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남은자들 14화

손가락 (2)

단편 소설

by 포도씨

낮의 편의점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햇빛이 유리문을 투과해 바닥에 반사되고, 음료 냉장고에서 나는 콤프레셔 소리만 일정한 리듬으로 공간을 채웠다. 승범은 카운터 안쪽에 앉아 무릎에 올려둔 작은 노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밴드 곡 리스트, 코러스 아이디어, 리프 변형. 이런 메모는 대부분 종이 위에서만 끝났다. 그래도 버릇처럼 뭔가를 적지 않으면 불안했다. 주머니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 폰을 꺼내보니 ‘사장님’ 이름으로 문자가 와 있었다.


“오늘 저녁 급히 대타 필요해요. 오늘은 승범 씨가 좀 부탁해요.”


그 한 줄을 읽고, 천천히 폰을 내려놓았다. 승범은 눈을 감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원래 멤버들이랑 홍대 쪽에 가기로 했었다. 버스킹 장소를 직접 돌아보며 분위기, 사람 흐름, 위치까지 체크하려던 날이었다. 자잘하지만 팀에게 중요한 날이었다. 그는 단체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알바 대타 뜀. 미안. 나 빼고 부탁해.”


‘미안’이라는 말이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도 밴드는 위태로웠다. 모두가 예민한 때였다.


승범은 손가락을 아꼈다. 승범에게 손가락은 목숨같은 거였다. 그래서 웬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밴드가 아무리 돈이 궁해도, 그것만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었다. 한 달 전, 찬희가 용역 공사 인력을 구하는 알바 글을 알려줬을 때도 그랬다.


“시간당 만오천인데? 다칠 일 없어 보이는데.”

“난 좀… 내 손가락은 내 자산이라서.”


승범은 찬희의 딱딱한 표정에 대고 그렇게 말했었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진심이었다. 기타는 몸의 일부였고, 손가락은 그 심장이었다. 식당일은 칼을 써야했다. 음식을 만져야하는 PC방도 패스였다. 공장일도 손을 다칠 우려가 있었다. 이삿짐 센터, 배달대행, 물류센터…이것 저것 부상의 가능성을 제외하고 고른게 편의점이었다. 그러나 편의점 일이란 것도 결코 만만히 볼만한 것은 아니었다.


문득, 계산대 위 투명 아크릴 박스에 꽂힌 커터칼이 눈에 들어왔다. 스티커 정리할 때 쓰는 그것. 그걸 만지다가도, 승범은 늘 잠시 멈췄다. 자른다는 생각자체가 이상하게 기분 나쁘게 여겨졌다. 승범은 커터칼을 꺼내 계산대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 놓았다. 그러곤 뒷주머니에서 손에 익은 기타 피크 하나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워 돌렸다. 그 움직임은 연습실에서보다 훨씬 조심스러웠다.





병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소독약 냄새와 약간 눅눅한 공기가 멤버들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침대 위엔 도윤이 누워 있었다. 왼쪽 팔과 다리는 모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고, 얼굴엔 자잘한 상처와 멍이 퍼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을 보자마자 웃었다.


“왔네. 다들 바빴을 텐데.”


도윤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아니, 애써 그렇게 들리게 하려는 듯했다. 세영이 가장 먼저 다가가 도윤의 옆에 앉았다.


“야, 너 얼굴 왜 이래. 이 정도면 교통사고 레벨 아니야?”

“어, 맞아. 사고야. 연습실 가는 길에, 갑자기 인도에서 개 한마리가 차도로 확 넘어오더라고. 그거 피하려다 중심 잃고 미끄러졌지 뭐.”

“헬멧은 썼던 거지?”


승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그거 안 썼으면, 내가 지금 이렇게 누워있지도 못했지.”


도윤은 천장을 잠깐 바라보다가 다시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운 좋게 큰일은 피했어. 팔은 골절이고, 무릎은 파열이래. 살아있는 걸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다”


찬희가 묵직하게 말을 꺼냈다.


“하나님 타령은. 그래서 병원비는 얼마나 나왔냐.”


도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


“…아직 정확하진 않은데, 입원비랑 수술비까지 하면 천은 넘을 것 같대.”

“보험은?”

“어… 그게…”


도윤이 작게 웃었다.


“사실 나 아직 지역가입자 등록도 못 했어. 실업 상태라서… 건보료도 몇 달 밀렸거든.”


침대 옆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세영이 먼저 말했다.


“야… 근데 우리라도 좀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방법을 찾아보자.”

“방법?”


찬희가 되물었다.


“우리 지금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어. 연습실 월세도 겨우 모으고 있는데… 어떻게?”


도윤은 침대 시트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냐, 됐어. 내가 알아서 해볼게. 너희까지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


그의 표정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눈가는 붉었다.


“그래도 리더가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 우리 밴드, 계속해야지.”


승범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있었고, 안타까웠고, 동시에 걱정됐다. 보육원 출신의 도윤을 도와줄 누군가가 있을까하는 우려와 함께 밴드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계속할 수 있을까. 이 상태로?


한참 후, 병실을 나서는 길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병원 복도를 걸어 나가는 그 순간에도. 밖은 어두워져 있었고, 바람이 생각보다 차가웠다. 지하철역까지 함께 걷던 발걸음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갈라졌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승범은 혼자 남아 이어폰을 꽂으려다 말고 멈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우리 밴드 계속 해야지.’ 도윤의 말이 자꾸 귓속에서 맴돌았다.





치킨집 내부는 기름 냄새와 튀김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환풍기가 쉬지 않고 돌아가는 소리가 천장 위에서 윙윙 울렸고, 좁은 주방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커다란 튀김통 앞에서 닭을 뒤집고 있었고, 어머니는 포장박스를 정리하며 중간중간 전화 주문을 받았다. 승범은 계산대 옆 작은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채 주방 쪽을 바라봤다. 몸이 뜨거웠다. 주방 안의 온도 때문인지, 마음의 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도윤이, 사고가 좀 심각해. 병원비가 꽤 나올 것 같아.”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승범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손을 움직이며 대답했다.


“그래도 너랑은 피도 안 섞였잖니. 네가 거기까지 책임질 일은 아니지.”


말끝이 냉정했다. 아버지가 튀김 집게를 내려놓으며 말을 보탰다.


“요즘 장사도 시원찮아. 배달도 줄고, 재료비도 올랐고. 우리도 버티기 힘들다, 승범아. 너도 앓잔냐.”

“…응. 그냥,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도와주실 수 있나 해서…”


승범은 그 말조차 꺼내며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희망이 완전히 꺼지기 전까지, 한 마디라도 건네고 싶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승범을 바라봤다. 기름 튄 앞치마, 피곤이 묻은 눈빛, 그 안에 담긴 현실.


“너도 이참에 정리 좀 해. 애들도 없고, 걔도 다쳤으면 밴드는 더 못하는거 아니냐? 예전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하라고 몇 번을 말했니. 음악 그만할 때도 됐잖아. 돈도 안되는거.”


그 말은 기름 냄새보다 더 짙게 폐 속으로 파고들었다. 승범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눈을 내리깔고, 손끝으로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무엇을 말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는 설명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말없이 일어난 그는 주방을 돌아 나가 가게 뒷문을 열었다. 바깥 공기는 생각보다 싸늘했다.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였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승범은 단체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저녁, 잠깐만 연습실에서 볼 수 있을까?”


잠시 후, 모두 확인했다는 표시가 떴다. 그날 저녁, 연습실엔 도윤을 제외한 3 명이 모였다. 승범은 도윤 없는 연습실이 어색했다. 평소처럼 기타를 꺼내지도 않고, 한쪽에 앉아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세영은 드럼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스틱을 돌렸다. 찬희는 방음벽 한쪽에 서서 팔짱을 낀 채 거뭇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님한테 말했는데, 도와줄 수 없대.”


승범이 입을 열었다.


“요즘도 장사가 안 된대.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하시더라. 밴드는 이제 그만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래.”


그는 말하는 도중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피했다. 작게 웃으려다 말고 입꼬리를 내렸다.


“근데, 나… 도윤이 그냥 두고 싶지 않아. 우리, 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방법을 찾아보면 안 될까?”


한동안 말이 없던 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지금은 우리가 아니면 누가 도와주겠어.”

“도와준다? 우리가?”


찬희가 시선을 내리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말투는 건조했고, 눈은 무표정했다.


“우리 지금 월세도 못 냈잖아. 그 상황에서 무슨 도움? 그냥 말로 위로해주자는 거야?”


승범은 세영의 눈치를 보다가 다시 찬희를 바라봤다. 찬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승범이, 너는 그동안 알바도 제대로 안 했잖아. 내가 시급 좋은 알바 정보를 물어와도 손가락 다칠까봐 다 거절하고, 편의점 일만 고집했지. 그런데 이제서야 방법을 찾자고?”


공기가 뻑뻑해졌다. 승범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하고 싶은 게 있었지만, 꺼내는 순간 무너질 것 같았다.


“그 얘기, 지금 꼭 해야 돼?”


세영이 찬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도윤이 병원에 누워있는데, 그냥 손 놓고 보자는거야?”


그 순간, 연습실 문이 쾅 하고 열렸다. 모두 고개를 돌렸다. 낯익은 발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공장 사장이 성큼성큼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모자에 기름때가 잔뜩 묻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그는 문을 닫자마자 바닥을 한 번 툭 차더니, 허리를 반쯤 구부려 내부를 둘러봤다.


“야, 뭐야. 살아는 있었네?”


그가 혀를 차듯 말했다.


“요 며칠 불도 안 켜지고, 소리도 안 나길래 월세 안 내고 도망간 줄 알았잖아. 도망갈 거면 열쇠라도 맡겨놓고 가지 그랬냐?”

“어휴, 깜짝이야.”


세영이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사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앰프 위의 먼지를 손으로 훑었다.


“이 상태 봐라. 쓰지도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구만.”


찬희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지금 상황이 좀 안 좋아서… 곧 마련해서 드리겠습니다.”


사장은 여전히 연습실 한복판에 서서 팔짱을 꼈다.


“말만 곧이야. 지난달에도 그 말 하지 않았나?”


그때 승범이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사장님… 그게, 우리 리더가, 도윤이가요. 오토바이 사고가 났어요. 지금 수술해야 돼요.”


사장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모든 농담기와 짜증이 잠깐 사라진 순간이었다.


“…많이 다쳤데?”

“예. 팔, 다리 둘 다 골절이고, 무릎 인대도 나갔다고 해요. 수술비도 꽤 많이 나온대요.”


사장은 승범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서?”


승범은 사장이 도윤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에 놀라면서도 말을 이었다.


“…혹시, 공장에서 사람 구하거나, 주변에서 시급 좀 많이 주는 일자리 아는 거 없으세요? 뭐든 할 수 있어요. 좀 힘들어도 돼요. 시간 오래 걸려도 괜찮아요. 그 병원비라도 모을 수 있다면…”


사장은 입을 다문 채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주부터 물량이 몰렸어. 주문이 한꺼번에 들어와서…야근도 해야 하고, 주말도 반납해야 될 판이야. 남자애들은 프레스 쪽에 넣을 수 있고, 여자애는 사무 보조로 써보지 뭐. 어때?”


모두 사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익숙한 듯 낯설게 보였다. 불만을 늘어놓던 사람이 아니라, 뜻밖의 제안을 내미는 얼굴이었다.


“한 달만, 진짜 딱 한 달만 도와주면 된다. 그러면 그 친구 병원비는 내가 해결해주마.”


그 말에 연습실 안은 얼어붙은 듯 정적에 잠겼다.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서로의 눈을 한 번씩 마주쳤다. 승범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세영이, 마지막으로 찬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이면… 되는 거죠?”


찬희가 나직하게 되물었다. 사장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한 달.”


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 연습실 문을 열고 나갔다. 닫히는 문 너머로 복도 형광등이 깜빡였다.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전과 달랐다. 체념이 아니라, 무언가를 감내하기로 한 사람들 사이의 조용한 연대였다.



(계속)


3부는 https://brunch.co.kr/@grapeseed/179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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