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Origins을 읽고 생각 기록하기 10
아이와 배드민턴을 치느라 맞바람을 맞는 위치에서 내 자리를 정한 일이 있어 아래 인용한 부분이 마침 더 와닿았다.
바람은 불어오는 방향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인다. 따라서 북풍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부는 바람이다. 반면에 해류는 나아가는 방향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인다.
왜 그럴까?
육지에 있을 때에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 중요하다. 폭풍이 어느 방향에서 다가오는지 혹은 풍차를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본 듯한 토네이도 사진을 떠올리면 쉽다.
중요한 사실은 육지와 바다에서는 다르다는 점이다.
해류를 타고 나아가는 배는 해류가 배를 어디로 향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배를 난파시킬 수 있는 산호초나 여울이 있는 곳을 향해 해류가 간다면 특히 그렇다.
육지에서는 바람이 어디에서 오는가가 중요하지만,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갈 때에는 배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를 따져야 한다.
범선은 노 젓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 보급품과 교역 상품을 많이 실을 수 있지만, 반대 방향의 해류나 역풍을 만나면 큰 어려움이 따랐다.
지난 주말에 가족들과 무인도인 차귀도(제주도 부속섬)에 다녀왔는데 억새를 눕게 하는 바람과 해류가 서로 다르게 부는 광경을 직접 체험하니, 비록 강도는 다르지만 책에서 언급한 바람의 위력을 몸으로 상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연한 발견에서 패턴을 찾는 흐름은 애자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직업적인 배경 탓이다.
북위 30도 지점에 이르면 탁월풍인 남서풍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지역에 따라 해류와 대기 순환이 서로 다르게 일어나는 성질을 활용해 카나리아 제도와 고향으로 돌아갔다. <중략> 여기서 그들은 지구의 대양과 대기에 일어나는 대규모 순환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해류와 바람의 패턴을 활용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오늘날 바다 위의 항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최초에는 유럽 탐험가들이 만들어낸 섬을 점(點)으로 하는 선분의 집합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구절이 등장한다.
대서양 섬들은 이베리아의 탐험가들에게 대양 향해의 디딤돌 역할을 하는 중요한 기항지가 되었다. <중략> 이 섬들의 '발견'은 유럽 국가들이 그 후 팽창해가는 과정에서 드러낼 영토 정복, 식민지 경영, 노예 노동을 이용한 재식 농업 같은 아주 추한 측면을 예고했다.
물론, 모험의 결과는 역사에 밝은 면만 남기지는 않았다.
책 323쪽의 <교대되는 탁월풍의 띠들을 만들어내는 지구 대기의 대순환>이란 제목의 그림에 대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설명이 나온다.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선 모험의 역사가 지난하게 쌓여 이들을 알아낸 것이다. 정밀한 분석이야 과학자들이 했을 수 있겠지만 목숨을 건 발견은 뱃사람들의 몫이었다.
동쪽으로 항해하려고 한다면, 편서풍이 부는 두 페렐 세포의 영역 안에서만 그럴 수 있다. 이것은 중앙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돌아가는 경로인데,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북쪽으로 더 올라가 이 지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이를 활용해 유럽으로 돌아갔다. <중략> 멕시코 만류는 1513년에 에스파냐 탐험가들이 플로리다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항해하다가 강한 바람을 타고 나아가는데도 배가 자꾸 뒤쪽으로 밀린다는 사실을 알아채면서 발견되었다. 그들은 이 해류가 상업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즉각 깨달았다. 짐을 잔뜩 실은 갤리언 선도 폭이 넓고 빨리 흐르는 대양 속의 이 강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곧장 북쪽으로 올라가 편서풍을 타고 방향을 돌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부분을 반복해서 읽으면 서부 개척시대에 대한 심상은 어쩌면 유럽인들에게 이때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했다. 또한, 아래 구절을 읽을 때는 마치 '기어 변속'을 하는 듯 대양을 겁 없이 누리는 항해자들을 연상시켰다.
남위 40도 아래에서는 지구를 빙 두르며 거칠 것 없이 부는 편서풍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남아메리카 남단과 뉴질랜드의 두 섬밖에 없다. 따라서 남반구의 편서풍은 북반구의 편서풍보다 훨씬 강해 뱃사람들은 이곳을 로어링 포터즈Roaring Forties(포효하는 40도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강렬한 바람과 파도, 차가운 기후와 빙산의 위험을 무릅쓰고 더 남쪽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면, 더 강한 바람이 부는 퓨리어스 피프티즈Furious Fifties(격노한 50도대)나 슈리킹 식스티즈Shrieking Sixties(비명 지르는 60도대)를 이용할 수도 있었다.
저자는 뜻밖의 사실을 알려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중세의 교양 있는 사람들 중에서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원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일하던 그리스의 지리학자이자 천문학자, 수학자인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가 구형이라고 믿었으며 <중략> 유럽에서 서쪽으로 계속 나아가면 인도에 도착할 수 있다는 주장을 콜럼버스가 최초로 한 것도 아니다.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본이 이미 1세기에 같은 주장을 했다.
대항해의 시대를 선도한 나라는 포르투갈이었다.
포르투갈인은 또한 각각의 탐험에서 가장 먼 지점에 도달한 해안에 세우려고 배에 돌기둥을 싣고 갔다. <중략> 범선의 선창에 실려 운반된 이 작은 기념비는 미국의 우주 비행사들이 아폴로 계획 때 달로 가져간 국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끝이 있음을 알아내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디아스도 포르투갈인이었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도착한 땅이 동양이라고 주장했다.
앞서도 섬을 점으로 보는 묘사를 했다. 점들을 잇다가 점들을 연결한 제도가 아니라 대륙일 수 있다고 가정한 이들은 콜럼버스 이후에 등장한다.
유럽인들은 서쪽에 있는 그 땅들은 모두 같은 해안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항해자들이 발견한 땅들은 일련의 새로운 섬들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대륙, 곧 신대륙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신대륙 초기 발견자들은 자신들이 태평양 어딘가의 섬을 발견한 것으로 알았다. 어찌 자신이 본 미지의 풍경만 보고 지도상에 없는 대륙이라고 짐작할 수 있겠는가?
포르투갈이 건설한 제국은 로마나 몽고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포르투갈은 새로운 종류의 제국을 건설했는데, 넓은 영토 획득을 통해 부강해진 것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 퍼져 있는 해상 교역망을 전략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부강해졌다. 그것은 물의 제국이었다.
그리고 실크로드와 전혀 다른 형태의 해상 교역로의 중요성이 해안에 인접한 유럽 각국을 경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탐험과 해상 교역이 가져다준 결과로 유럽에서 힘의 무게중심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확연히 기울어졌다. 유럽은 이제 더 이상 세계에서 아시아를 횡단하는 실크로드 교역망의 종착역인 서쪽 변방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중해 지역은 이전의 중심적 위치를 잃고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크게 떨어진 변두리 지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 포르투갈이 세계 최고의 위력을 구가하는 분야는 축구이다. 포르투갈은 이번 월드컵 우승후보이고 이름만 들으면 아는 호날두라는 축구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점령했던 신대륙 국가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는 월드컵의 영원한 우승후보이다.
저자가 앞서 추하다고 표현한 재식 농업을 축으로 하는 무역의 고리가 엄청난 모험의 동력이 되었다.
유럽의 배들이 이끈 탐험 시대 초기와 세계적인 해상 교역을 촉진한 주요 동기는 향신료였지만, 18세기가 되자 새로운 상품이 수요를 지배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와 인도가 원산인 작물들이 신세계로 옮겨가 재배되었고, 이제 다량의 커피가 브라질에서, 설탕이 카리브해에서, 목화가 북아메리카에서 생산되었다. 그리고 유럽 시장에 공급된 이러한 상품들의 대량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 때문에 또 다른 대륙 횡단 교역이 생겨났는데, 이것은 오늘날 세계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대서양 삼각 무역은 값싼 목화와 설탕, 커피, 담배를 원하는 끝없는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연결했다.
<커피기업 공정무역 기사로 시작한 즉흥 논의> 편을 쓰며 알게 된 세계 1위 브라질의 커피 수확량이 이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이 장의 내용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또한,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들이 즐비한 브라질 선수들의 피부색은 화물 취급을 받았던 아프리카인들의 후손들이 남긴 흔적일 수도 있다.
전체 노예 중 40%는 브라질로, 40%는 카리브해로, 5%는 훗날의 미국 지역으로, 15%는 에스파냐가 지배하던 아메리카 지역으로 실려 갔다. <중략> 노예 제도 폐지론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전에는 달콤한 차나 럼주의 맛, 등에 닿는 깨끗한 셔츠의 감촉, 기운을 돋우는 파이프 담배에 흠뻑 취한 유럽인은 자신의 안락한 생활 방식을 제공하기 위해 희생된 인간의 고통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저자는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흐름을 덧붙인다.
오늘날 개발도상국의 많은 공장 노동자들이 혹독한 조건을 견뎌내면서 그것을 만든다는 사실을 조건을 알면서도 최신 전자 터치스크린 기기나 값싼 티셔츠에 열광하는 우리는 더 이상 책임 의식이 있는 소비자가 아니다.
2. 지구적 스케일 그리고 지리적 특성으로 보는 섬나라
6. 검은 동맥과 블랙 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