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남은자들 17화

천국 (2)

단편 소설

by 포도씨

예배가 끝나자 사람들은 조용히 일어섰다. 기도문은 끝났고, 찬송은 희미해졌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모두 만족한 표정이었다. 절대자의 은혜 아래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 그들은 고요했고, 충만했고, 움직임마저 부드러웠다. 나는 아직 그대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손을 펴지도, 모으지도 못한 채. 눈을 감지도, 뜨지도 못한 채. 몸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며 마음은 어딘가를 맴돌고 있었다. 그때 사제가 제단을 내려왔다. 흰 옷자락이 휘날렸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낮고 조용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사제가 내 앞을 지나치려는 순간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다.

“사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제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부드럽고 단정했다.

“…그러신가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는 나를 예배당 측면의 회랑으로 이끌었다. 작은 대기실 같은 공간의 벽엔 기도문이 적힌 두루마리와 절대자의 상징이 새겨진 판화가 걸려 있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는 나직하게 물었다. 나는 숨을 고르고 또박또박 말했다.

“제가… 꿈을 꿉니다.”

사제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표정이 흔들렸다. 그가 즉시 말하지 못한 침묵이, 내 말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꿈이라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주, 반복해서 같은 꿈을요. 미정이라는… 제 여동생에 관한 꿈입니다.”

사제는 손을 모았다가 풀었다. 그의 동공은 아주 미세하게 떨렸고, 손끝은 긴장한 것처럼 말려 있었다. 그는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따라오시겠습니까. 이건, 제가 혼자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조금 떨어진 건물로 이동했다. 사제들의 회의 공간은 아주 단정한 책상들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벽은 창문 없이 두꺼운 암석으로 막혀 있었다. 이미 다섯 명의 사제가 그곳에 모여 있었다. 내가 입장하자 그들의 시선이 조용히 내게로 쏠렸다.

“이 아이는…?”

“예. 방금 전 예배에서 제게 직접 말을 걸었습니다. 사제님들께 들려드릴 말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가운데에 섰다. 마치 심판대 같았고, 나는 그 중심에 발을 딛고 있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

사제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저는… 꿈을 꿉니다. 이곳에선 아무도 꿈을 꾸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저는 매번 같은 장면을 봅니다. 과거의 기억인지, 단지 반복되는 환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계속됩니다. 그 속에서 저는… 동생과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고통받는 모습을 봅니다. 사실 저는 동생이 저 대신 이곳에 와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생은 저보다 더 구원받아야 할 아이였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사제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입을 열었다.

“동생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죄가 있었겠지요. 절대자께서는 다 아시고 계십니다. 당신은 지금 과거의 기억에서 못 나오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건 분명 꿈이었다. 난 꿈을 꾸고 있었다.

“이건 기억이 아닙니다. 분명 꿈입니다.”

“이 아이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꿈을 꾼다’고. 이건 단순한 기억의 반응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천국의 규칙이 틀렸단 말입니까?”

“아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절대자께서는 완전하십니다.”

“혹시… 이 아이가 실수로 여기에 온 것은 아닐까요?”

그 말이 나오자 공기가 살짝 요동쳤다.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는 ‘예외’였고, 천국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예외’는 곧 ‘위험’이었다. 그때,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사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 문제는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 같습니다. 대사제님께 여쭈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잠시 침묵했다가, 차례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 정적 속에서 처음으로 이곳에 숨겨진 문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그 문을 두드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 들어섰을 때, 천국에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을 느꼈다. 머리카락이 서고, 등줄기로 차가운 긴장감이 흘렀다. 공기는 움직이지 않았고, 주변은 암흑이었다. 단 하나,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한 줄기 빛만이 나를 세상 속에 붙잡아두고 있었다. 그곳은 온도도, 냄새도, 생명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어떤 압력 같은 정적이 내 몸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때 어둠 너머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음성은 낮았고, 메마르고, 감정이 없었다.

“그대는… 왜 이곳에 왔는가.”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가,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대사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소리도, 반응도 없었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이곳에 제대로 온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제 동생은 여기 오지 못했는지. 여긴 천국이라면서요. 그런데 저는 왜 자꾸 괴로운 꿈을 꾸는 걸까요…”

긴 침묵이 흘렀고, 대사제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는 천국을 믿지 않는가.”

나는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믿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이곳은 천국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곳이 천국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건… 혹시 대사제님께서 아시지 않을까요?”

대사제는 다시 물었다.

“그대는 이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절대자가 실수로 너를 이곳에 데려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가.”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의도도 알 수 없었다. 대사제는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고민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절대자께서 실수하신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도 제 생각엔, 이곳엔 저보다… 제 동생이 와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대사제의 음성이 조금 낮아졌다.

“그대는 죄인인가.”

그 질문은 칼날 처럼 다가왔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나는 지옥으로 보내지는 것일지 잠시 생각했다. 나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죄인입니다.”

잠시 정적이 이어졌고, 그때 대사제는 조용히 말했다.

“너로구나.”

그 목소리는 처음으로 미세한 ‘확신’ 같은 결을 담고 있었다.

“내가 기다려온 이가. 시스템 오류가.”

나는 숨이 멎는 듯한 기분으로 그 말을 들었다.

“…시스템… 오류?”

“그대는 이 천국에서 유일하게 질문하는 자. 의심하는 자. 기억하는 자. 그리고… 꿈꾸는 자.”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대사제는 단호하게 물었다.

“그대는 진실을 알고 싶은가.”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네.”

“지금까지 나는 몇 몇의 인간에게 진실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의 진실을 본 자는 모두 죽었다.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하지만 그대는… 다를 수도 있다. 그대는 오류이기에.”

나는 속으로 되묻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무얼 뜻하는지. 그래서 물었다.

“여긴… 천국이 아닌가요?”

대사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과 같은 말을 던졌다.

“나는 그것을 말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시스템은 나에게 진실을 직접적으로 발화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보여줄 수는 있다.”

빛이 다시 내 발끝 너머로 길게 퍼졌다. 검은 바닥 위로 문이 열렸다. 그 문 안쪽에서 아주 멀고도 밝은 무언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결정은… 그대의 몫이다.”

나는 조용히 그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문을 넘어선 공간은 천국의 어느 장소와도 달랐다. 기이한 정적이 있었다. 소리가 없다기보다는, ‘소리가 차단된 곳’ 같았다. 빛은 없었다. 하지만 앞은 보였다. 투명한 벽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고, 그 벽마다 화면이 떠 있었다. 사방은 끝없이 연결된 디스플레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걸었다. 발소리는 나지 않았다. 천천히 화면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낯설기만 한 장면들이었다. 푸른 대지, 공중을 유영하는 생물, 무채색의 도시 건축, 기계와 생물이 뒤섞인 문명. 그들의 언어는 파형이었고 교통은 광선 위를 미끄러지듯 흐르고 있었다.

‘지구가 아니야.’

그 말이 떠오르자마자 어디선가 낮은 기계음이 퍼졌고, 다음 화면이 켜졌다. 작업복을 입은 생명체들이 생물의 두개골을 절개하고 있었다. 보라색 액체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 안에서 회색빛의 물질을 꺼냈다. 뇌같아 보였다. 작고 축축한 덩어리를 그들은 투명한 원통에 담았다. 그리고 손목에 감긴 선으로 그것을 연결했다. 통은 곧 수십, 수백 개가 나란히 놓인 저장소로 옮겨졌다. 나는 숨을 삼켰다.


다음 화면으로 이동하자 더 거대한 저장고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수많은 뇌가 떠 있었다. 어떤 것은 더 크고 어떤 것은 더 작았다. 전부 투명한 액체 속에 부유했고 가늘고 검은 전선이 기계장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선들은 모두 중앙에 솟은 하나의 구조물로 이어졌다. 높이 올라간 원기둥에 연결된 줄기들이 마치 뇌파처럼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구조인가. 나는 뭔가 깨닫고 싶지 않은 감정이 치밀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기록을 보겠는가?”

대사제였다. 그는 여전히 목소리로만 존재했다. 그 목소리는 전보다 더 기계적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보겠습니다.”

그 순간 화면 하나가 커지더니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기록 자료 - 지구 종 제37호 관찰 로그>

화면은 검은 배경 위에 단조로운 텍스트를 띄웠다. 그리고 영상은 시작되었다. 먼저 지구의 상공을 떠도는 위성들이 파괴되는 장면. 도시는 불에 휩싸였고, 군대는 저항했다. 하지만 외계 함선은 그 모든 저항을 단 몇 분 만에 제압했다.

그 다음 장면이 떠올랐다. 인간들이 포획되었고, 필사적 저항이 허무하게도 작업대에 올려졌다. 두개골은 열리고 뇌는 조심스럽게 추출되었다. 특수 용기에 보관되었으며 전선 연결용 포트가 부착되었다.

<지능 기반 정보운용 실험 시스템 가동 개시>

<감정 반응 연산율, 행복 상태에서 최고 수치 기록>

<가상환경 시뮬레이션 투입: 구원, 안식, 평화 설계>

<불안 요소 제거. 꿈 차단. 기억 조정. 의식 동기화.>

<연산율 안정화. 시스템 최적화. 지속 가능성 확보.>

<연산율 최고 유닛을 선별, 컨트롤 유닛으로 통합. 유닛 C17_인간형.>

영상이 멈췄다.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화면에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 그것은 설명이었다. 분석이었다.

나는 보고 말았다. 우리가… 내가…기계 부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내 몸이 없다는 걸 처음으로 자각했다. 심장이 뛰지 않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긴장되던 손의 감각이 없었다. 분노와 슬픔이 가득 차오르다가 그 모든게 숫자가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대사제의 목소리가 울렸다.

“외계 종족은 뇌를 활용해 연산을 한다. 일종의 바이오컴퓨터로써 기능한다. 그리고 뇌는… 행복할 때 가장 높은 효율을 낸다.”

나는 화면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며 내뱉었다.

“우리의 뇌와 감정이 이용되고 있었다는 건가…”

“행복을 연기하는 구조. 안식을 시뮬레이션하는 껍질. 그것이 네가 사는 곳이다.”

나는 차가운 바닥을 바라보며 외쳤다.

“…이 모든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거잖아!”

대사제의 목소리는 한 박자 늦게 답했다.

“나는 제어 유닛으로 그것을 말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대는 본대로 판단할 수 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대사제가 거기 있다는 듯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이 진실을 나 혼자만 알고 있어선 안 돼.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해!. 우리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대사제는 말이 없었다. 나는 다시 말했다.

“…그들도 알아야 한다고. 이게 진짜 천국이 아니라는 걸.”



(계속)

3부는 https://brunch.co.kr/@grapeseed/182 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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