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커피가 맛이 없었다. 원두가 나빴다거나 아르바이트생이 실수를 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휴일 오후, 기울어지는 햇빛이 창가로 들어오는 적당한 카페에 앉아서 그저 약간의 느긋함을 즐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옆자리의 아주머니들은 점점 목소리가 커지더니 카페인 대신 내 머릿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게 실례인 줄도 모르는 거다.
“우리 집 앞 도로가 좀 꺼졌어. 싱크홀 되는 거 아냐?”
“헐, 구청에 신고해봐야겠다.”
“내가? 몰라. 누가 하겠지 뭐.”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누군가는 하겠지.’ 그 익숙한 문장이 마음속에 박혔다. 창밖을 보니 도로 위로 사람들과 차가 분주히 흘러가고 있었다. 꺼진 도로도, 꺼지는 사회도, 아무 일 없이 굴러간다는 듯이.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기가 막힌다. 무책임하면서도 태연하다. 책임은 언제나 타인의 몫이고, 자신은 그저 불편한 현실의 피해자인 척한다. 누군가의 헌신으로 자신의 안락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고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알아서 기뻐할지도 몰랐다.
뉴스 앱을 열었다. 가장 위에 걸린 기사는 이랬다. <합계출산율 0.59… 정부, 국가 생존 위기 공식 선언> 그 아래에는 관련 기사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출산 연계 임대료 상한제 도입’, ‘지방 이주 가정 세제 혜택’, ‘재택근무 확산 및 지역 공동체 재구성 방안’, ‘2채 이상 부동산 소유자에 대해 90% 부동산세 부여’ 등. 정부는 위기의식을 퍼뜨리기 위해 온갖 수치를 꺼내 들고 있었다. 미래 사회는 유지 자체가 어렵다는 위협. 지방 소멸, 교육 붕괴, 노인 비율 50% 돌파… 숫자만 봐도 압도당할 것 같았다. 그리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서울은 그런 변화가 잘 체감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주차 자리는 없었고, 아이도 많았다. 소아과에는 사람이 넘쳐서 오픈런을 해도 1시간 대기가 기본이라고 했다. 지방은 텅 비어간다는데, 서울은 붐볐다. 아이 울음소리는 들렸고, 지하철은 평일에도 꽉 찼다. 모순은 너무 익숙하면 현실이 된다. 이 도시엔 위기의 체감 대신 과밀의 짜증만 남아 있었다.
2채 이상 보유자에게 세금 90%를 매긴다 해도, 부자들은 방법을 찾아낼 거였다. 늘 그래왔고, 그래서 그들은 부자였다. 결국 고통은 언제나 어중간한 사람들이 떠안는다. 그런 현실은 기사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댓글을 열었다.
“다 망해가는 나라에서 애를 왜 낳냐.”
“시골 보내고 세금 걷겠단 얘기네, 미쳤다 진짜.”
“내 집도 못 사는 세상에 공동체 타령은 사치지.”
“나라가 공산당이냐! 빨갱이 새끼들.”
저런 댓글들을 보면 실소가 나올 때도 있다. 지금 이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들 이렇게 쉽게 냉소할 수 있을까. 어느새 아주머니들은 자리를 빠져나가 있었다. 커피는 다 식었고, 손끝에 감도는 쓴맛만이 남아 있었다.
출근 후,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자마자 루틴터럼 사내 커뮤니티를 열었다. 상단에 고정된 공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공동체 회복 프로젝트 - 1차 참여자 모집 공지>
지방 정착 가정 세제 감면, 공동주택 보조금, 출산 연계 복지 확대, 재택 기반 탄소 절감형 근무제, 지역 순환형 부서 배치 시범 운영…
한참 읽다 말고, 나는 모니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요즘 회사는 이쪽에 꽤 진심이었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정부가 이 프로젝트를 ‘국가 생존 전략’이라 선언한 이후, 정책에 발맞춰 협조한 기업에게 세금 감면과 대외 인증을 몰아주고, 필요하다면 국가 소유 토지를 지원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물론 그 진심은 회사 입장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직원들 입장에선 그리 달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1차 참여 인원이 일정 수 이상 모이면, 지방 거점 오피스를 개소하고, 그 이후엔 전체 사옥 이전도 검토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미 일부 부서엔 비공식 전출 명단이 떠돌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공지 하단에는 ‘자율적 참여’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그 아래 “장기적 인사 배치에 고려될 수 있음”이라는 한 줄이 덧붙어 있었다. 요컨대 참여는 자유지만, 안 하면 불이익이 따를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게시판 탭으로 넘어갔다. 기대했던 대로, 이미 난리가 났다.
“공동체 타령은 정부가 할 일이지,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되냐?”
“회사가 이렇게까지 굽신대야 하나? 지방 보내면 진짜 퇴사함.”
“출산? 시골? 공동주택? 이딴 거 하려고 여태 회사 다닌 거 아님.”
“회사보고 NGO 하라는 거냐? 이직 준비해야겠다.”
하나같이 피곤한 말들이었다. 예상 가능한 분노, 반복되는 냉소. 물론 이해는 된다. 누구도 낯선 변화에 기꺼이 손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분명히 낯선 변화였다. 단지 몇 명이 불편해지는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나도 다음 순서일지 모른다”는 위협의 감각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회가 무너진다고. 그러면서도 자기 자리 하나 옮기는 일에는 극도로 민감하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는 기사에 ‘큰일이다’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육아 공동체 구성에 참여하라고 하면 ‘그건 국가가 할 일’이라고 외친다.
나는 게시판을 내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너무 민감하고, 누군가는 너무 둔감하다. 불안을 감지하는 센서는 다들 살아 있지만, 불편을 감수하려는 쪽은 아무도 없다.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 나가면 내 인생 끝이다. 여기서 버티다 죽는 게 낫지.”
그 말에 잠시 손이 멈췄다. 이 사회가 얼마나 위태로운가에 대한 자각은 누구나 하고 있다. 그럼에도 다들 “나 하나쯤은…”이라는 마음으로 버틴다. 변화를 방해하는 건 무지가 아니라,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지닌 피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시판을 닫고 공지문으로 돌아왔다. 참여자는 ‘현재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누구 하나 돌을 맞을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전 회의를 마치고 복도로 나왔을 때, 복도 반대편 끝에서 누군가의 언성이 들렸다. 그렇게 큰 소리가 나는 건 드문 일이었다. 회사 복도에서, 그것도 점심시간도 아닌 평범한 근무 시간에.
“부장님이 술김에 그랬다는 말로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목소리는 여자였고, 정확했다. 떨리거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회의실 문 앞에서 민정이 서 있었다. 그녀의 앞엔, 낯익은 얼굴(민정의 파트장인) 정 과장이 당황한 얼굴로 두 손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민정 씨, 그게 아니고… 이건 그 친구가 괜찮다고 했으니까-”
“‘괜찮다’는 말이 진짜 괜찮다는 뜻이 아니란 건 과장님도 아실 텐데요.”
“그러니까… 우리가 조용히, 원만하게 넘어가자는 거야. 괜히 더 복잡하게 하지 말고.”
사무실 주변이 조용해졌다. 지나가던 직원 몇몇이 슬쩍 고개를 돌렸고, 일부는 발길을 멈췄다. 민정은 굽히지 않았다. 작은 체구였지만, 서 있는 자세는 단단했다.
“그걸 원만하게라고 말하면 안 되죠. 그냥 쉬쉬하자는 거잖아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본 사람들이 있어요. 저도 직접 봤구요. 회식 자리에서 몸에 손댄 게 처음도 아니었잖아요.”
“그러니까… 이번엔 좀 다르게 넘어가 보자는 거지. 우리 부서 상황도 있고…”
정 과장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나는 복도 모서리 너머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나와 민정은 같은 부서는 아니지만, 종종 협업할 일이 있었다. 한 번은 외부 클라이언트와의 PT가 있었고, 이후에 같이 회식을 한 적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엔 민정이 이런 스타일인 줄은 몰랐다. 말수가 적고, 조용히 일 잘하는 후배라는 인상이었다. 그러다 조금씩 회사 생활을 하다보니 아닌건 아니라고, 옳은 건 옳다고 말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물론 저런 단단한 얼굴로 파트장을 상대하며 이의를 제기하는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왜 매번 피해자가 사과하게 만들어야 하죠? 왜 그만두는 쪽이 약자인 거죠? 회사가 이런 식으로 덮으려고 한다면, 저도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그 말은 조금 컸다.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흠칫했지만, 민정은 개의치 않았다. 정 과장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주변을 둘러봤다.
“됐어, 됐고… 일단 회의실로 들어가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그럴 생각 없어요. 제가 오히려 묻고 싶네요. 과장님은 이런 일이 터지면 늘 회의실로 가서 조용히 처리하셨나요?”
순간 정 과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민정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복도를 지나가 버렸다. 그 뒷모습은 가볍지 않았다. 작은 발걸음이었지만, 무게가 있었다.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눈을 마주친 것도, 인사를 건넨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민정의 말이 내게도 향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늘 옳은 말을 했다. 문제는,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 회사에선 ‘위험한 일’로 간주된다는 점이었다. 위험을 무릎쓰고라도 옳은 일을 하려는 민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저런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발전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중에 만나면 격려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회의실 문을 조용히 닫고 돌아섰다. 민정은 멀리 사라져 있었고, 복도는 다시 조용해졌다. 회의실에서는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
2부는 https://brunch.co.kr/@grapeseed/174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