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처음에 그들은 ‘떠오른 사람’이라 불렸다. 그리고 곧 ‘부양자’라는 명칭이 붙었다. 한국 정부는 첫 사례가 알려진 지 일주일 만에 관련 인물들을 격리 조치했다. 경찰특공대가 출동했고, 공중에 부유한 이들을 그물망과 와이어로 감싸 내려오게 했다. 정부는 대중에게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침묵은 불안의 속도로 퍼졌다.
연구가 시작됐다. 대형 병원의 지하 격리 병동에, 그들은 매달려 있었다. 붕 떠 있는 상태 그대로,
팔과 다리에 센서를 부착한 채 희미한 조명 가운데 매일같이 피를 뽑혔다. 심전도, 뇌파, 체중, 골밀도, 호르몬 수치, 무수한 숫자들이 모니터 위에 그려졌지만 결과는 한결같았다.
정상 범위. 이상 없음. 단,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몇 주 뒤, 일본에서 두 명, 콜롬비아에서 다섯 명, 프랑스에서 열세 명의 부양자가 발견됐다.
세계 각 정부는 격리를 시도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손을 들었다. 부양자는 계속 증가했고, 너무 많아졌다.
이제 공중에 사람이 있었다. 길 위, 광장 위, 교실과 엘리베이터 안, 버스 정류장 옆. 어디서든 천천히, 무언가로부터 이탈하듯 사람은 떠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살아야 했다. 생활은 계속되어야 했다. 처음 개발된 건 ‘무게추 운동화’였다. 발뒤꿈치에 납 덩이를 부착한 고철 신발은 부양자들이 지면을 딛게 도왔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너무 무거웠다. 무릎 관절은 망가졌고, 허리는 휘었고, 움직임은 두려움이 되었다. 곧 대체 기술이 나왔다. 떠오른 높이에 맞춰 제작한 높이 보정 신발. 5센티, 10센티, 35센티, 정확히 자신의 ‘부양 수치’만큼의 두께를 가진 플랫폼 슈즈였다.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땅은 더 이상 같은 높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1.2미터까지 떠오른 남자가 등장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문을 열 수 없고, 손을 뻗어 잡을 수도 없고, 계단을 오를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을 위한 새로운 직업이 등장했다.
“뜬사람 도우미.”
그들은 말 그대로 공중에 떠 있는 사람들의 지상 접속을 도와주는 이들이었다. 문을 열어주고, 신발을 벗겨주고, 그들의 부양 각도를 조절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뜬사람 도우미는 하루 종일 허공의 사람을 올려다보며 일하는 고된 노동이었지만, 수요는 많았고, 돈이 되었다.
사회는 균열을 감지했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사람들의 시선 높이가 달라졌다. 식당 테이블은 들쑥날쑥하게 변경되어 제각각이었고, 대중교통은 부양자들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해 일반인과 부양자 모두 불만이 속출했다. 건물의 천장도 불안했다. 부서지거나 부상자가 나왔다. 곧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부양자들을 위해 일반인이 왜 불편을 겪어야 하는거냐.”
“이건 질병아냐? 나한테까지 옮는거 아냐?”
“아, 진짜 너무 불편하다. 높이에 맞게 모여 삽시다.”
도시마다 높이별 등급이 매겨지기 시작했고, 부양 높이별로 건물 출입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에는 ‘부양자 탑승 금지’ 표지판이 붙었다.
사회는 그렇게 적응해갔다. 하지만 곧 새로운 혼란이 시작됐다. 부양자들의 높이가 점차 높아졌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높아지는 속도도 제각각이었다. 빠른 사람, 느린 사람. 결국 하늘 높이 사라져버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부양은 생존의 문제가 되었고, 부양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짖누르기 시작했다.
중요한건 원인이었다. 정부가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자 각계는 말하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개인 중력장 변화 이론을 들이밀었고, 천체물리학자는 지구 자기장의 불안정을 말했고, 종교인은 종말의 징조라고 외쳤다.
“우리는 이제 신에게 선택받은 존재입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자는 구원받은 자요, 남겨진 자는…”
아직 부양하지 못한 사람들 중 신앙이 있던 사람들은 종교인에게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나 종교인은 떠오른 자신의 발 끝을 바라보며 더욱 경건한 마음을 품었다.
환경운동가들은 말했다.
“지구가 인간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환경파괴를 너무 많이했어요. 우리는 지금, 이 별의 중심으로부터 배척당하는 중입니다.”
정치인들은 말했다.
“이 사태는 통제 가능하며, 모두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높이별 선거구 개편안을 냈다. 0센티에서 10센티 사이의 주민, 11~30센티 지역, 30센티 이상은 특별 행정구역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의견과 발표는 이 현상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인간의 부양을 해석하고 믿었다.
그런 가운데,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 조용히 한 편의 글이 올라왔다. 익명 계정이었다. 글의 제목은 ’사랑과 중력에 대하여’였다.
…
사랑은 무게다.
그것을 잃으면 우리는 가벼워지고,
결국 어디론가 떠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이별을 너무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지면에 묶어두는 것은 사랑이다.
…
누군가는 시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음모론이라 조롱했고, 누군가는 책상 앞에서 마음 깊이 울었다. 그 글은 사라지지 않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각종 SNS에서 공유되었고, 뉴스 인터뷰, 강연, 방송 멘트, 그리고 중학교 졸업식 축사에까지 인용되었다.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가?”
“그래서 아직 여기에 있는 걸까?”
언론은 아직 떠오르지 않은 이들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그는 왜 아직도 땅 위에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졌다는 증거인가?”
“떠오르지 못하는 자의 사랑 생존법”
시인지 분석인지 모를 그 글은 가장 유명한 글이 되었지만 그 누구도 시인을 찾지는 못했다. 그는 다시 글을 올리지 않았다. 그의 정체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사람들은 그렇게 믿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사랑의 문제일지도 몰라.”
“사랑을 잃은 사람이 떠나는 거야.”
“사랑이 없으면 점점 가벼워지고, 결국… 사라지는 거야.”
사랑의 감정이 없는 사람들이 부양한다는 사상은 점차 전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인간은 중력의 법칙을 잃은 세계에서 사랑의 법칙을 되묻기 시작했다.
(계속)
3부는 https://brunch.co.kr/@grapeseed/186 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