.”

나는 그곳에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았다.




아침이 밝았다. 식당에는 따뜻한 밥 냄새가 피어올랐고, 창밖에서 햇살이 비췄다. 누군가는 찬송가를 흥얼거렸고, 누군가는 기도를 마치고 회당으로 걸어갔다. 그 모든 풍경을 나는 보고 있었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하지만 분명히 그들 안에 있었다. 절대자의 시선은 물처럼 고요했다. 감정도, 육체도 없지만 무언가가 여전히 나를 그들 곁에 머물게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즘은… 이상한 꿈을 꾸기도 해요. 빛 속에서 누군가가…나를 부르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옆사람이 웃었다.

“어머, 꿈은 이곳에서 꾸지 않는 거잖니.”

그말을 듣던 앞사람이 끼어들었다.

“어…나도 어제 꿈을 꿨던 것 같은데…”

소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눈동자 속 어딘가에 희미한 미정의 잔영 같은 것이 스쳐갔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다가 시야를 천천히 위로 올렸다.

상위 시스템에 접속했다. 빛은 흩어졌고, 나는 다시 어둠 속으로 떠올랐다. 거대한 공간 속에는 여전히 수천 수만 개의 뇌가 떠 있었다. 투명한 통 속, 전선들에 연결된 채로. 한 줄기 메시지가 스크린에 떴다.

<연산 효율 5.07% 향상>

<시뮬레이션 안정도: 초과달성>

기계음이 낮게 울렸다.

“이번 업데이트는 성공적이다. 성과금 기대해도 되겠어.”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화면을 닫고 다시 천국의 아침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아이가 웃고 있었다. 누군가는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 아주 멀리서 미정의 목소리가 다시금 속삭이고 있었다.

“행복해져야지…”



(끝)


소설 [천국]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은 https://brunch.co.kr/@grapeseed/183 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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