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문을 열자마자, 부서 안쪽에서 작게 대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그게 진짜야?”
“아니 근데, 왜 굳이…”
“쉿, 온다.”
내가 들어서는 걸 본 누군가가 가볍게 툭 쳤고, 그 순간 대화는 뚝 끊겼다.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에 앉았고, 모니터를 보는 척, 메모를 하는 척, 고개를 숙인 채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제자리에 앉았다. 책상을 정리하는 척하면서 주변을 흘끔 둘러보았다.
누군가의 시선이 있는 것 같았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낯선 공기가 감돌았다. 등 뒤로 의자 기대는 소리, 살짝 들리는 한숨, 그리고 나를 지나가는 시선들.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고, 나는 사내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익명 게시판 상단에 ‘NEW’ 마크가 박힌 글이 하나 떠 있었다. 제목은 짧았다. “혼자만 옳은 줄 아는 사람들” 나는 마우스를 올렸다. 커서를 몇 초간 멈춘 뒤, 클릭하지 않은 채 화면을 바라보았다. 잠시 심호흡 한 뒤에 글을 열었다.
“얼마 전에 A씨가 홍보회 열었던 거 기억나시죠? 그 자리에 딱 한 명 있었다던데. 그 B씨, 요즘 자주 A씨랑 보이던데요? 슬슬 프로젝트 참여할 기세던데요? 이사 준비해야 하나요, 진짜 ㅋㅋㅋ”
딱딱한 농담이었지만, 글 속엔 조롱의 습기가 배어 있었다. 댓글이 주르륵 달려 있었다.
“와, 진짜 그럴지도…”
“B씨도 뭐 대단한 줄 아나 봐요.”
“또 한 명 생기면 진짜 팀 전체 분위기 망가지는 거 시간 문제지.”
“아니 뭐 정의감으로 승진 하나?”
“에이씨에 이어 비씨 ㅋㅋㅋ 다음은 누구?”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댓글은 계속해서 올라왔다. 더는 ‘A씨’를 비난하지 않았다. 모든 방향이 ‘B씨’를 향해 있었다. 내가 그 B씨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 하나하나가 나를 통과해 살갗에 와닿았다. 키보드 위에 올려놓았던 손이 식어갔다. 나는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다, 천천히 모니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은 곧 어두워졌고, 사무실의 형광등 불빛만이 내 얼굴을 비췄다. 모니터에 비친 내 표정은, 전혀 놀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아주 조용히 뭔가를 버텨내고 있는 사람같을 뿐이었다.
금요일 저녁이었다. 퇴근 인파에 섞이지 않기 위해 조금 늦게 나왔지만, 사무실 건물 밖은 여전히 퇴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주차장으로 향하다가, 문득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의 충동이었다. 차 문을 지나쳐 길로 나섰다. 어둠 속, 거리의 불빛들이 희미하게 길을 따라 이어졌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회사 근처를 크게 한 바퀴 도는 셈이 되었다. 그러던 중, 인적 드문 골목 어귀에서 이상하게 꺼진 도로를 발견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아스팔트는 움푹 파여 있었다. 사람이라면 충분히 발을 헛디딜 만했고, 작은 타이어라면 찢어질 법했다.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다 다시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은 늦은 밤이었다. 신고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 또 주말 동안 처리되지도 않을 것이고, 어쩌면 다음 주 월요일까지 그대로 방치될 수도 있을 터였다. 나는 잠시 그 곳을 바라보다가 길을 걷기 시작했다.
꺼진 아스팔트보다도 머릿속에서 정리해야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프로젝트 참여 문제였다. 민정의 눈물도, 사무실 복도에서의 정적도, ‘B씨’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후 이어지는 시선과 공기의 밀도도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나아갔다. 가로수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왠지 더 차갑게 느껴졌다.
지금 내가 여기서 벗어나 지방으로 가면 어떻게 될까. 나는 월세로 혼자 살고 있었다. 굳이 집을 정리할 것도 없었다. 지방으로 이사한다고 해서 잃을 것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직장에 크게 애정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생각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문제는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다.’
사무실 사람들이 떠올랐다. 대부분은 자가나 전세로 집을 가지고 있었고, 아이가 있는 동료도 많았다. 어느 부장은 곧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딸이 있다고 했고, 누구는 아내가 병원 진료 때문에 매주 서울 시내를 돌고 있다고 했다. 지방으로 옮긴다는 건, 그들의 삶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일이었다. 지방엔 큰 병원이 별로 없고, 아이를 보낼 학원도 기준에 못 미칠 것이고, 대중교통도 한정적이다. 문화시설도 거의 없다. 그곳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단순히 환경이 나쁘다는 것을 넘어서 고립과 단절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그런 사람들까지 움직이게 될 수도 있는 거잖아.’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선의로 한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위협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누구에게 강요한 적도 없고, 단지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은 입장이었지만, 사회라는 건 결국 그런 식으로 흐름을 만들어내는 법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민정의 얼굴이 떠올랐다. 회의실에서 홀로 서 있던 모습. 발표를 마치고 조용히 인사하던 목소리. 게시판의 비웃음 속에서 붉어졌던 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어버렸다.
"나는… 그렇게까지 하긴 좀 그렇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나는 누구도 구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옳고 그름을 알아보는 감각은 있었지만, 실천의 자리에는 늘 한 발 물러서 있었다. 민정의 기대가 부담으로 느껴졌던 순간부터, 사실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벤치에서 일어났다.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시 주차장 쪽으로 걸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고, 밤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나의 결정은 고요했지만 단단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단순했다.
민정 씨, 고민해봤는데 이번 프로젝트에는 함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 여러 번 읽어봤지만 말투를 바꾸지는 않았다. ‘함께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은, 어쩌면 함께하고 싶었던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마저 나를 위한 위로 같아 보여 그대로 두었다.
메일에 읽음 표시가 떠있었음에도 민정에게서는 아무런 답장이 오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고, 나는 다시 루틴대로 출근하고, 회의하고, 식사를 하고,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익명 게시판에 접속했을 때, 상단에 새 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제목은 이랬다.
“A씨 퇴사했다는 얘기 들음?”
심장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손끝이 약간 떨렸다. 글을 열자, 짧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프로젝트 하던 A씨 말이야. 결국 퇴사했다던데? B씨가 이어받으려나?”
나는 스크롤을 내리며 댓글을 읽었다.
“와 진짜? 결국 그렇게 됐네.”
“버티기 힘들었을 거 같음.”
“그래서 괜히 들쑤셔봤자 남는 거 없다는 거지.”
“B씨가 이어받으면 또 시끄러워지겠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댓글을 달았다.
“B씨는 참여 안 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내가 쓴 그 짧은 문장이 실시간으로 화면에 반영되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또 다른 댓글들이 줄지어 붙었다.
“잘 됐네. 다들 피곤했잖아.”
“그러니까 자신 없으면 나서질 말아야지.”
“진짜 정의감도 적당히 해야지. 피해주는 건 답 없음.”
모니터를 바라보는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무표정이었을까, 약간은 웃고 있었을까, 혹은 아무 감정도 없는 그저 지친 표정이었을까. 나는 댓글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인터넷 창을 꺼버렸다. 마우스를 천천히 내려두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민정을 떠올렸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견뎠을까. 아무도 오지 않는 회의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프로젝트, 자신을 짓누르는 눈초리와 조롱, 그리고 회사의 묵묵한 방관까지. 그런 걸 모두 감내하면서도, 끝까지 말하고, 끝까지 서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떠났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민정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못했다. 아무것도 건네지 못한 채, 그저 비난을 피하기 위해 댓글이나 달았다.
그녀는 정말 잘못한 걸까. 이 모든 일을 겪을 만큼. 이토록 많은 사람에게 조롱받고, 침묵으로 퇴장해야 할 만큼.
그리고 나는… 나는 정말 아무 책임이 없을까. 생각이 점점 멀어졌다. 모니터는 꺼져 있었고, 사무실의 공기는 여전히 차분했다. 밖은 아직 밝았고, 사람들은 점심 식사 얘기를 하고 있었고, 어디선가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저, 조금 피곤해져버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