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천국은 늘 같았다. 햇빛은 따뜻했고, 공기는 부드러웠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사람들은 서로에게 미소를 건넸다. 이상할 정도로 다정하게, 또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게. 우리는 구원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곳이 좋았다. 여기서 나는 더이상 두렵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여긴 구원받은 자들의 자리야. 절대자께서 인도하신 거야.”
그 말을 나는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나도 그 말에 익숙해져야 했다. 내가 선택받았다는 것, 그래서 이곳에 있다는 것. 기쁘고 감사한 일이라는 것. 그런데.
나는 가끔 꿈을 꿨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곳에선 아무도 꿈을 꾸지 않았다. 사람들은 잠을 말할 때 ‘평안한 빛 속의 고요’라고 표현했다. 그 말이 딱 어울렸다. 나 역시 그런 잠을 경험해왔다. 몸이 이완되고, 부드러운 바람이 피부를 감싸며, 의식이 천천히 물처럼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꿈도 없고, 어둠도 없고, 기억도 없는 깊은 수면.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 고요의 틈에서 꿈을 꿨다. 자주, 반복적으로, 같은 꿈을.
어두운 방이었다. 벽지 사이사이에 곰팡이 자국이 보였고, 천장에는 불규칙하게 번진 얼룩이 있었다. 가구들은 낡았고, 식탁 위엔 굳은 국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차가운 공기였다. 나는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나는 작았고, 말라 있었고, 소리 내어 울 수 없었다. 어디선가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욕설이 섞인 말들이 벽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목소리는 익숙했고, 혀끝에 술 냄새가 묻어 있었다. 그 순간 미정이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조용히, 말없이. 그리고 내 옷자락을 살며시 잡았다. 그아이는 나보다 두 살 어렸지만, 항상 더 단단했다. 울지 않는 아이. 무서워지면 언제나 나를 안고 있던 아이. 먼저 나를 안는 것은 미정이었지만, 그아이가 있어서 내가 더 안심이 되었다. 엄마와 아빠의 손이 거칠어질수록, 그녀는 더 조용해졌고, 더 나를 꼭 껴안았다. 그날 밤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식탁은 비어 있었고, 밥솥엔 눌은밥만 남아 있었다. 나는 배가 고픈지도 몰랐다. 그저 마음이… 비어 있었다.
그 새벽, 나는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불은 켜지 않았다. 빛이 있으면, 누가 깨면… 실패할 테니까. 나는 가스 밸브를 열었다. 가스렌지 앞에 서서 손잡이를 소리 없이 천천히 돌렸다. ‘쉬익-’ 소리가 낮게 났다. 미세하게 퍼지는 기압의 소리, 가스의 날카로운 냄새, 그것들은 너무 생생했고, 차분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제 곧, 모든 게 끝날 것이었다. 이 고요한 밤도 마지막 밤이 될 터였다. 미정이도… 더는 고통받을 일이 없을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누가 내 옷을 당겼다.
“오빠…”
나는 돌아보지 않아도 그 목소리를 알 수 있었다. 미정이었다. 이불 속에서도 울지 않던 그 아이가
지금은 내 등을 붙잡고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내 옷깃을 꼭 잡고 있었다.
“오빠… 우리… 죽지 말자…”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확고했다.
“행복해져야지…”
그 말은 순간, 나를 무너뜨렸다.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어떤 벽이 깨졌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스파크가 튀었다. 불꽃이 일었다.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몸이 뒤로 당겨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눈이 떠졌다.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는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천장은 익숙한 무늬로 조용히 빛을 흘리고 있었고, 내 옆엔 물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불은 흰색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는 맑았고, 숨쉬기는 편했다.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고, 머리맡의 스피커에선 나직한 목소리가 흘렀다. “평안한 아침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나는 침대 위에 앉아 멍하니 두 손을 바라보았다. 꿈은 아직 내 몸에 남아 있었다. 손끝에 가스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았고, 옷깃 어딘가에 미정의 손이 닿은 듯한 감각이 있었다.
이건…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기억이었다. 그날 우리는 죽지 않았다. 미정은 날 말렸고, 우리 둘은 부둥켜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꿈 속에서 나는 미정을 죽이고 또 죽였다. 이것은 내 안에 남은 어떤… 죄의 그림자일까. 나는 이곳이 천국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이곳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나는 그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왜 나는 이 꿈을 반복해서 꾸고 있는 걸까? 왜 나만 꿈을 꾸는 걸까? 모두가 그저 고요한 잠에 들고, 빛 속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는데. 왜 나는 그 밤으로 계속 돌아가는 걸까? 왜 아직도 그날의 미정이 목소리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걸까?
아니, 내가 해야하는 진짜 질문은 이것이어야 했다. 왜 미정이는 천국에 없고, 나는 천국에 있는 것인가.
아침은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시작됐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동으로 눈을 떴고, 정해진 시간에 옷을 갈아입었으며, 정해진 길을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밝고 깨끗했다. 마치 아무런 먼지도 허락되지 않는 공간처럼, 흰색 식탁이 줄지어 놓여 있고, 창밖으로는 햇살이 일정한 각도로 비췄다. 테이블 위에는 김이 부드럽게 올라오는 밥과 반찬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식기들은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고, 모두가 같은 그릇에, 같은 모양의 숟가락을 들고, 조용히 음식을 떠먹었다.
“이 밥… 오늘은 우리 할머니가 해주시던 맛이 나요.”
내 맞은편 테이블에서 들려온 말이었다. 여자아이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정직했다.
“우리 할머니는 정말 좋으신 분이셨는데… 안타깝게 이곳엔 오시지 못했어요.”
그 아이의 눈빛에는 잠깐의 슬픔이 스쳤지만, 그 감정은 이내 옆사람의 말에 묻혔다.
“그분의 죄도 절대자께서 알고 계셔요. 구원받기 합당한 사람이 아니었던 거죠. 과거의 일은 안타깝지만, 당신의 구원을 함께 기뻐합시다.”
아이의 표정이 조금 무너지는 듯하다가 다시 미소로 고쳐졌다. 그 미소는 천천히 돌아오는 햇살과 닮아 있었다. 눈부시고 따뜻하지만… 어딘가 너무 조용했다.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밥은 부드러웠고, 입안에 퍼지는 향기는 고소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런데 미정이 생각이 났다. 그 아이는 이런 맛을 알았을까? 이 햇살을, 이 식탁의 따뜻함을… 살아있을 때에도, 죽어서도 한 번이라도 느껴봤을까? 미정이 여기 없다면 미정은 지금 지옥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한 입을 삼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목에 걸린 건 밥이 아니라 기억 같았다. 여긴 천국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의문이 들었다. 머리맡의 스피커가 조용히 울렸다.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이곳은 천국입니다.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평안을 누리십시오. 당신은 정화되었고, 당신의 삶은 완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미정이는 왜 여기 없는 것일까?
식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회당으로 향했다. 말없이 일어나고,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발소리는 고요하고, 옷깃은 바람에 닿지 않았다. 나는 그 사이에 섞여 걸었다. 누구와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당의 문이 열리고 그 순간 흐르는 음악이 공기를 바꿔놓았다. 낮고 부드러운 합창에는 말은 없고, 음만 있었다. 마치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정결한 울림이었다. 사람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았다. 나는 그들 틈에 앉아 있으면서도 고개를 들고 사제를 바라봤다. 그는 천천히 제단 위로 올라섰다. 흰 옷을 입고, 눈빛은 평온했다. 그리고 낮고 단정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이상 괴롭지 않습니다.”
“아프지 않습니다.”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모두 절대자의 은혜입니다.”
그가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아멘”을 속삭였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없습니다.”
“이 또한 절대자의 은혜입니다.”
“그분을 경배합시다.”
나는 눈을 감지 못했다. 기도문을 외우지 못했다. 입술은 굳어 있었고, 손은 모아지지 않았다. 정말 그런 걸까. 부족한 것이 없는 게 맞을까.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아플까. 사제의 음성이 다시 퍼졌다.
“이곳은 완전합니다. 꿈도 더는 필요치 않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내 안에서 무언가가 어긋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꿈을 꿨다. 아직도 그 밤을, 미정이를… 계속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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