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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Oct 06. 2022

풀의 바다가 만들어낸 최정예 전사들

오리진Origins을 읽고 생각 기록하기 9

<오리진> 7장 <기후가 만들어낸 실크로드의 지도>를 읽고 쓴다.

역사를 통해 이 거대한 땅덩어리를 정의할 수 있는 특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대륙의 양 끝을 잇는 장거리 교역로이고, 또 하나는 반복적으로 보금자리인 대륙 내부 지역에서 박차고 나와 대륙 가장자리에서 성장하던 문명들에 도전한 유목 민족들이다. 이러한 특징을 만들어낸 것은 기후대라는 지구의 기본적인 특성과 각 기후대 내부의 환경이었다.

기후대의 영향을 강조하는 마지막 문장은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장을 모두 읽고 나서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로마와 중국을 잇는 실크로드

절의 제목인 동서 횡단 고속도로가 개념상 하나의 선(線)이라고 한다면 이 선(혹은 선분)의 양끝에 있는 점(點)은 어디일까?

넓은 유라시아 대륙의 양 반대편에서 두 강대국이 부상했다. 동쪽에서는 중국의 한漢 황조가, 서쪽에서는 로마 제국이 세력을 크게 떨쳤다.

인류의 농업 혁명 이후 중국이 제국이 될 수 있었던 지리적 이유를 설명한다.

현대 중국의 이 농업 중심 지역은 250여 년에 걸친 전국 시대의 전락 끝에 진나라(중국의 영어명 차이나China는 바로 진나라에서 유래했다)에 의해 기원전 221년에 통일되었다.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자연적 경계 덕분에 정치적 통일을 그렇게 일찍 이룰 수 있었고,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동쪽에는 태평양에 면한 해안선이 뻗어 있고, 서쪽에는 살기 힘든 고지대인 티베트고원과 히말라야 산맥이 우뚝 솟아 있으며, 남족에는 울창한 밀림이 뻗어 있다. 주요 약점은 북쪽 국경이었는데...

주요 약점에 대한 분명한 역사적 증거는 바로 만리장성의 존재다. ;)

2016년 만리장성에서

저자는 중국과 로마 제국의 공통점을 자연 경계에서 찾고 있다.

로마 제국의 확장 역시 자연적 경계에 큰 영향을 받았다. 영토가 최대로 확장된 117년에 로마 제국은 이탈리아 반도 중간에 위치한 작은 도시에서 그 당시 세계 인구의 약 5분의 1을 포함한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반면 차이점은 무엇일까?

로마 제국의 중심지는 내해인 지중해 가장자리에 위치해 운송과 교역이 편리했던 반면, 중국 중심부는 거대한 황허강과 양쯔강이 물을 공급하는 평원 지역에 뻗어 있었다.

이렇게 자연적으로 나뉘어 있던 두 거대한 점이 연결된 이유는 바로 '비단'이었다.

두 제국의 귀중한 한 가지 상품의 교역을 통해 만나게 되는데, 그 상품은 바로 실크, 곧 비단이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려움이라고, 인간의 욕망은 꿈을 만들어 어려움을 뚫고 현실화 하는 경향이 있다.


실크로드의 중요성

하지만, 실제 실크로드가 하나의 선 형태는 아니란 점을 책에서는 상세히 설명한다. 실크로드는 개념적 흐름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역사에서 실크 로드가 지닌 중요성은 단지 교역 상품의 운송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 광범위한 육상 운송망은 유라시아 남부 해안선을 지나가는 해상 교역로와 함께 사상과 철학과 종교의 확산을 촉진하는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 수학과 의학, 천문학, 지도 제작 분야에서 일어난 획기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박차, 제지, 인쇄, 화약 같은 혁신과 신기술도 이 교역로를 통해 유라시아 전역의 민족들 사이에 전파되었다.

또한, 교역의 관점에서만 보면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알지 못하게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늘날의 '인터넷과 같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육상 및 해상 통합 교역망은 그 시대의 인터넷과 같은 것이어서, 단지 서로 먼 곳 사이의 상업뿐만 아니라 지식과 교환도 장려했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한 부연으로 다음과 같은 격차를 기술했다.

이것은 더 고립된 상태에 있던 아메리카의 문명들이 빈곤해진 이유 중 하나이다. 15세기 말에 유라시아 사람들과 아메리카 사람들이 다시 접촉했을 때, 유라시아 문명은 과학적 이해와 기술적 능력에서 훨씬 앞서 있었다.

실크로드와 인터넷 비유를 다시 활용하면, 인터넷 보급률이 낮은 국가 등(소득 수준에 따른 계층?)은 같은 식의 격차를 갖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한편, 지금은 실크로드가 역사적 의미 정도로 축소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16세기부터 실크 로드는 그 중요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탐험 시대에 유럽의 항해자들이 개척한 전 세계적인 해양 네트워크에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중략> 그때부터 세계의 교역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해안의 항구들이었다.


풀의 바다가 길러낸 최정예 전사들

<풀의 바다>라는 제목의 장에서 배운 스텝steppe 지역에 대해 처음으로 그 의미를 알았다.

북쪽의 추운 타이가 기후대와 남쪽의 사막 지역 사이에 광대한 초원이 펼쳐져 있다. 유라시아에서는 이 지역을 스텝steppe이라 부르는데, 북아메리카의 프레리prairie와 동일한 위도대에 있다. 남반구에서는 같은 위도대에 해당하는 지역에 아르헨티나의 팜파스pampas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벨트veld가 있다.

위 내용과 상응하는 듯보이는 위키피디아의 그림 '두 가지 형태의 스텝'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그리고 위키피디아에 나오는 스텝 사진을 모자이크처럼 모아 보면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시각 이미지로 구현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눈에 들어오는 사진은 두 개인데, 몽골 스텝의  말 달리는 사진 그리고 마치 우크라이나 깃발을 연상시키는 듯한 우크라이나 스텝 사진이다.


이 단락의 제목을 고민하다가 '최정예 전사들'이라는 표현을 넣었다. 이런 영감을 준 책 내용이 다음 문장들이다.

스텝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다.

그런 곳에서 왜 몽고 같은 제국이 등장했는가?

스텝은 말이 살아가기에 완벽한 서식지이다.

인류는 정착 이전에 수렵을 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몽고 이전에 말이 있었다. 말의 서식지가 먼저고, 몽고는 나중이다.

스텝에서 살아남으려면, 식량을 구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기동성도 필요하다.

아마 아래 설명이면 내가 전개하는 인용 순서와 배경의 이야기를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을까?

정착 생활을 하는 농민에게는 가축을 먹여 살릴 풀밭이 얼마 없었고, 그래서 풀을 뜯어먹는 동물을 기르다 보면 풀밭이 금방 고갈되기 쉬웠다. 하지만 광대한 초원에서 말을 타고 가축을 몰면, 방목지를 훨씬 먼 곳까지 넓힐 수 있고 훨씬 많은 가축을 통제할 수 있었다. <중략> 말을 이용한 빠른 기동성 그리고 이동식 주택 역할을 하는 소가 끄는 수레의 결합으로 스텝 지역은 많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변했다.

말의 서식지에서 이동식 주택에서 거하는 대규모 집단이 만들어지는 배경이다.


유목민의 정착 사회 침략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스텝 지역에 사는 유목민들이 보금자리인 대륙 내부 지역에서 박차고 나와 대륙 가장자리에서 성장하던 문명들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환경의 미묘한 균형에 균열이 생기면(인구가 급증하거나 기후 변동으로 목초지가 황폐화되거나 하면) 전체 부족들이 기존의 생활 터전을 버리고 더 나은 장소를 찾아 이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로 이동하는 부족들이 이웃 부족들을 밀어냄에 따라 마치 당구공이 서로 충돌하듯이 연쇄적으로 혼란의 물결이 스텝 지역 전체로 출렁이며 퍼져나갔다. 결국 일부 스텝 지역 민족은 정착 사회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예컨대 동양에서는 만주와 중국 북부에서, 서양에서는 우크라이나와 헝가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오늘날로 따지면 기마 민족과 정착 사회의 전쟁은 전투기와 육군이 싸우는 격이라 할 수 있다.

기마 민족의 가공할 위협은 대체로 기동성에서 나온다.

하지만, 기마 민족은 침략을 하더라도 정착 사회의 영토를 탐내지 않은 배경이 있었다.

유라시아 가장자리 주변의 농경 사회로 너무 깊이 들어오면, 막의 먹이를 공급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들이 전쟁 우위를 점유하던 이유인 바로 그 기동성에 타격을 입었다.[1]

이러한 자연의 구속 조건 때문에 농경 사회와 유목 사회의 생활 방식은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했으며, 그래서 스텝에서 온 침략자들은 전리품을 챙긴 뒤에는 광활한 목초지가 널린 자신들의 본거지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정착 사회에 동화하는 쪽을 택했다.


훈족의 침략과 로마 제국의 몰락

로마 제국의 몰락을 다루는 부분에서 뜻밖에도 디즈니 영화 뮬란 덕분에 익숙해진 훈족이 등장한다.

이들을 공격한 기마 민족은 기원전 3세기부터 스텝의 동쪽 끝에서 중국을 자주 침략했던 유목민 부족들의 연합체와 같았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 민족은 바로 흉노족이다. 서양에 나타난 이들은 훈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by '뮬란 훈족'

훈족 침략이 대이동의 하나의 흐름이었던 모양이다.

서로마 제국은 정착 부족들과 스텝에서 온 유목 부족들의 '대이동'으로 멸망했다. <중략> 민족 대이동을 촉발한 스텝 지역의 기후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농경 사회는 흉작이 들면 하층민에게 부담이 가중되고 버티는 정착사회이지만, 유목 민족은 수렵, 채집에 용이한 곳을 차지하기 위한 힘의 논리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팍스 몽골리카

'팍스 로마나'란 표현만 알았지 '팍스 몽골리카'란 표현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불과 25년 만에 로마 제국이 400년에 걸쳐 넓힌 것보다 더 많은 땅을 정복했다. 몽골 제국은 단지 광대한 유라시아 스텝의 부족들을 통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과 러시아, 서남아시아 대부분까지 정복하여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육상 제국을 건설했다.

그들의 확장 속도[2]는 앞서 언급한 (전투의) 기동성에 비례하는 듯한 인상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가 기독교의 영향 하에 있는 것은 로마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가 말하는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 아니었더라면 그 영향력을 훨씬 빠르게 약해졌을 수도 있겠다.

얄궂은 운명의 장난 덕분에 유럽은 풍전등화의 이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 당시 칭기즈 칸의 아들이자 후계자이던 오고타이 칸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몽골군 지휘관들이 다음 황제를 정하기 위해 모두 몽골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으로 돌아가야 했다. 결국 그 후 몽골의 칸들은 대서양을 향하 서방 정복에 다시 나서지 않았다. 몽골 제국의 경계는 스텝 지역 서쪽 끝에서 끝났다.
출처: 위키피디아
대신에 그들은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중국 전체를 정복하고 원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바로 그 원이 고려의 마지막 섬 지역이 제주까지 점령한다.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몽고 그리고 몽고와의 항전에 대해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항파두리 유적지에서 찍은 아이 사진

삼별초의 항전사 혹은 항몽 유적지의 유래를 알고 있다면 아래 내용을 읽을 때 국뽕이 차오를 가능성이 높다.

몽골족은 즉각 항복하지 않는 도시들을 잔혹하게 다룬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들은 모든 주민(남자, 여자, 어린이 그리고 가축까지)을 죽이고, 텅 빈 거리와 해골 피라미드만 남겨놓았다. 이러한 잔인성은 다음에 공격할 도시들에 저항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할 목적으로 자행했다.

과거 우리나라의 의병의 역사, 독립운동가들이나 군사정권 학생운동을 하던 분들의 기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잘 보여주는 전지구적인 항거의 기록이다. 생각을 바꿔 저자가 말한 '얄궂은 운명의 장난'으로 돌아가 보자. 오코타이 칸이 마침 그때 죽지 않았더라면 침략당한 섬이 제주가 아니라 영국일 수도 있었다. :)


한편, 몽골족의 야만적 행위는 조국 수사를 담당한 검찰 특수부를 행태를 떠올렸다.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을 보면 소문의 속도를 강화시켜준 이들을 흔히 '기레기'로 불리는 친검찰 기자들이다.

이들의 야만적인 행위에 대한 소문은 몽골 기병의 진격보다 더 빨리 퍼졌다.

민주당 정치인들 중에서도 종종 검찰에 유리한 방향으로 노선을 선회하는 이들이 있는데, 소문의 위력에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근대 국가의 탄생으로의 전환

당연한 일이지만, 몽고는 침략자로서만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시기는 '팍스 몽골리카'라고 불리게 되었다. 1260년부터 약 100년 동안 몽골의 지배는 아시아에서 상인들의 안전 통행을 보장했고, 또 뛰어난 행정 처리와 낮은 세금으로 교역과 상업이 융성했다. 약탈한 전리품이나 공물에 의존했던 이전 유목민 침략자들의 약탈 전술과는 대조적으로 몰골의 칸들은 약탈보다는 교역에서 훨씬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중략> 몽골인은 중국의 화약도 유럽에 전해 전쟁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후에는 화약을 활용하기 시작한 유럽국가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이러한 혁신은 군사력의 중앙 집권화를 낳았고, 그 덕분에 통치자들은 지배력을 확고히 다져 봉건 영주들의 영지들을 통합함으로써 단일 국가인 근대 국가가 탄생할 수 있었다. <중략> 역사상 처음으로 힘의 균형추가 유목 사회에서 장착 사회 쪽으로 확연히 기울어졌다. <중략> 러시아는 특히 이전에 몽골 제국이 지배하던 스텝 지역으로 영토를 크게 확장함으로써 거대한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는데, 가축과 말을 키우기 위한 목초지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광대한 지역에 묻혀 있는 풍부한 광물 자원을 활용하고, 수천 년동안 이곳에서 자란 풀에서 영양분을 추가로 얻은 비옥한 황토 토양을 활용해 초원을 생산성이 높은 농경지로 바꾸기 위해 영토를 확장했다.


주석

[1] 종심타격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르고, 더불어 애자일(Agile)을 이러한 기동성 측면에서 변화에 대응하는 일로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생각을 제한한다.


지난 오리진Origins을 읽고 생각 기록하기 연재

1. 우리는 판의 활동이 낳은 자식이다

2. 지구적 스케일 그리고 지리적 특성으로 보는 섬나라

3. 돌아올 수 없는 다리, 농업 혁명과 생식 혁명

4. 대륙의 배열과 빙하에 따른 인류의 발전 양상

5. 금융시스템의 발전과 해양지리학

6. 검은 동맥과 블랙 벨트

7. 도시의 풍경을 결정지은 재료

8. 우리는 철기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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