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연습실 문을 여는 순간, 낡은 문틀이 삐걱하고 울렸다. 구로 공장지대 안쪽 골목에 숨어 있는 지하 연습실. 공장 퇴근 시간이 막 지나고, 허연 형광등 불빛이 콘크리트 벽을 어지럽게 때리고 있었다. 방음재는 군데군데 찢겨 있었다. 스펀지처럼 붙인 검은 흡음재는 먼지에 절어 푸석거렸고, 천장 위에는 덕트가 덜렁대며 철근 소리를 냈다. 어디선가 김치찌개 냄새와 먼지 섞인 기름 냄새가 함께 떠돌았다. ‘이 냄새만 맡아도 집에 온 기분이 들다니’ 하고 승범은 쓰게 웃었다.
“오늘 뭐부터 할까?”
도윤이 연습실 한복판에 서서 말했다. 세영은 드럼 스틱을 바닥에 툭툭 치며 말했다.
“차라리 <깊은 밤>부터 가자. 요즘 그 곡 제일 오래 안 만진 것 같아.”
“그래.”
승범은 기타를 꺼내고, 찬희는 무표정하게 베이스를 어깨에 둘렀다. 준비는 익숙하게 이루어졌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각자의 자리에 섰고, 숨을 모았다. 합주가 시작되었다. 도윤의 목소리에는 충분한 힘이 있었고, 찬희의 베이스는 부드러우면서 다른 음들을 연결시켜줬다. 세영은 밴드의 중심을 잡아줬고, 승범은 기타 솔로를 맛깔나게 넣었다. 그러나 뭔가 부족했다. 두 번째 합주도,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잠깐만.”
도윤이 연주를 멈췄다.
“뭔가 기분이 안나는데.”
“왤까.”
찬희가 툭 던졌다.
“그냥 이 곡은 당분간 빼자.”
세영이 입술을 꾹 다물더니 조용히 물을 마셨다. 승범은 기타 넥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기타 소리, 드럼 소리, 목소리… 그게 끝이었다. 그것만으로 밴드 사운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린 반쪽짜리야.”
찬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멤버 둘 빠진 거 생각보다 너무 커.”
순간, 연습실 문이 벌컥 열렸다. 중년 남자, 건물 1층 공장의 사장이 얼굴을 내밀었다.
“야, 거기 또 시작이야? 맨날 시끄럽게 뭐 하는 거야? 오밤중에 드럼 치지 말랬지?”
“죄송합니다, 사장님. 오늘은 곧 끝낼게요.”
도윤이 황급히 앞으로 나섰다.
“맨날 끝낸다면서 한 시간씩 더 하잖아. 나 납기 밀려서 집에도 못가고 골치 아픈데, 머리 아파 죽겠어! 으이구, 내가 세를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월세도 제대로 못내는 애들을.”
사장은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나갔다. 복도 형광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정적이 길게 흘렀다.
“우리, 조금만 쉬자.”
세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은 연습실 안에서, 다들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앰프에 얹힌 라면 봉지, 벽 구석에 구겨진 코드 선, 청소기를 대신한 빗자루. 방 안은 더 이상 ‘꿈을 꾸는 공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냥, 싸구려 작업실 같았다.
“진짜,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찬희가 갑자기 말했다. 눈빛이 날카로웠다.
“지금 우리 회비 모자라서 월세 못 냈고, 2층 사장한테도 민원 들어왔고. 전 멤버 둘은 연락도 안 돼.
이거, 그냥 멤버 빠진 문제가 아니야.”
“나도 알아.”
도윤이 조용히 대답했다.
“솔직히 이 상태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 연습은 매번 공허하고, 공연은 없고. 우리… 그냥 꿈만 꾸고 있는 거 아냐?”
“찬희야…”
세영이 낮게 불렀다.
“아니, 나 진짜 걱정돼서 그래. 나 이제 알바도 못 구하겠어. 연습이다 알바다 하면서 면접도 놓쳤고, 부모님은 음악 그만두고 취업하래. 나도 우리 팀은 좋지만, 이렇게는 못 가.”
말은 거칠었지만,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 말 속에 각자의 상황이 떠올랐다. 승범은 기타 넥을 쥔 손에 살짝 힘을 줬다. 하지만 줄은 튕기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래도…”
도윤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 이 팀 계속 가야 하지 않을까? 나도, 너희도 음악 없이 못 살잖아.”
“열정만으론 못 버텨. 그건 다 알잖아.”
찬희가 대답했다. 잠시, 침묵. 세영이 작게 웃었다.
“…아, 근데 말 많아지면 연습 안 하게 되는 거 알지?”
그 말에 도윤이 웃음을 터뜨렸고, 찬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승범은 그들을 조용히 바라봤다. 소리도 부족했고, 현실은 더없이 버거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아직은…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습답지 않은 연습이 이어졌다. 그러다 곡이 끝났고, 자연스럽게 정적이 찾아왔다. 누군가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기 전에는 연습이 계속될 것 같지 않았다. 그때, 세영이 승범의 팔을 가볍게 툭 건드렸다. 눈빛으로만 말하며 입술을 살짝 움직였다.
“한 대 피러 갈래?”
승범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담배 피우고 올게.”
그는 기타를 벽에 기대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윤은 페트병을 만지작거리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래, 다녀와.”
교회에서 노래를 배워온 도윤은 지금까지 신실한 신자였고, 담배는 손대지 않았다. 찬희는 그 타이밍에 전화를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
“네, 여보세요? 네. 맞습니다. 그날… 오후 세 시요? 네, 알겠습니다.”
그 목소리는 연습실을 빠져나가며 점점 작아졌다. 두 사람이 지하에서 올라오자 밖은 어두워져 있었고, 공장 뒷골목엔 반쯤 꺼진 가로등 하나만이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세영은 담배를 입에 물며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승범은 마른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였다. 세영이 라이터를 건넸다.
“고마워.”
불을 붙이고 첫 모금을 들이켰을 때, 승범은 오늘 처음으로 숨을 쉬는 느낌이 들었다. 연습실 안의 무거운 공기가 아닌, 바깥의 낡고 텁텁한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그 텁텁함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지금 어때?”
세영이 물었다. 담배 연기 사이로 나온 목소리는 조용했다. 승범은 대답 없이 입에 문 담배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도윤이도 열심히 하고 있고… 나도 좀 더 힘내야지.”
그 말에 세영이 작게 웃었다.
“오- 모범생.”
“너는 어때?”
세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 나는 아직 버틸만해. 그리고 우리 음악이 좋아.”
장난처럼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에는 묘한 단단함이 섞여 있었다. 그 순간, 옆쪽 계단 아래서 찬희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네, 네. 감사합니다. 네. 꼭 갈게요.”
그는 전화를 끊고 다시 골목을 돌아 연습실로 향하고 있었다. 승범이 담배를 한 번 더 깊게 빨고 찬희를 바라봤다.
“무슨 전화였어? 물어봐도 돼?”
찬희는 잠시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짧게 말했다.
“면접 일정 잡혔어. 이번 주 금요일, 오후 세 시.”
“오…”
찬희는 승범 옆을 지나며, 담배 연기를 피해 손으로 휘저었다.
“얼른 들어와. 아직 한 곡 남았잖아.”
그 말과 함께 그는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세영과 승범은 서서 자리를 지켰다. 아무런 말도 없이.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가 필터마저 태울 때까지. 세영이 승범의 어깨를 가볍게 두 번 치고야 둘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속)
2부는 https://brunch.co.kr/@grapeseed/178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