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
이 글은 최봉영 선생님이《내가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페북에 쓰신 글을 보고, 스스로 묻따풀(묻고 따지고 풀어서)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선생님이 열거한 28개 바탕 낱말 중에서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에 풀이가 있는 것부터 훑어본다.
먼저, 첫 번째 바탕 낱말은 '나'이다. 책 20쪽을 펼쳤다.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처음 읽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문장이다.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은 서로 엮임으로써 저마다 뜻을 갖는다.
그런데 몇 가지 이유로 이번에는 한 줄 문장을 두고 한참을 음미했다. 먼저 <월말김어준> 박문호 박사님[1]의 주관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다.
주관이 생기면 바깥에 있던 대상물이 나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그 전에는 바깥에 있는 사물이 자연환경으로 있는데, 주관이 생긴 이후부터 나와 관계를 맺는 대상으로 바뀐다. <중략> 내가 주관이 생기면서 환경의 입력들이 대상과 사건이 출현한다. 다마지오가 대상의 출현을 개체성의 우주가 생겼다고 표현했다. 대상이 생기기 전에는 배경이고 덩어리로 인식했다.
두 번째로 <개체(시스템)의 재설계와 경계의 변경>을 포함하여 맥락(context)을 다룬 다수의 글을 쓰면서 엮인 결과물을 맥락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2]
세 번째로 언어가 사회적 산물이란 점에 입각하여 주관에 투영된 객관까지 고려하면, 엮임은 사회적 작용까지 아울러 볼 수 있다. 최봉영 선생님의 도식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습관화되어 있어 평소 의식하지 못한다.
홀로 떨어져 있는 말은 아무런 뜻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종종 맥락 없이 말한다. 내가 대화가 어려운 지인들을 돕느라 <성공적 대화를 돕는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 그 반증이다. 나 역시 맥락 없이 대화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대화하는 일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혼자 하는 말이 아니라 의사소통으로 확장하여 맥락의 필요성을 강조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하는 구호나 어구가 떠오르기도 한다. (괄호 안에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넣는다.)
Ubiquitous language (같은 말을 써야 맥락을 좁힐 수 있다.)
또한, 앞서 인용한 박문호 박사님 강의에 나온 디마지오의 표현 '개체성의 우주'란 말도 다시 소환된다. 덩어리에서 나눠지면 개체들의 관계망이 펼쳐진다. 개체가 정의된다는 말과 관계가 생긴다는 말은 동시에 생겨나는 두 가지 현상을 이르는 말일 수 있다.
[1] 시간 구속을 벗어난 뇌, 사피엔스 되다
[2] Application Context를 인용하고 싶었으나 개발자가 아닌 독자들을 배려해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