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며칠 뒤, 출근해 사내 커뮤니티를 열자 가장 위에 고정돼 있던 공지의 형식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공동체 회복 프로젝트 - 1차 참여자 모집 공지>
그 아래, 전에는 분명히 적혀 있던 문구가 눈에 띄지 않았다. 현재 참여자 없음. 그게 사라져 있었다. 작은 변화였다. 글자 몇 개가 빠졌을 뿐인데도 어딘가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스크롤을 내려보니 익명 게시판에 방금 올라온 새 글이 있었다.
“어 그거 혹시 누가 지원한 거 아닌가요?”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댓글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진짜? 누가요?”
“ㄹㅇ? 참여자 없던데 언제 바뀜?”
“실명은 당연히 안 뜨지. 근데 공지에서 ‘없음’ 빠진 거 보면 뭔가 있긴 한 듯.”
나는 무심하게 화면을 내리며 그 흐름을 따라갔다. 직접적으로 누가 누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게시판의 공기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기존의 비난이나 조롱은 없었다. 대신 조심스러운 추측과 궁금증이 자리를 대신했다. ‘진짜 누가 신청했을까?’,‘설마 우리 부서?’,‘지방이 고향인 사람인가?’ 같은. 별것 아닌 글과 댓글 사이를 넘기면서도, 손가락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날 오후, 프린터 옆 커피머신 근처에서 부서 동료 둘이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나는 물을 따라 마시려다 자연스럽게 그 옆에 서게 되었다.
“들었어? 옆 부서 민정 씨가 신청했다더라.”
“아, 진짜로?”
“응. 확정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쪽 파트 사람들이 그런 얘기 하던데?”
“와… 그 사람 진짜 대단하네. 뭐랄까, 정의감이랄까. 근데 어쩌려고 저러지…?”
“본가가 지방이라던데? 혹시 그냥 집 근처 가려고 그런 건가?”
“그런 거 아닐걸. 민정 씨 성격 보면 진짜 믿고 한 것 아닐까?”
나도 모르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 사람은 조금 당황하면서도 내 얘기를 듣기 위해 돌아섰다.
“뭐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냥 바로 움직이는 스타일이잖아.”
두 사람은 말끝을 흐리며 커피를 들고 돌아섰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민정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 이름이 마음속에서 작게 울렸다. 그녀가 정말 참여했다면, 예상 밖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할 수 있다고 해서 감탄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역시 대단하네…’ 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잠시 멈춰 섰던 손끝이 다시 컵을 감쌌다. 한 모금의 미지근한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그녀는 정말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며칠 후, 익명 게시판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공동체 프로젝트에 참여한 분… A씨라고 할게요. 정말 대단하신 것 같긴 한데요. 그분 때문에 조용하던 분위기 괜히 뒤숭숭해진 건 저만 그런가요?”
비난이라기엔 조심스러운 말투였지만, 그 말투가 오히려 더 불편하게 다가왔다. 댓글이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ㅇㅇ 맞음. 애매하게 사람 피곤하게 함.”
“근데 왜 굳이 신청했을까?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거 아님?”
“불편 감수하는 거야 멋진데, 그 불편이 왜 우리 몫이 되는지 모르겠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댓글을 달았다.
“그래도 그런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은 멋진 거 아닌가요?”
짧은 문장이었다. 그걸 쓰고 나서 괜히 긴장됐다. 잠시 후, 반응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멋진 건 멋진 거고, 피해 주는 건 피해 주는 거지.”
“감수하고 싶으면 혼자 감수하지 왜 팀 전체를 들쑤셔?”
“정의감 과잉에 주변은 피멍듬ㅋ”
댓글 수는 금세 두 자릿수를 넘었다. 나를 향한 직접적인 반박은 점점 거칠어졌고, ‘A씨’라는 인물은 점점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갔다.
“혼자만 옳은 줄 아는 사람”, “회사생활 힘들게 하는 사람”, “실적보다 명분 챙기는 타입”…
며칠 뒤, 원글은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다. 하지만 ‘A씨’라는 이니셜은 남았고, 다른 글들에 슬쩍슬쩍 끼워 넣어진 채로 살아 있었다.
“우리 팀은 A씨 같은 사람 없었으면…”
“다들 생각은 있어도 굳이 티 안 내는 건 이유가 있죠.”
나는 다시는 댓글을 달지 않았다. 대신 그 글들을 조용히 읽고, 창을 닫았다. 마우스를 천천히 움직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쓰디쓴 맛이 입 안에 오래 남았다.
민정이 사내 프로젝트의 실질적 책임자로 지정된 건, 지원자가 그녀 하나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사팀과 관리자들은 고민 끝에 그녀를 주축으로 홍보를 시작해보자고 결정했다. 문제는, 그 결정에 앞장선 인사위원 중 한 명이 과거 회식 자리일로 민정이 문제 삼았던 바로 그 부장이었다는 점이다. 민정은 사실상 기존 업무에서 배제되었다. 그 대신, 공동체 회복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사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홍보 자료를 전달하고, 부서별 설명회를 요청하고, 프로젝트 설명회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녀는 매일 사내 이부서 저부서를 돌며 고개를 숙이고 부탁을 했다. 대부분은 업무가 바쁘다며 회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고 말했고, 어떤 곳은 아예 회신조차 하지 않았다.
홍보회는 금요일 오후 4시로 잡혔다. 사내 게시판 공지사항 탭 가장 아래, ‘기타 행사’로 분류된 글이 그것이었다. 프로젝트의 핵심 방향과 참여 방법, 예상 효과를 설명하는 자리. 민정은 그걸 며칠 동안 준비했을 것이다. 나는 참석 여부를 두고 며칠을 갈팡질팡했다. 공지 글을 본 순간부터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민정이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래도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괜히 나섰다가, 괜히 눈에 띄는 게 싫었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불편함이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그날 오후가 되어서, 나는 결국 홍보회가 열린다는 회의실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방 안에 나 혼자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민정은 혼자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정면에 걸린 스크린에는 발표 자료 첫 장이 떠 있었다. “지방 공동체 회복을 위한 기업 참여 방안”. 민정은 내 모습을 보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어… 선배 와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눈가가 붉게 물든 것이 보였다.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했고, 나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손을 모았다.
민정은 발표를 시작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또렷했다. 도심 과밀화, 지방 공동체 붕괴, 출산율 저하, 부동산 정책, 그리고 기업이 할 수 있는 역할. 이미 여러 기사에서 보았던 내용이지만, 민정이 말하니 다르게 들렸다. 그건 책에서 외운 문장이 아니라, 민정이 직접 살아낸 감정 같았다. 홍보회는 삼십 분 만에 끝났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민정은 나를 따라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진심이에요.”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였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실을 나와 휴대폰을 켰을 때, 익명 게시판에 새 글이 올라와 있었다.
“A씨 발표회라는데 사람 1명 왔다며 ㅋㅋㅋ”
“진짜 민망했겠다. 강의가 아니라 독백이었겠네 ㅋㅋㅋ”
댓글 수는 빠르게 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다, 조용히 창을 닫았다. 회의실에서 그녀가 잠시 보였던 붉은 눈가가 자꾸 떠올랐다. 그 장면은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뒤, 오후 늦게였다. 나는 팀 보고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모니터를 응시하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고개를 들자, 민정이 서 있었다. 표정은 차분했지만 눈가엔 피곤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잠깐만 따라와 주세요.”
주변에서 몇몇 동료들이 우리를 슬쩍 쳐다봤다. 나는 그런 시선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따라 복도를 지나 민정의 사무실로 향했다. 문이 닫히자, 민정은 잠시 망설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배, 이 프로젝트… 함께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 말에 나는 예상했던 무게가 실제로 다가오는 기분을 느꼈다. 민정은 책상 끝에 가볍게 기대어 섰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선배라면 언젠가 와줄 거라 생각했어요. 아무도 안 올 줄은 알았는데… 선배는 아닐 거라고 믿었거든요. 선배는 잘 못된 걸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잖아요. 선배는… 말만 하지 않고,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잖아요.”
그 말이 가슴 안쪽을 쿡 찔렀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시선을 피했다. 민정은 말을 잇지 못하고 한동안 입술을 깨물더니, 끝내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솔직히 무서워요. 제가 뭘 믿고 이걸 시작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녀의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 나는 입을 떼려다, 고개를 살짝 저었다.
“조금만… 고민해볼게.”
민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사무실 안은 조용했고, 어딘가 서늘했다.
(계속)
3부는 https://brunch.co.kr/@grapeseed/175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