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남은자들 15화

손가락 (3)

단편 소설

by 포도씨

프레스 기계는 하루에도 수백 번, 같은 리듬으로 쇠를 눌렀다. ‘칙-, 꽈악. 칙-, 꽈악.’ 공장의 공기는 뜨겁고 습했다. 기계가 내뿜는 열기, 기름 증기, 사람들의 땀. 천장에 달린 환풍기는 회색 먼지를 날리며 헛도는 것 처럼 보였다. 기름에 젖은 철판들이 한 장씩 투입되고, 프레스 기계는 그 위를 내려쳐 틀에 맞는 형상으로 눌렀다. 금속이 짓눌리는 소리는 날카롭고 묵직했다.


승범은 찬희와 한 조였다. 하나는 투입, 하나는 작동. 승범이 철판을 올리면, 찬희가 기계 버튼을 눌렀다.

그 리듬은 단순했지만, 단조롭지 않았다. 손이 기계보다 느리면 다친다. 손을 빼지 않으면, 짓눌린다. 사장은 아침마다 똑같이 말했다.


“프레스는 손을 자른다. 내가 본 직원만 셋이야. 장갑만 믿지 마. 손가락은 절대 기계보다 느려선 안 돼.”


처음엔 사장의 말이 과장처럼 들렸다. 하지만 기계가 내리찍는 순간을 하루에도 수백 번 보며, 승범은 알게 되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기계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프레스 기계가 위로 올라갈 때마다, 승범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이 저릿해졌다. 마치 자기 손이 눌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럴때마다 그는 도윤을 떠올렸다. 누워 있는 친구. 웃으며 노래하던 얼굴. 그리고 연습실. 작은 라면 냄새, 코드들의 춤, 허공에 맴도는 리듬. 그 모든 것을 위해, 그는 철판을 올렸다. 하루 종일.


시간은 끈처럼 늘어졌다. 하루, 이틀, 일주일. 어느새 3주일이 지나고, 이제 약속한 한 달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 3일이 가장 길었다. 피로가 쌓였다. 손톱 밑은 기름때가 깊게 스며들었고, 손목은 밤마다 욱신거렸다. 승범도 찬희도 말이 줄었다. 점심 시간에도, 퇴근길에도. 몸보다 감정이 기름칠 하지 않은 쇠처럼 닳아갔다.


승범은 몸이 무거운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산소가 모자란 듯한 감각같기도 했다. 그러나 작업은 평소처럼 시작됐다. 아침부터 철판이 밀려들었고, 프레스는 쉴 틈 없이 내려쳤다. 점심 무렵, 사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오늘 야근각이다. 물량 못 끝내면 집 갈 생각 마.”


저녁 9시. 밖은 어두웠지만 공장은 밝았다. 늘어선 천장등 아래서, 승범과 찬희를 포함한 많은 직원들이 반복된 업무를 다시 반복했다. 철판은 여전히 줄지 않았다.


“너무 많다, 진짜.”


찬희가 투덜거렸다.


“오늘 몇 장이나 했는지 기억도 안 나.”


승범은 대답 대신 철판을 맞잡았다. 몸이 무거웠다. 손끝이 느려졌다. 눈이 말라 있었다. 기계는 일정한 소리로 작동했다. 칙-, 꽈악. 칙-, 꽈악.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찬희가 땀을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야 나 누른다! 아, 이제 몇 개 남았더라…”


그 사이, 승범은 그만 잠깐 눈을 감았다. 그건 졸음이라기보다, 짧은 정지였다. 승범의 왼손은 아직 철판 위에 놓여 있었다.


“승범아!”


찬희가 외쳤다. 하지만 그 말은 반 박자 늦었다.


‘꽈악!’


기계가 내려앉았다.


“야!!”


찬희가 소리를 질렀다. 승범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기계 아래, 왼손이 짓눌려 있었다. 중지와 약지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붕괴돼 있었다. 기계에서 넘쳐흐른 피가 바닥을 타고 흘렀다. 잠시 뒤 승범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 순간, 공장 전체가 고요해졌다. 소리도, 열기도, 기름 냄새조차 멈춘 듯했다.





승범은 자기 방 침대에 누워 왼쪽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붕대가 감긴 손끝은 뭉툭했고, 평소보다 이상한 각도로 휘어 있었다. 분명히 ‘있던’ 중지와 약지가, 이제는 없었다. 그 빈자리에서 감각은 사라졌지만, 잊을 수 없는 저릿함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그는 옆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방 한구석, 벽에 기대놓은 기타 가방이 있었다.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 몸처럼 아끼던 그것은, 이제 먼지가 얇게 쌓여있었다. 지퍼는 끝까지 닫히지 않았고, 가방 천 사이로 보이는 헤드의 실루엣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그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손끝을 움직일 때마다, 거기서부터 소리가 흘러나올 것 같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감각조차도 없었다.


책상 위 폰이 조용히 울렸다. 한참을 울리다가 꺼졌다. 찬희였다. 곧이어 메시지가 도착했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세영이 보낸 짧은 안부들이었다.


“잘 지내?”

“괜찮은 거야?”

“아무 말이라도 해줘.”


도윤의 부재중 전화도 두 개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멤버 누구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폰을 엎어두었다. 팀 채팅방은 일주일 전 이후로 멈춰 있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회복 기도할게’라는 세영의 말이었다. 그 이후론 모두 침묵을 지켰다. 공장 아래 연습실의 불은 승범의 부상과 함께 켜지지 않았다.


승범은 다시 손을 바라봤다. 기타를 잡던 손. 그의 리듬을 만들던 손. 그의 세계를 만들어내던 손. 의사는 말했다.


“재건은 어렵습니다. 신경도 끊겼고, 조직 손상도 심해서… 연주 같은 건 어렵겠네요.”


그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기타가 없는 음악. 그는 상상해본 적 없었다. 자신에게 음악은, 늘 기타로 시작하고 기타로 끝났다. 손가락이 없다는 건, 그 문을 여는 열쇠를 영원히 잃은 것이었다. 음악을 하고 싶어서, 그 열쇠를 지키기 위해 피했었던 모든 일들. 칼을 드는 주방, 무거운 이삿짐, 부품을 나르는 공장.

그 모든 회피는 결국, 가장 아끼던 것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는 천천히 몸을 뒤척였다. 작은 숨이 방 안을 헤매다 조용히 가라앉았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아니, 다시 시작할 무언가가 남아 있기는 할까. 그는 기타가 들어 있는 가방을 바라봤다. 어떤 마음으로, 그 지퍼를 다시 열 수 있을까.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울림도 없는 지금. 승범은 여전히 멍하니, 손가락이 없어진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의 날이 흐렸다. 봄이 오려는 듯, 아직 바람엔 겨울이 섞여 있었다. 승범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앉아 있었다. 낡은 후드티에, 한때 하얀색이었을 운동화. 그 운동화를 다시 꺼내 신는 데까지 일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벽에 걸린 외투를 들고 문을 나섰다. 햇빛이 없는 거리, 그러나 사람들의 얼굴은 밝았다.


홍대 거리의 카페에서 세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는 짧아졌고, 귀엔 여전히 실버 링이 달려 있었다.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를 향해 승범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자리에 앉자, 커피가 두 잔 있었다.


“보고 싶었어.”


세영은 담담하게 말했다. 승범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친구들의 소식을 전했다.


“찬희는 지금 회사 다녀.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직장인이야. 도윤이는... 재활 잘 끝냈대. 너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언젠가는 꼭 얼굴 보고 말하고 싶대.”


승범은 커피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옅은 김이 피어오르다 흩어졌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근데 자꾸 그 시절이 생각나. 다시 음악하고 싶어. 그냥... 진심으로 그때가 그리워.”


그 말에 승범은 고개를 들었다. 세영의 눈엔 분명한 그리움이 있었다. 그때, 창 너머에서 기타 소리가 들렸다. 버스킹이었다. 노랫소리는 거리에 흩어지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우리, 다른 데로 갈까?”


세영이 말했다. 하지만 승범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일어선 그는 그쪽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세영도 그를 따라 걸었다. 둘은 말없이 창밖의 버스킹을 바라봤다. 어딘가 어설픈 사운드, 조금 불안한 화음. 하지만 진심이 담긴 소리. 승범은 무의식적으로 왼손을 들어올렸다. 붕대도, 절단 흔적도 없었다. 다만, 없는 손가락을 엄지로 쓰다듬었다. 그 빈자리가 아직도 기억처럼 아렸다. 승범은 세영이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다. 세영은 조금 놀라면서도 천천히 그를 따라 공연장으로 향했다. 둘은 무대 앞에 서서 처음 보는 밴드의 음악을 들었다. 승범은 드러머와 베이시스트, 키보디스트, 보컬을 차례로 바라봤다. 그리고 기타리스트를 오랫동안 지켜봤다.


그날 밤, 승범은 책상 앞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가사를 꺼냈다. 녹음은 서툴렀고, 코드 입력은 느렸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만들었다. 화면에 곡 제목을 적었다. ‘손가락’.


업로드 버튼을 누르기 직전, 잠시 멈췄다. 그 순간, 그는 화면 속 자신의 노래 제목을 다시 바라봤다. 그건 사라진 게 아니었다. 다른 방식으로 남겨진 것 뿐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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