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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Apr 29. 2022

바둑판 같이 존재하는 우주인가?

금요안영회 - 3호

다소 엉뚱한 질문이다. 하지만, 월말김어준 3월호의 박문호박사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지각으로 인식하는 아날로그 세상은 전혀 과학적이 아니다. 물질은 디지털 형태로 분절적으로 존재하는 파동 같은 현상이다. 아니, 이 부분은 내 과학지식으로 설명할 범위를 너어선다.


평행우주론

박문호박사님의 3월 강의 마지막에 평행우주론을 언급하고, 진행자인 김어준은 강의가 길어질 것을 우려해서 제지한다. 나에게 남은 여운에 끌려 구글링을 해본다.

최봉영 선생님이 통화로 말씀하신 메타버스가 떠올랐다. 우리가 하나의 우주 즉, 유니버스에 살고 있다는 것은 기독교 도그마에 따르는 생각이라 하셨다. 그리고 근자에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쓰신 짧은 글에 그 의미가 일부 녹아들어져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말이야,
밥상에 놓여 있는 미역국을 내려다보면서 말이야,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니 말이야,
모든 게 말짱 말이더란 말이야.
모두가 그냥 한바탕 말이란 말이지.

모두가 한바탕 말이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마치 바둑판처럼 생긴 것일까?

공존 혹은 병립할 뿐 똑같은 시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인식에 따르면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B%B0%94%EB%91%91%ED%8C%90

하지만 <성공적 대화를 돕는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가 말해준다. 20년 넘게 프로젝트 현장에서 살펴본 모습은 너무나도 소통이 안된다는 사실이었다. 함께 믿는 교집합을 비전으로 구체화 하지 않으면 말이다.

바둑판의 격자모양을 우리가 사는 우주와 연결하는 일을 아무런 흥미를 주지 못했다. 다만, 평행하게 가깝지만 떨어진 존재로 모두와 산다고 상상해보면 Loosely-coupled 가 떠오른다! 와우~ 두레이로 엮인 일상과도 연결되고 20년 전 매료되었던 객체지향의 세계도 떠오른다.


서로 다른 잣대와 잣대의 객관화

최봉영 선생님을 만난 후에 일상에도 잣대란 말을 쓸 일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최근에 다 읽은 <단위로 읽는 세상> 에서 또 잣대란 단어가 나타난 인상적인 문구를 보았다.

단위를 대상을 바라보는 잣대다. 잣대라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나와 남이 사용하는 잣대가 다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남의 눈에 티 든 것은 보아도 제 눈의 서까래는 보지 못한다’는 속담은 서로 적용하는 잣대가 다른 상황을 적나라하게 웅변한다. 아마도 타인에게 적용하는 단위와 자신에게 적용하는 단위가 같다면 삶은 훨씬 편안하고 단순한 모습을 띠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태생적으로 주관적이다. 누구나 자신의 감각으로만 세계를 바라보도록 만들어져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지난 금요안영회 

1. 계획은 개나 주자

2. 측정, 단위 그 이전에 기대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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