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일상의 기록 9편
아이가 주말에 축구 교실에 간다. 아직 발끝으로 공을 차는 모습에 눈에 거슬려 둘이 축구할 때 이 부분을 지도해주는 시도를 했다. 몇 번 거부하던 아이가 어느날 받아들였다. 그때 머리속에 흘러다닌 생각을 이분법과 연결해보았다.
아이가 하던대로 하면서 편안하게 공과 놀고 싶은데,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힘있게 차려면 변화가 필요하다 느꼈다.
아이가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 할 불편한 과정은 디딤발을 공 부근에 두는 일이다. (학교 다니면서 공을 찬 일 말고, 축구를 배워본 일은 없지만) 디딤발을 공 부근에 두고 차는 일을 처음 시도할 때 여간 답답한게 아니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 기억을 무기로 공감을 끌어내 아이를 설득할 수 있었다.
다음 단계는 지루한 반복이다. 다시 말해서, 학습자(아이)가 반복을 어떻게 이겨내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하나는 '잘 했어' 라고 큰 소리로 칭찬해주는 일이다. 두 번째는 수치로 목표를 제시하는 일이다. 성취감을 숫자를 향해가는 행동에서 느낄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재능과 무관하게 100번 하는 일은 누구나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 매우 유효했다.
어느새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할까말까 말성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발전이다.
바로 이 장면을 찍을 수 있을 즈음 이제 '되었다' 싶었다. 이후에는 아이의 의향에 맡기기로 했는지 나의 무의식(혹은 잠재의식)은 나를 다른 생각으로 이끌었다.
디딤발을 두는 위치가 핵심 변수인데, 상황을 일차 함수화 한 것이다. 스스로 일상이 된 함수 활용인 듯도 하다. 그리고 아이에게 초집중을 유도했다. 근데 이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이분법을 활용한 듯한 느낌이 글을 쓰도록 유도했다. 어떤 장면이 그렇게 느끼게 했을까? 어떤 장면이 이분법 활용에 해당할까? 어떤 경우에 이분법이 유효할까?
마음만 먹고 글을 안 쓰던 최근에 XP 책읽기 모임에서 후배가 이분법의 폐해라는 표현을 쓰자 묵혀둔 이 생각이 다시 등장했다. 후배 말은 '진보와 보수' 처럼 이념주의자들이 강요하는 이분법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분법을 잘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장에서 예를 들어 설명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 나는 방금 설명을 시도했다. 문제를 간단한 변수 하나로 정의하려면 이분법이 강력한 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집단을 둘로 나누는 변수를 찾으면 되니까. 관점을 달리 하여 어떤 사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기준으로 집단을 나눌 수도 있다. 거의 같은 이치로 선택과 집중을 다룰 때도 이분법을 드러내는 질문은 매우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